[2부] 39. 래충빠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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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래충빠의 참회



 

   39 . 래충빠의 참회

 

  미라래빠와 그의 아들 래충빠가 뽄토로 가는 도중 진 마을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래충빠가 청하였다.

"오늘 밤은 진 마을에 들러 보시자들을 만나도록 합시다."

그러나 미라래빠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들아, 먼저 뽄토로 가도록 하자. 이 지방의 보시자들이나 제자들, 승려들에게는 알리지 말고 말이다."

래충빠는 불쾌하게 여겼지만 미라래빠에게 순종하여, 그를 따라 '붉은 바위'의 뽄토에 있는 찌푸니마종 동굴로 향했다. 거기에 도착하자 미라래빠가 말하였다.

"래충빠야, 물을 좀 길어 오너라. 나는 불을 피울 테니까."

래충빠는 물을 길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뽄토 골짜기와 찌푸 마을사이의 넓은 초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이르렀다. 아름다운 초원 가운데에는 때마침 산에 사는 야생 염소들이 새끼를 낳고 있었다. 늙은 염소와 젊은 염소들은 번갈아 새끼를 낳더니 마침내 이백 마리가 되었다. 이 야생 염소들은 갓 태어나자마자 뒤뚱거리며 즐겁게 뛰어다녔다. 천진난만한 염소들의 동작과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가 래충빠는 생각했다.

'이곳의 야생 염소들은 빼탕의 염소들보다 훨씬 발랄하고 귀엽구나.'

래충빠는 염소들의 노는 모습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렸다. 한편 불을 지피던 미라래빠는 래충빠가 인도에서 갖고 온 경전들을 펼치고 대 자비심으로 기도하였다.

"모든 다끼니들에게 간곡히 구하오니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할 '무형의 다끼니 진리'와 교의를 지키고 보호하시길! 진리의 모든 수호자들이여! 교의와 중생들에게 큰 해를 끼칠 삿된 주문의 외도 경전들을 소멸시키도록 하소서!"

미라래빠는 기도가 끝난 뒤 잠시 동안 명상에 잠겼다. 그런 다음, 대부분의 두루마리 경전을 불태웠다. 단지 몇 개의 두루마리만 타다 남았을 뿐이었다. 야생 염소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래충빠는, 두목으로 보이는 큰 염소 한 마리가 저편 능선 너머로 염소떼를 모조리 몰고 간 후에야 비로소 정신이 났다.

'이럴 수가! 너무 오랫동안 시간을 지체했구나! 당장 돌아가야겠다. 스승님이 호되게 꾸짖지나 않으실지......'

그는 즉시 돌아갔다. 동굴로 건너가는 외나무 다리에 도착했을 때, 동굴 저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종이 타는 냄새가 났다.

그는 혹시 책들이 타는 게 아닐까 하고 걸음을 재촉하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빈 나무상자 외에는 두루마리 경전들이 거의 없어진 뒤였다. 래충빠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 하였다.

"경전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크게 분개하며 스승을 향해 외쳤다.

미라래빠는 응답하였다.

"그대는 물을 길러 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중요하지 않은 책들은 모조리 불태웠다. 내가 보니 그것들은 무익할 뿐만아니라 오히려 수행을 방해하는 유혹거리가 되겠더라. 그런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꾸물거렸느냐?"

하지만 자만심에 가득 찬 래충빠는 생각했다.

'스승님은 마침내 신랄한 이기주의자가 되었구나! 나를 이처럼 가혹하게 대하시다니! 다시 인도로 돌아가서 띠푸빠에게 가르침을 배울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찾아갈까?'

래충빠는 미라래빠에 대한 신심을 완전히 잃은 채 한참 동안이나 죽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스승에게 말씀드렸다.

"야생 염소들이 노는 걸 구경하다가 늦었습니다! 이젠 스승님이 제게 주셨던 황금이라든지 인도에서 제가 겪었던 시련이 모두 부질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나라로 떠나려 합니다."

신심을 잃어버린 래충빠는 미라래빠를 경멸하고, 심지어는 적개심을 품기까지 하였다. 미라래빠는 래충빠에게 말하였다.

"아들 래충빠야, 그대가 나에 대한 신심을 져버릴 이유는 없다. 이 모든 일은, 그대가 빈둥거리며 늦장을 부린 데에도 책임이 있다. 그대가 행여 기뻐한다면, 나는 그대를 위로해주겠다. 자, 보라!"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미라래빠의 머리 위에 역경사 마르빠가 일월보주(日月寶珠)의 연화좌 위에 앉아 계신 지금강불의 모습으로 화현하신 것이었다. 법통의 스승들이 그 둘레를 에워싸고 있었다. 미라래빠의 눈과 귀의 좌우에서는 비단 실오리 같은 오색 찬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두 눈썹 사이에서는 눈부신 광명이 방사되었다. 그의 혀는 한 개의 작은 팔엽연화조(八葉連花座)로 바뀌었다. 그 위에는 해와 달의 궤도가 새겨져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자음과 모음의 글자들이 섬광처럼 빛났다. 그것은 마치 한 개의 머리카락으로 쓴 글자 같았다. 또한 그의심장에서는 무수한 빛무리가 쏟아졌다. 그러더니 빛무리는 이내 무수한 작은 새들로 변하였다. 이윽고 미라래빠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들 래충빠야, 귀담아 들으렴!

         자애로운 스승 마르빠는

         내 머리 위에 해와 달의 사자좌에 좌정하셨으니

         지금강불의 거룩한 화현이시네.

 

         지금강불의 둘레엔 보석 염주처럼

         법통의 스승들이 옹호하시네.

         신심의 눈으로 우러러보면

         은총의 감로수로 축복받나니

         염소떼 놀이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레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나의 귓바퀴에는 태양과 달이

         영롱한 무지개처럼 빛나니

         지혜와 방편이 '하나' 임을 뜻하며

         변치 않은 깨달음을 상징하네.

         염소 놀이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나의 콧구멍에서 나오는 오색 광선은

         보석 실타래가 쏟아지는 듯 경이로우니

         소리의 본질이로다.

         금강진언송(金剛眞言誦)울 수행하여

         생명 에너지에 통달함을 상징하네.

         또한 생명력의 중앙 통로에 몰입함을 뜻하나니

         염소떼 놀이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나의 눈썹 사이에는 빛나는 백호상(白毫相)이 나타났나니

         이는 순수한 상호(相好)의 정수요,

         불타의 자비 광명 내뿜어지고 있다는 증거네.

         염소떼 놀이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래충빠야, 잠시동안 귀담아 들으렴.

         내 입안에서는 여덟 잎사귀 홍련화가 피었고

         자음과 모음의 화환으로 장식되었나니

         이는 가없는 금강승의 교의를 상징하네.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대의 언어는 진리 자체이네.

         염소떼 놀이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심장에서 눈부신 광선 다발이 방사되어 끝없이 뻗어가나니

         이는 삼신(三身)의 불멸성을 의미하고

         자비와 공이 '하나'임을 상징하네.

         염소떼 놀이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그러나 래충빠는 미라래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크게 원망하는 마음으로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기적의 장면을 곁눈질로 흘겨볼 뿐 조금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얼마 후 래충빠는 마침내 입을 떼었다.

"여기 경이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차라리 염소떼를 구경하는 게 훨씬 재미있겠습니다."

미라래빠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었건만 래충빠는 탄복하거나 관심을 갖기는커녕 한사코 책을 돌려 주시도록 간청할 뿐이었다. 그는 잠시 동안 분개하며 앉아 있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을 쾅 내디뎠다. 그러더니 다시 자리에 덥썩 주저앉아 팔꿈치를 무릎에 올려 놓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혼자 흥얼거렸다. 그 사이 미라래빠의 몸은 빛나는 투명체가 되었다. 이때 그의 은밀한 충추[陰部]에서는 도제댄시불이 현시(顯示)하고, 배꼽 중추에서는 뎀촉불이 현시하고, 심장 중추에서는 개빠도제불이 현시하고, 인후 중추에서는 마하마야불이 현시하고, 양 눈썹 사이에서는 석가모니불이 현시하고, 머리 위에서는 쌍와뒤빠불이 현시하였다. 제각기 많은 천신과 시자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이 거룩한 존재들은 비록 자성(自性)은 없었으나 선명하게 시현되었다. 이들은 오색 광선의 천개(天蓋)안에 뚜렷이 나타났다. 미라래빠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의 육신은 여신들의 무한한 궁전이니

         우주의 모든 붓다들이 거하네.

         지복이 감춰진 은밀한 중추에는

         도젠댄시불이 시자들과 머물며

         봉인된 지복의 중추를 영화롭게 하네.

         그는 붓다의 지혜의 화신이네.

 

         배꼽의 마법(魔法)중추에는

         뎀촉불이 시자들과 머무네.

         여기는 육십이신(六十二神)들이 사는 곳.

         금강신(金剛身)은 진실로 여기에 거하네.

 

         진리의 중추 심장에는

         개빠도제불이 아홉 신들과 사나니

         이들은 세 중생들의 본질이네.

         금강심(金剛心)의 중추는 여기에 있네.

       

         인후의 감로 중추에는

         마하마야불이 시자들과 머무나니

         모든 형태의 기쁨을 상징하네.

         여기는 금강이 현현되는 중추이네.

 

         미간의 흰빛소라중추에는

         석가모니불이 많은 천신들과 머무나니

         이는 지혜와 복덕의 상징이네.

         여기는 합일의 중추이네.

 

         정수리의 대지복(大至福)중추에는

         쌍와뒤빠불과 천신들이 머무나니

         나디(에너지 통로)와 빈두는

         여기 지복 중추에서 합일되네.

 

         아들아, 그대가 붓다와 '하나'되면

         성체(聖體)가 뚜렷이 나타나리.

         살과 피는 무지개 몸으로 화현되리니

         이는 온갖 경이중에서도 가장 큰 경이라네.

         아들아, 신심을 잃지 말고

         공경심을  더 한층 지닐진저!

 

그러나 래충빠의 마음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스승님의 기적은 참으로 놀랍지만, 제발 경전을 되돌려 주십시오!"

미라래빠는 래충빠의 앞에서 바위와 다른 장애물들을 관통하고, 바위 위로 날아가고, 물을 뿜어내기도 하고, 하늘을 가로질러 날다가 공중에 앉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무수히 분신하여 다시 하나로 만들기도 하였다. 미라래빠는 이렇게 기적을 시현하며 노래하였다.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보라, 어떤 장애물도 나에게는 없나니

         이는 내 마음이 만물과 '하나'임을 증명하네.

         바위를 통과하고 공중을 날음은

         내가 바깥 대상을 통달했음을 증명하네.

         땅위를 걷듯 물 위를 걸음은

         4대 원소를 하나로 결합할 수 있음을 증명하네.

         온 몸에서 불꽃과 물을 쏟아냄은

         모든 원소에 통달했음을 증명하네.

         무수한 몸 나투고, 다시 하나의 몸으로 나타냄은

         일체 중생을 갖가지로 제도함을 증명하네.

         공중에서 걷고 앉고 누움은

         중앙 통로에서 생명 에너지가 휴식함을 증명하네.

         염소떼 놀이구경 흥미로울지언정

         이 놀라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아들아, 신심을 버리지 않으면

         그대의 소원은 성취되리라.

 

그러나 래충빠는 대꾸했다.

"스승님의 기적[神通]이란 단지 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흥미는커녕 피곤하고 싫증만 날 뿐입니다. 저에게 진정 자비심을 느끼신다면 제발 경전들을 돌려 주세요!"

미라래빠는 대답했다.

"나의 아들아,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말아라. 그대가 신실하게 간구한다면 모든 현상계가 거룩한 경전임을 깨닫게 되리라. 자, 이제 이 깨달음을 위해 나에게 간구하도록 하여라."

그후 미라래빠는, 상인(商人)들이 진 지방으로 갈 때면 이용하곤 하는 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는 길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바위를 집어올려 과자를 부수듯 바위의 한 부분을 빻더니, 물을 뿌리듯 바위 부스러기를 하늘로 뿌렸다. 그리고 한쪽 바위는 마치 마른 흙덩이를 짓밟아 부수듯 부수고, 마침내 남은 큰 바윗덩이는 한 손으로 번쩍 치켜들어 까마득한 골짜기 아래 강물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좁은 산길 가운데

         여덟 모서리 무쇠 바위가 가로막았네.

         오른쪽 모서리는 행인들이 오르느라 닳아지고

         왼쪽 모서리는 길을 내려가느라 닳아졌네.

         대장장이 백 명인들 무쇠 망치로

         거대한 바위를 쪼갤 수 있으랴.

         풀무가 백 개인들 녹일 수 있으랴.

         하지만 보라, 과자를 부수듯 나는 부수었고

         물을 뿌리듯 돌가루를 흩어버렸다.

         흙덩이를 밟듯 밟아 뭉개었고

         화살을 쏘듯 던져버렸다.

         신심을 지니고 아버지를 경앙(敬仰)하면

         소원 성취 단비가 쏟아지리.

         하여 소원 성취의 보고(寶庫)를 깨달으리니

         노니는 염소떼 구경하기 흥미로울지라도

         이 놀아운 시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아들아, 지금 곧 마음을 돌이키렴.

 

래충빠는 여전히 스승을 불신하며 말했다.

"경전을 되돌려주는 기적을 행사한다면 선생님을 믿겠지만 그렇지 않는 한 저는 조금도 만족하거나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이에 미라래빠는 날개를 펼치듯이 옷자락을 펼치고 적암 절벽 위 하늘로 곧장 날아올랐다. 그리고 날개치듯이 펄럭이며 매처럼 선회하다가 번개의 섬광처럼 돌진하여 다시 땅에 내려 왔다. 이 기적을 시현하면서 미라래빠는 노래를 불렀다.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을진저!

         여기는 적암 봉우리

         하늘성()이 솟아 있네.

         커다란 매가 날개치며 적암 위를 선회하니

         작은 새들이 무서워 떠네.

         누구도 여기서 날아본 적이 없었고

         아무도 다시는 날지 않으련만

         자, 늙은이를 보렴!

         창공의 독수리 처럼 하늘 높이 날지 않는가.

         보라, 매처럼 선회하며 구름처럼 떠돌다가

         번개처럼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가.

         신통을 믿는다면

         그대는 육신을 통달하라.

         마침내 윤회계와 열반계가 '하나'임을 알리라.

         노니는 염소떼 구경하기 재미있을지라도

         이 놀라운 싱현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아들 래충빠야,

         그대는 마음을 바르게 펴렴!

 

그러나 미라래빠의 이러한 신통도 래충빠에게는 별다른 감명을 주지 못했다. 그는 단지 냉담하게 흘겨볼 뿐이었다. 이에 미라래빠는 새가 날개를 펼치듯이 옷자락을 펼치고 한번 더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래충빠야, 잠시 동안 노래를 들으렴!

         묀 산간의 적암 봉우리에

         느닷없이 염소떼 나타났네.

         여기에는 어떤 이유도 있을 수 없나니

         불생(不生)의 실체가

         자연스레 나타난 유희일 뿐이네.

 

         한 마리 염소는 늑대인 양

         능선 너머로 염소떼를 몰고 갔나니

         이는 자신의 무수한 결점(번뇌)을 깨달아

         일시에 몰아냄을 상징하네.

         또한 이원성(二元性)의 능선을 넘어감을 뜻하나니

         이는 실제적인 가르침을 보이려고

         미라가 시현한 마법이었다네.

 

         그대는 아버지의 기적에는 관심없고

         염소떼 놀이에만 흥미있었나니

         이는 마음을 잃어버린 징표이네.

         갖가지 기적을 보고도

         그대는 여전히 신심이 없네.

         혼탁한 이 시대 불신자들 생각하면

         미라의 가슴은 아프고 슬프네.

 

         래충빠야, 잠시 동안 귀담아 들으렴.

         딱딱한 뿔과 단단하 나무도

         단련하면 굽힐 수 있지만

         완고한 마음은 굽히기 어렵나니

         래충빠야, 내면의 마음을 정복하렴!

 

         남방의 사나운 호랑이와 북방의 야생 야크들은

         공들이면 길들일 수도 있지만

         자존심과 이기심을 극복하기 어렵나니

         래충빠야, 내면의 자존심을 극복하렴!

 

         땅 속의 들쥐와 공중의 날새는

         덫과 그물로 잡을 수도 있지만

         놓쳐버린 마음은 붙잡기 어렵나니

         래충빠야, 불생(不生)의 마음을 명상하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녀들을 떠날 수도 있지만

         자신의 나쁜 기질은 떠나기 어렵나니

         래충빠야, 기질과 성미를 바꾸렴!

 

         보석과 집과 토지는

         원하면 버릴 수도 있지만

         쾌락에 집착하는 마음은 버리기 어렵나니

         래충빠야, 쾌락에 대한 갈망을 버리렴!

 

         진귀한 물건과 사랑하는 연인은

         원하면 떠날 수도 있지만

         부드럽고 포근한 잠자리는 떠나기 어렵나니.

         래충빠야, 시신(屍身)같은 '맹목'의 수면을 포기하렴!

 

         이 산 저 산 언덕과 바위들은

         서로가 대면하고 있지만

         마음속 진아(眞我) 얼굴은 참으로 대면하기 어렵네.

 

         왕과 왕후의 칙언은

         피하려면 피할 수도 있지만

         사자왕(死者王) 염라대왕은 피할 수 없나니

         래충빠야, 죽음을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렴!

 

         아들아 그릇된 관념을 바로 잡고

         나쁜행실을 버리렴!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을 훈련하고

         불경한 생각을 뿌리뽑으렴!

         그리고 이기심의 악마를 물리치렴!

 

         래충빠야, 죽음이 다가오면

         내가 남길 유언은 이것뿐이나니

         내 생애 중 그대에게 줄, 이보다 깊은 교훈은 없네.

         래충빠야, 오, 아들아!

         아버지의 가르침을 명심할진저......!

 

미라래빠는 노래를 부르면서 점점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의 몸은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하늘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 순간 래충빠는 참회하기 시작했다. 스승을 향한 불변의 신심이 가슴속에서 솟아났다. 래충빠는 생각했다.

'오, 나는 사특한 성미를 감당치 못하고 경전 두루마리에 부질없이 마음을 빼앗겼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승을 잃어버렸도다! 그 하잘것 없는 책 때문에 이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다니! 스승께서는 나를 위해 온갖 기적들을 시현하셨지만 한사코 불신하였도다! 이제 스승께서는 무거운 짐을 벗듯 나를 떠나 육신 그대로 다끼니 정토로 승천하셨구나! 나 같은 불신자는 감히 거기 태어날 수도 없겠지...... 스승께서 떠나셨으니 책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차라리 이제 마지막으로 서원을 간구하면서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어버리자! 오, 스승이시여, 세세생생 영원히 스승곁에 태어나 스승과 '하나'되게 하소서!' 래충빠는 이렇게 서원한 뒤 죽음을 결심하고 깊은 골짜기 아래로 몸을 던졌다. 커다란 바위에 부딪치는 바로 그 순간 스승의 그림자가 비쳤다. 그는 온힘을 다해 스승을 외치며 따라 잡으려 하였다. 스승은 공중으로 날아 올랐으나 그는 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그림자를 따라 절벽의 중턱까지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더 이상은 한 발짝도 올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스승을 뵙고 스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스승은 절벽에서 불룩 튀어나온 우묵한 동굴의 바위 위에 앉아 계셨다. 스승의 양옆에는 스승과 똑같은 두 사람의 화신(化身)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들은 참회하는 래충빠의 간청에 응답하여 한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래충빠야, 귀담아 들을진더.

         보라, 아버지 스승에게서 두 사람이 화현했음을.

         그대는 그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그들에게 안부를 묻고

         딴뜨라의 교의를 받을진저.

         그리고 입문식과 가르침을 구하렴.

         심오한 시현을 그들에게 간구하렴.

         그들을 신뢰하고 그들 안에 귀의하렴.

 

         나의 기적을 믿는다면

         그대의 자만심은 꺾이리

         악행은 염라대왕의 승리를 뜻하나니

         염라대왕 두렵거든 악을 피하렴.

         사악한 생각은 수행을 방해하나니

         간절히 참회하렴!

 

래충빠의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울먹이며 노래를 불렀다.

 

         들으소서, 아버지 스승이시여,

         지혜와 축복의 거룩한 화신이시여!

         기적의 시현조차 불신하던

         눈멀고 불경한 아들의 노래를 들으소서!

         가운데 계시는 스승이시여,

         임에게 예배드리며, 죄업을 고백합니다.

         오, 아버지 스승이시여!

         임은 계율과 입문식과 교의를 베푸셨나이다.

         래충의 무지를 깨우치셨나이다.

         하여 래충의 영원한 은둔처가 되셨나이다!

         간구하오니 다시는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은총으로 보호하소서!

         불손한 걸식 행자를 지켜주소서!

 

래충빠는 마침내 미라래빠가 앉아 있는 곳에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미라래빠를 와락 껴안았다.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는 곧 실신하고 말았다. 한참 후 래충빠가 깨어나자, 미라래빠는 그를 데리고 동굴로 돌아갔다. 이때 화신들은 사라졌다.

미라래빠는 래충빠에게 말했다.

"불타의 경지를 성취하려면 그대는 스승의 핵심 교의를 수행해야 한다. 논쟁이나 외도들의 사악한 주문(呪文)에 관한 책들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나 '다끼니의무형 교의(無形敎義)'는 훌륭하고 심오한 것이다. 이것은 태우지 않았다. 비록 원래의 의도 자체는 불타의 경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 삼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행법들이 기록된 무가치한 책들이 있기에 나는 그 책들을 태운 것이다. 자, 그럼 노래를 들어보렴."

 

         래충빠야, 사랑으로 길러온 아들아,

         그대는 핵심교의를 구하러 인도로 간다더니

         논쟁거리 책들만 지니고 왔네.

         그대는 논리학자 되려 하느냐?

         명상 수도자 되고 싶지 않느냐?

         그따위 책의 지식만 많이 쌓으면

         오만한 설교자가 되기 쉽나니

         '하나' 와 '전체'를 모두 아는 것이 그대의 소망 아니었나!

         끝없는 언어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가

         지중한 '하나'를 잃으려 하는가?

         진리를 아는 것이 그대의 의도 아니었나!

         끝없이 분주한 활동에 사로잡힌다면

         탐욕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자가 되나니.

 

         그대에게 당부했던 지순한 경전은

         바위틈에 숨겨져 다끼니들이 지키네.

         간절히 기도하면 되돌려 받으리.

         뭇사람의 미망(迷妄)에서 건지려고

         사악한 주문과 마법의 책들은

         불의 신에게 예물로 바쳤네.

 

         분노로 그대 자신을 달달 볶지 말지니

         그러면 저절로 마음이 안정되리라.

         지나치게 괴로워 말고 비탄하지 말지니

         괴로움과 슬픔은 그대의 심신을 해칠 뿐이라.

         잡사에 분망하지 말고

         편안히 앉아 쉬면서

         스승의 은총과 은혜를 기억하렴.

 

래충빠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했다.

'스승님의 말씀은 항상 진실하므로 부처님의 말씀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다. 나는 이제 다끼니들에게 경전을 돌려 달라고 간구해야겠구나.'

래충빠는 앉아서 간구하였다. 얼마 지나자 '무형 다끼니 교의'와 중생들에게 유익을 베풀 다른 경전들이 기적같이 래충빠의 손 안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한없이 기쁨에 젖었다. 명상에서 깨어난 래충빠는 확신했다. 스승 미라래빠야말로 붓다 자신이라는 것을. 이리하여 스승에 대한 신심이 더욱더 깊어진 래충빠는 다짐하였다.

'지금까지 나는 스승을 위해 여려 모로 봉사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한층 더 열심히 봉사하리라.'

그는 이 서약을 지키면서 남은 생애을 보냈다.

이 무렵 제자들과 보시자들이 인도에서 돌아온 래충빠를 환영하려고 찾아왔다. 무리들 중에서 쎄완래빠가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래충빠여, 그대는 스승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인도에서 핵심 교의와 논리학을 배웠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논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 들려주지 않겠는가?"

그러자 미라래빠가 래충빠에게 말했다.

"래충빠야, 어떻게 하면 논쟁에 '이기는지' 다끼니 교의의 관점에서 얘기해보렴!"

이에 래충빠는 노래로 응답하였다.

 

         붓다의 위대한 계승자 지금강불은

         법통 안에서 모든 논쟁의 불을 끄시네.

         살아계신 스승님, 래빠 부처님은

         걸신들린 학자들의 논쟁을 마무리짓네.

         심오한 교의와 법통의 방편도(方便道)는

         온갖 사특한 논쟁의 불을 끄네.

         편재한 대원평등경(大圓平等鏡)의 마음은

         숨은 악을 모두 들춰내네.

         대지복(大至福)교의는 지혜의 불꽃으로

         방황하는 사념을 불태우네.

         에너지 중추들의 나디(Nadi)와 생명 에너지 각성은

         산란한 마음과 졸음을 일시에 물리치네.

         마하무드라의 위대한 가르침은

         오식(五識)에 탐닉하는 아상(我相)을 정복하네.

         지혜등(智慧燈)의 가르침은

         어둠과 무지를 몰아내네.

         집착심을 쪼개는 검객의 칼날은

         세속의 욕망의 끈을 끊어버리네.

 

이에 덧붙여 미라래빠가 노래를 불렀다.

"그대의 노래는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거기에 덧붙여 정견과 수행에 관한 가르침이 필요하다. 자, 나의 노래를 들어보렴."

 

          정견은 공()의 지혜요,

          수행은 무 집착의 깨달음이요,

          정행은 무욕(無欲)이 영원한 놀이요,

          성취는 위대한 무염(無染)의 나신(裸身)이네.

 

          공성(空性)의 지혜는

          논리와 생각으론 알지 못하네.

          절대적인 지성이 내면에서 꽃피지 않으면

          말로써는 아상 집착을 벗어나지 못하네.

          그러니 바른지견 얻기 위해 정진하렴.

      

          무집착의 깨달음은

          단순한 집중만으로는 얻지 못하네.

          내면에서 대지혜가 밝아지지 않으면

          부단히 집중할지라도 해탈에 이르지 못하네.

          흩어지는 마음과 졸음으론

          명정한 지혜가 생기지 않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으렴.

 

          무욕의 행동은

          잡사에 탐닉하면 얻지 못하네.

          만상(萬相)이 수행에 도움되기 전에는

          딴뜨라의 광행(狂行)은 위장된 세속 욕망이네.

          그러니 정결과 무집착에 힘쓸진저!

 

          무염의 나신은

          생각이 첨가되면 얻지 못하네.

          내면에서 무명(無明)이 걷히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는 보잘것없네.

          그러니 먼저 마음속의 무명을 걷어낼진저!

 

  이에 참례한 제자들과 보시자들은 이 노래의 진리를 확신하고 법열에 젖어 들어갔다.

 

  이 장은 야생 염소떼와 래충빠의 참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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