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중국에 각 지역에 있는 만리장성은 모두 동일한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성벽의 폭과 높이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대체로 동쪽이 서쪽보다 견고하게 만들어져있다. 만리장성 증축에 사용된 재료는 벽돌과 벽돌을 불에 구운 전(塼) 등을 사용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한 재료로 사용했다. 진시황에 이르러 30만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들이 셀 수도 없을 벽돌을 차례차례 쌓아 연결함으로써 현재 만리장성의 원형을 만들었는데, 이때 길이가 만리가 넘었다.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6~9m가량이며 만리장성에는 100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한 후 군대를 주둔시켰다. 요새는 마을, 산길, 여울 등을 방어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성벽 위쪽 길은 군대가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비상길을 만들어 놓았다. 거대한 규모의 만리장성에는 중국 하북성에 위치한 곳에 산해관((山海關)이라는 첫 번째 성문이 있고, 1949년 이후 완벽히 복구된 요새인 자위관(嘉峪關)이 북서쪽 끝에 위치한 마지막 성문이다.
밥풀의 힘! 만리장성의 은밀한 비밀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거대한 만리장성이 지금껏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무거운 벽돌이 성벽을 따라 나란히 붙어있는 모습은 만리장성이 과히 세계 7대 불가사의에 꼽힐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만리장성의 미스터리 중 최근 과학적 발견으로 그 궁금증이 한 가지 풀렸다. 그 비결은 바로 ‘밥풀'에 있다. 바로 과거 만리장성의 돌과 돌을 붙일 때, 찹쌀 죽을 쒀서 돌 사이에 발랐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펼친 곳은 중국 문화 유적보존 및 복원 연구소이며 최근 보수공사를 하며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연구소 측은 보수공사 중 얻은 의미불명의 접착 물질을 연구한 결과 찹쌀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만리장성을 이은 밥풀. 이 얼마나 대단한가?
거용관 장성 (Juyongguan)
거용관 장성
거용관 장성(居庸关长城, 쥐용관창청)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만리장성의 부분으로 고대 군사 요새 중 중요한 전략상 요충지였다. 베이징 시내에서는 60km가량 떨어져 있는 창평구(昌平区)에 자리하며, 팔달령(八达岭)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바로 이동할 수 있다. 거용관은 수도와도 가까운 성답게 과거부터 대대로 수도를 지키는 요새 역할을 담당했다. 거용이라는 명칭은 춘추전국시대『여씨춘추』란 책에 기록된 문구 중 ‘천하에 있는 9개 관 중에 거용이 그중 하나이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원나라 시대에는 지금의 베이징에서 내몽다륜(內蒙多倫)으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의 요점지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황제가 자주 왕래했기 때문에 관 내부에 사원, 화원, 침실 등이 있었다. 거용관에서 가장 유명하고 핵심적인 건축물을 말하자면 거용관운대(居庸关云台)를 말할 수 있다. 운대(云台)는 원대의 라마식 탑인 과가탑의 기초 유적물로 원말 명초 지진에 의해 훼손되었으나 명대에 훼손된 탑 위에 불사를 건립 후 이를 운대라 칭했다. 하지만 1702년 청대에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단지 탑의 기초만 남아있다. 운대를 중심으로 양쪽에 성벽이 축조되어 그 용모가 웅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거용관 장성은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었지만, 과거 여러 차례의 봉화와 폭약으로 인해 다수의 건축물들이 파괴되었다. 따라서 과거의 모습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1992년부터 망루, 장성, 사당, 식량 창고 등 총 58개의 건축물 복원 작업을 시작하였고 2000년에는 주차장, 숙소, 쇼핑센터 등 관광을 특화할 수 있는 설비를 완비했다. 이곳은 케이블카가 없다. 다 돌아본다면 왕복 3시간가량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