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스님의 크신 꿈과 덕적군도 순항(德積群島巡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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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스님의 크신 꿈과 덕적군도 순항(德積群島巡航)

 

 

1.    꿈에 그리던 바다로                              7.    인간 기중기(起重機)

2.    환희와 공포의 공존, 긴장과 안도의 교차    8.    바다의 삼존불(三尊佛)

3.    사막의 구걸                                        9.    스님의 중신(重臣)

4.    아름다운 이작도 백사장                       10.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5.    온 우주가 나의 것                               11.    개척정신의 재발견

6.    내세(來世)에는 바위로 태어나고 싶다

 

 

 

세월이 유수 같다.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다. 옛 어른들은 빨리 가는 세월의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요즘은 세월이 너무도 빨리 변하여 엊그제 일도 멀리 느껴지고, 불과 2~3년 전의 일도 추억을 더듬으면 꿈 속을 헤매는 듯합니다.

2010년 여름, 큰스님의 실험 항해를 기록하였습니다만 9 2일의 태풍 곤파스로 안면암이 큰 피해를 입어서 그 피해 복구에 전념하시는 스님 모습 뵈면서 이 기록을 묻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안면암 발자취의 일부라고 생각되어 기록삼아 남깁니다.  - -  2013. 03. 10.

 

 

 

1. 꿈에 그리던 바다로

 

2010 8 18, 경자(庚子)일 아침.

석지명스님 모시고, 안면암 불자 셋이 서해 바다로 나간다. 4 5일 예정이었다.

스님께서는 2004년 무 동력 일엽편주로 북태평양을 횡단 항해 하시어 명성이 드높은 특급 선장이시다. 동행 각운행 보살님-이하 존칭생략-은 그 항해를 수행한 베테랑 승무원이고, 또 한 분 청정심 보살님은 바늘 가는데 실 가듯 큰 스님 행차에 없어서는 아니 될 수행 시자(侍者)이고, 나 무진성에게는 승선하는 행운과 함께 기록 책임이 주어졌다 

이 바다 여행이 끝날 무렵 여름철 안면암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바다에의 도전 정신을 일으켜 주기 위하여 배 운항 실험을 하고, 교련사를 양성하시려는 큰스님의 깊은 뜻이 이 여행에 숨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8일 아침 7, 약속된 인덕원에서 스님 일행과 만나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여 만에 목적지 요트 정박장에 도착하였다. 요트 하버는 국제대회를 치른 곳답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해양경찰에 출항 신고를 하고, 각자 짐을 옮겨 싣는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짐을 들고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구조물, 플래스틱 다리를 조심 조심, 한발 한발씩 떼어서 무사히 건넜는데, 뜻 밖에 각운행이 발이 빠져서 정강이에 피부가 벗겨지는 상처를 입었다. 스님께서는 무진성이 다칠 줄 알았는데, 각운행이 다치다니… . ‘ 라고 아주 의외란 듯 말씀하셨다. 내가 걱정거리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짐이 많다. 바다에서 고립 무원상태가 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모험 길이므로 최소한 3일 간은 견딜 준비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이것 저것 챙겼다.  먹을 것으로 라면 한 박스, 보리건빵 비스킷 등 스낵 류 한 보따리, 유효기간이 긴 두유 두 박스를 구입하고, 최고의 재료로 고추장볶음을 정성들여 만들었다.  상비 의료품으로 소화제, 지사제, 해열제, 멀미 약, 청심환, 안티푸라민, 상처 외용연고, 머큐롬, 알콜 소독솜, 반창고, 붕대, 땀띠용 파우더, 모기향, 벌레 물린데 바르는 물약 등을 준비하였다.

 

가장 긴요한 것은 해양 스포츠 용품이다. 선장님의 지시에 따라 아쿠아 슈즈, 다이버 용 엷은 T샤스, 휴대전화기 및 약간의 현금을 넣을 수 있는 작은 물 주머니를 마련하였다. 나는 아들이 특별히 준비해 준 구명 조끼와 야영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에 따라 침낭도 준비했다. 다른 승무원 두 분도 짐이 만만치 않다. 짐들을 일단 고무 보트에 싣고 노 저어 나가서 우리들의 실험용 요트에 옮겨 싣는다.

 

요트에 다가 가는데, 그 하얀 동체 허리 선에 <NAGARJUNA> 라고 쓴 검은 글씨가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나가르쥬나란, 150~250년대에 살았던 위인으로 추정되며, 2의 석가모니로 추앙 받고 있는 분이다. 철학자이며 승려이신 나가르쥬나 존자는 최고 수준의 사상을 완성하고 전파한 인도의 용수(龍樹)보살이며, 그는 만행(萬行) 끝에 욕망은 번뇌를 낳을 뿐이라는 진리를 깨달은 생불(生佛)이라고 전해 지고 있다. 우리 스님께서는 최선의 이름을 이 요트에 부여하신 것 같다.   요트에 오르면서 나가르쥬나 님, 우리 여행을 지켜주세요라고 남 몰래 합장한다.

 

요트는 전장 6m, 2m 12인승 소형 배다. 마스트 높이와 배 무게와의 균형 잡는 것 못지않게 작은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요트 설계의 중요 기본이라 읽었었는데, 과연 그 작은 공간에 있어야 할 것은 다 갖추어져 있다.

 

선장님께서는 승무원들을 위하여 첨단 섬유로 제작된 본격적인 스킨 스쿠버 다이빙용 물 옷을 특별히 준비해 두셨다. 이 옷은 부력이 좋아서 구명조끼가 필요 없고, 보온이 잘 되어 수중에 오래 머물러도 춥거나 쥐가 나는 일이 없어 매우 안전하다고 설명하셨다.

 

시계는 9시가 지나고 있다. 요트는 대부도가 북쪽으로, 제부도가 남쪽으로 보이는 바다를 미끄러져 나간다. 푸른 하늘에는 햇빛이 눈 부시게 빛나고, 솜처럼 하얀 구름이 두둥실 흐르고, 바람은 산들 바람이 일 듯 상쾌하게 불어 온다. 지난 7월 말께, 선장님께서 일정을 잡으실 때만 해도 8월 하순을 바라보는 환절기에 날씨가 어떨까 의문이었다.  지난 주부터 일기예보는 우리가 바다 여행을 계획한 4~5일 동안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되겠다고 하더니 고맙게도 날씨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스님께서 택일을 잘 하셨다는 감탄들이 거듭되었다.

 

 

2. 환희와 공포의 공존, 긴장과 안도의 교차

 

10시 조금 지나 넓은 바다로 나왔을 때, 돛을 내렸다. 기름 넣고, 엔진 점검 등 모든 것을 확인하는 출항 준비에 꽤 긴 시간이 걸렸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한 후에도 선장님은 여기저기 직접 확인하시고, 크루 두 분은 선장님의 지시에 따라 이리 저리 뛰어 다닌다. 처음에는 나도 무언가 도움이 되려고 스님의 지시에 귀를 기울였지만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방해만 되겠기에 아예 관심을 접었다. 여행하는 동안 계속 내 머리 속에는 내가 사고만 내지 않아도 그것이 보탬이 될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각운행은 베테랑 승무원답게 선수(船首) 덱크에 앉아서 항로를 살핀다. 길쭉한 망원경만 들려 주면 영락없는 망보기 항해사이다.  어부들이 어망 등을 설치해 둔 어장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선장님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는 중이다. 태평양을 건넌 요트 바라밀다호의 선장실 문 앞에 선장의 말은 곧 법이다라고 영문으로 쓰여진 팻말이 붙여져 있던 것을 상기한다. 이 말은 당연지사이며 진리이다.  선장의 판단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안전 여행 성공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먼 바다에 나갔을 때쯤부터 바람이 강해졌다. 일렁이는 작은 파도가 무리를 이루어 큰 너울 파도가 된다. 작은 요트가 그 큰 파도를 타고 넘을 때마다 배 앞머리가 위로 솟구쳤다가 쑤욱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아주 기분이 좋았는데, 배가 계속 심하게 흔들리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기분이 이상해져서 고생한다. 이 불청객 같은 생리적 현상을 스스로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원망스럽다.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아무도 점심 먹을 생각을 않는다. 선장님은 이 기회가 운동도 되지만 다이어트 하기에 절호의 기회라고 하신다. 우리 모두는 아침밥을 먹지 않았었다.

 

오후 1시쯤, 요트는 승봉도(昇鳳島) 근해에 다달았다.

 

항해 지도. 오른 쪽 제일 아래가 대이작도. 왼쪽으로 위 항로 끝에 있는 섬이 굴업도. 항로 따라 내려와서 가장 왼쪽 갈매기 날개 아래 큰 섬이 백아도

 

선장님은 휴대용 수심계로, 각운행은 요트에 장착된 계기를 읽으며 서로 일치되는 수치를 얻을 때까지 신중히 배를 정착시킬 장소를 찾는다. 드디어 닻을 내린다. 승봉도는 북위 37 10, 동경 126 10푼에서 조금 동쪽에 떠 있는 섬이다 

우리들은 입수할 준비를 한다. 얇은 옷 위에 선장님이 준비하신 해녀 복 같은 검은 스쿠버 다이빙 복을 입는다. 꽉 조이는 옷이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팔 다리를 끼어 넣을 수 없다. 친절하신 두 보살님들이 힘껏 잡아 당기면서 도와 주어서 간신히 옷을 입고 그 위에 구명조끼까지 입었다.

 

바다에 뛰어내린다. 각자 부판 하나씩 붙잡고 물 위에 뜬다. 보살님들이 나의 발에 오리발을 신겨주었다. 그 분들은 익숙한 솜씨로 오리발을 신는데, 나는 조금만 딴 짓을 하면 금방 가라앉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내 몸에는 배에서 내린 끈이 엮어져 있고, 부판도 끈으로 연결되고 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한 가운데에 내가 떠 있다니!!  모든 것이 환상적이다. 이것이 꿈이런가 생시런가!! 환희는 공포를 이기고도 남았다. 해신(海神)같은 선장님의 보호를 받으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서 수영을 즐긴다는 것이 나의 생애에 또 있을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전율 같은 기쁨이 온 몸을 흐른다. 오리발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두어 번 발을 젓기만 하여도 목표지점을 향하여 쭉쭉 앞으로 나간다. 실내 수영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체험을 한다. 지나고 보니 이 수영 경험이 이 바다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일행 여러 분이 한 참 수영을 즐기시는데, 나는 서서히 가슴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꼭 조이는 옷에 익숙하지 못해서 숨 쉬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이를 알아차리신 선장님이 배로 돌아 가게 해 주셨다. 오리발 신은 채로는 선미(船尾)에 장착된 사닥다리에 발을 얹을 수가 없고, 나는 오리발 벗을 줄도 모른다. 선장님이 먼저 배에 올라 나를 잡아 당기시고 두 승무원은 나의 오리발을 벗겨 주셨다. 수영 장비 옷을 모두 벗으니 맑은 공기가 심장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나는 이 여행에서 여러 분께 많은 신세를 졌다. 스님의 세심하신 배려와 두 보살님의 아낌 없는, 사랑이 넘치는 보살핌을 받았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공주 같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마음 속에는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이분들에게 애물단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행이 모두 승선하고 다시 순항이다. 30여 분을 달렸을까. 선장님은 다시 수심을 재고 확인하신 다음 하선 준비를 명하신다. 어미 말 옆에 망아지 따라가듯 요트 옆구리에 매달려 파도를 함께 넘으며 촐랑 촐랑 따라온 고무보트가 어쩐지 애잔하게 보인다. 우리들의 생명선()이기에 신세 진다는 마음이 컸다. 모두 고무보트에 갈아 타고, 넷이서 균형 잡고 노를 젓는다. 요트에서 6~700m 정도 떨어진 사()승봉도에 상륙한다. 땅 위에 섰다는 안도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3. 사막의 구걸

 

사승봉도에 상륙하자 마자 스님께서는 모래 사장 언덕 주변에 어떤 편의 시설이 있는지 찾으려고 잰 걸음으로 앞장 서서 걸어 가신다.

시장 끼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한다. 나는 시간 맞추어 식사하는 습관이 몸에 베어 있다. 아침을 먹지 못한데다가 익숙지 못한 운동을 꽤 많이 한 셈이다. 오후 3시가 넘고 있다. 허기를 참을 수 없었다. 뙤약볕 아래서 현기증이 나고 더 이상 걸으면 쓰러질 것 같았다. 여기서 소동을 일으키면 일행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된다. 정신을 차려서 주변을 살핀다.

 

우리가 상륙한 모래사장은 바다를 양쪽에 끼고 길게 뻗어 있다. 왼쪽에는 남자들이 수영과 낚시를 즐기고 있다. 세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가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가까이 다가 오고 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저 여인네의 손에 나의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숨을 길게 들이 마시고 목청을 가다듬어 용기를 냈다. “아주머니, 사탕 같은 것 있으면 하나만 주시겠어요”.  바구니를 들고 걷던 두 부인이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이상한 사람 아닐까 의아해 하는 눈길을 교환한다.

 

이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버리면 아무것도 없는 이 벌판에서 나는 비참해질 것이다. ‘거지도 잘 입은 거지가 얻어 먹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저만치 파도 위에 세워 둔 배를 가리키며 요트에 먹을거리가 잔뜩 있는데, 여기에 따끈한 것이 있을 듯하여 그냥 내렸더니… “라고 다시 말을 시작하였다. 그제서야 한 부인이 사탕은 없고, 이거라도..”하면서 쵸코파이 하나와 뽀또 한 봉지를 꺼내주었다. 뽀또는 500원짜리 동전보다 조금 더 큰 비스킷 두 쌍이 들어 있다. 하나를 내가 먹고 하나를 청정심에게 건넸다. 그녀는 몸이 날렵하지만 서양미인처럼 깡말라서 쉬 시장 끼를 느끼는 체질이라 한다. 그녀도 달갑게 받아 먹는다.  쵸코파이를 갈라서 각운행에게 권하였으나 그녀는 사양하였다.

 

앞서 가시는 스님 몰래 이루어진 한 토막 연극 같은 이 상황을 청정심은 사막의 구걸이라 명명하였다. 한 입 다신 것으로 위기를 넘긴 경험이다. 비상 식량을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스님께서는 저만치 언덕에 있는 비닐 하우스 같은 가게로 가셨으나 물과 맥주만 팔고 있어서 실망하고 내려 오셨다. 서둘러 고무 보트를 타고 요트로 돌아간다. 우리 집 같은 나가르쥬나에 올라 두유 비스킷 등으로 빈 배를 채운다. 밥 짓기 위한 시설이 있고, 쌀 준비도 되어 있었는데, 가스버너에 가스가 나오지 않았다. 휴대용 가스버너에 불을 집히려 하였으나 이번엔 가스통이 고정되지 않는다. 시설 점검을 제대로 한 셈이다.  

 

 

4. 아름다운 이작도 백사장

 

사승봉도를 떠나 대이작도(大伊作島)로 향한다. 해변은 커다란 활처럼 휜 길고 넓은 백사장이다. 동서로 10리는 넘어 보인다. 그 넓은 모래 밭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아마도 날씨가 이렇게 좋을 줄 예견치 못한 사람들이 시즌 열기를 접은 탓인 것 같다. 수심을 확인하고 요트를 세운다. 필요한 짐들을 고무보트에 옮겨 싣고 우리는 열심히 노를 저어 백사장에 오른다. 선장님은 멀미 난다더니 노는 죽으라고 잘 젓네라고 조금 안심하신 듯 말씀하신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네 사람이 노 젖는 박자가 맞아야 배가 안전하게 나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육지에 올라야 울렁증이 가라앉을 것 같은 기대도 있었다.

우리가 고무보트 댄 곳은 주안 남초등학교 대이작분교 앞 모래뻘이다.

 

오후 5시가 넘고 있었으나 남은 햇살이 따갑다. 아름다운 해변이다. 물은 맑고, 파도는 잔잔하다. 하늘에는 저 멀리 깃털 같은 구름이 유유히 떠 있다.  학교 뒤에 민박 집이 있어서 찾아 들었다. 이미 시즌이 끝나서 손님 맞이 준비가 없다면서 딴 곳 찾아보라 하였다. 모두 지쳐 있는데, 난감하였다.  몇 마디 하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는 저녁식사를 식당에 가서 먹는 조건으로 방을 내 주었다. 이 곳 보건소 직원이 모기 퇴치 약을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을 전체의 위생상태는 좋아 보였다. 민박집 샤워시설이 잘되어 있었다. 소금기를 씻어내고, 보송 보송한 옷으로 갈아 입으니 기분이 새롭다. 조금 언덕 진 곳에 영업 중인 식당에 들러서 청국장 요리를 먹는다. 제법 전통 맛을 내고 있어서 잘 먹었다

 

숲 속을 지나 마을 앞 바닷가에 나간다. 그 곳에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국가적 안보와 마을의 위급 상황을 위한 매우 중요한 시설이라고 보았다. 거기에 일행이 나란히 앉아서 하루의 피곤을 잊은 채 주변 경관에 감탄을 하며 산들바람을 즐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초아흐레 달이 희끄무레 떠 있다. 어둡사리가 내릴 즘, 헬리콥터 이착륙장에 자동 점멸등이 불을 밝히며 돌아간다. 우리들의 뒤에는 잘 자란 해송이 둘러 있고, 철썩거리는 파도 너머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어떤 향수 같은 것을 불러 일으킨다.

젊은 시절, 이 아름다운 자연에 접할 겨를도 없이 일에만 묻혀 살아 온

매 마른 날들이 서러워진다.  

 

선장님은 일어 서서 걷기 시작하신다. 우리도 묵묵히 무작정 뒤 따라 걷는다. 선장님은 어부들이 쓰다 버린 닻이 혹시나 있을까 하여 찾아 나서신 것이다. 여러 잡동사니가 버려져 있는 곳에서 이것 저것 살피시지만 어떤 것은 우리 배에 맞지 않게 너무 크고, 어떤 것은 이미 쓸 수 없을 만큼 삭아 버렸다. 쓸 만한 로프 몇 개 들고 돌아온다. 선장님은 바다에서 현지 조달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고 이르신다.  숙소로 돌아 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너무도 많은 것을 경험한 긴긴 하루였다.

                                                               

 

5. 온 우주가 나의 것

 

8 19.

민박집 아침 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떠날 준비를 한다. 끝내 마땅한 닻을 구하지 못하였다. 민박집에서 쓰는 닻을 두 배의 값으로 사려했으나 안주인은 남편의 허락이 없어 안되겠다고 하였다. 그들도 다시 사려면 인천까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낙도 생활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8시 정각에 굴업도(堀業島)로 향해 떠난다.  12 10분경, 굴업도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바라보이는 먼 바다에서 엔진을 껐다.  요트가 바람결과 물결에 흘러가지 않게 닻을 내릴 곳을 찾는다. 수심을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해저 바위 유무 등도 살피신다. 밧줄을 길게 내린다. 아마도 닻이 이 배와 균형이 맞지 않아서 고심하시는 듯하다. 이것 저것 세심하게 확인하다 보니 고무보트에 옮겨 탈 때는 12 50분이 넘어 있었다. 40여분 사이에 엔진이 꺼진 요트가 제멋대로 흔들려서 나는 또 다시 곤욕을 치렀다 

 

4시간 넘는 항해 끝에 상륙한 굴업도의 행정 구역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이고, 1.7평방 km (64만평)넓이의 이 섬에 열 가구, 2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이장의 설명을 오후에 들었다.

 

모레사장에 상륙하니 천하에 우리 일행 네 사람뿐이다. 날으는 새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넓은 해변이 우리 것이다. 강렬한 햇볕이 이글거리는 모레 뻘에 서니 바다 쪽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귓가를 간지르며 스쳐간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를 어루만지듯 다가왔다가 사라지듯 밀려 나간다 

석지명스님께서 어느 글에서 아무리 지고 또 져도 해와 달과 별, 산과 강과 들이 우리 것이라는 사실이 변하는 일은 절대 없음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 난다. ( 석지명칼럼, “승리를 보시하는 시주의 공덕” 2010.01.25.) 나는 그 글에 바다를 첨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태여 운율을 맞추려면 하늘과 바다와 바람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진실로, 내가 세상을 다 잃을지라도 이 자연은 여전히 나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온 우주가 나의 것이다.

 

바나나 비스킷 두유 초코렡 등으로 간단하게 요기한다. 바다에서 나오면 바로 물이 빠져서 말라버리는 그런 옷이 편리하다는 선장님의 권유에 따라 준비한 잠자리 날개처럼 엷은 윗도리를 입고 그 위에 구명조끼를 입는다. 선장님은 물론 두 승무원들도 익숙한 동작으로 수영을 즐긴다. 청정심이 물에 들어오라고 손을 내 밀어서 따라 들어 간다. 파도가 출렁이는 가장자리보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물결을 타지 않는다. 파도 위에 반듯하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본다. 몸의 힘을 빼야 편안하게 뜰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겁 많은 나는 적응하지 못한다. 일정한 연습량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열 한 살 그 어린 나이 때, 고향 마을 앞산 밑을 흐르는 깊은 강에서 수영하다가 잠시 숨결 고르는 사이에 물 속 깊이 빠져들었던 악몽을 평생토록 떨쳐내지 못하는 것 같다. 게다가, 상륙 준비하는 40 여분 동안 흔들리는 요트 안에서 멀미로 고생을 치른 탓에 정신마저 얼떨떨하여 몸의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제방 둑 옆에 만들어진 계단으로 돌아와서 햇볕에 뜨거워진 시멘트 바닥에 눕는다. 오후 2시 이후 가장 햇볕이 따가운 시간에 해 가리개가 없어 그대로 햇볕에 노출된 상태다. 살이 익을 것 같다. 골다공증을 예방하려면 비타민 D합성을 위하여 일광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얀 살결을 유지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대로 햇살을 받으면서 나에게는 이것도 과분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도, 수영을 자유자재로 즐기시는 저 분들이 못내 부럽다.

 

두어 시간 넘게 수영하신 스님께서 두 보살님들을 데리고 민박집을 찾으러 나서신다. 백사장 서쪽으로 멀리 사라져 가는 세 분의 뒤 모습을 보면서 무사히 돌아 오시기를 빌고 싶어졌다. 그 분들의 모습이 가물거리더니 더디어 소나무 숲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젊은 남자 둘이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하늘 아래 나 홀로다. 만약에 저 사람들이 나쁜 마음 먹는다면 나는 꼼짝없이 당할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우리 일행이 모습이라도 나타내 주기를 애 타게 기다렸다. 그들은 거의 5m 거리까지 다가왔는데,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모레 언덕 저쪽으로 넘어 간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던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내 손등과 다리 정강이가 뻘겋게 익을 즈음에 스님 일행이 나무 숲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신다. 미아가 보호자를 만날 때, 이런 심정일까!  산등성 너머에 민가가 있고, 민박집도 구했다고 하신다. 부지런히 짐을 챙겨서 모래밭을 걷는다. 마을 이장이 작업용 차를 몰고 찻길이 시작되는 곳까지 마중 나왔다. 그의 집은 어촌마을이라 하기에는 매우 깨끗하였고, 부인도 세련된 감각의 소유자로 보였다. 지하수 물맛이 일품이다. 거의 화상이라 할 정도로 빨갛게 부어 오른 다리를 그 차가운 지하수로 식히며 다독인다. 

 

저녁 준비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였다. 우리는 마을 산책 나갔다가 해변에 설치된 헬리콥터 이착륙장에 가지런히 앉아서 아름다운 바다와 주변의 바위들을 감탄하며 즐긴다.  민박집에서 옥수수를 쪄서 바닷가로 내왔다. 인심이 후하다 저녁상도 푸짐하다. 꽃게탕이 주 반찬으로 올랐는데, 스님께서 사양하시니 우리도 조심스런 마음으로 먹는다. 서울에서라면 몇 만원 짜리 메뉴일텐데 만원도 안되어서 놀랐다.

 

 

6. 내세에는 바위로 태어나고 싶다.

 

저녁 공양을 마친 후 어둠 속으로 산책을 나간다.

방파제 둑에 앉아서 기분이 한껏 들떠서 젊은 날에 흥얼거렸던 노래를 부른다. “조개 껍질 엮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 그림자/ 시원한 파도 소리, 여름 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누군가가 오늘 이 밤을 위하여 만든 노래 같다. 청정심이 함께 불러 더욱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바닷가에 모레 알처럼 수 많은 사람 중에 ……../ …..쓸쓸한 파도소리……./ …….저 하늘 끝까지, 저 바다 끝까지…….” .

노래는 감정을 순화시켜주는 마술이 있는 듯하다. 전문적인 성악가나 직업적인 가수처럼 잘 불러야 할 것도 아니다. 내 마음의 분위기 따라 부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어둠이 짙어 간다. 배경 음악 같은 파도소리 외에는 들리는 것이 없고, 이 세상에 우리 네 사람만이 존재하는 듯한 이 귀한 기회에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다.

윤회란 금생에 한을 많이 남긴 사람을 위한 위로 용이 아닐까, 금생에 못다한 일을 내세에 기대를 걸어도 되는 것일까 등 유치한 질문도 하였다.

내세를 논하는 중, 스님께서 다음 생에는 바위로 태어나고 싶다고 하신다. 순간, 전기에 닿은 느낌이 들었다. 바위로 태어난다”?! 바위에도 생명과 인격을 부여하고 계시다니!! 이 선답(禪答)을 죽기 전에 온전히 이해한다면 나도 도인일 것이다. 

 

입처개진(立處皆眞). 생명이 있건 없건 다를 것이 있으랴!  이 말로 나의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다스린다.  그 인생이 어디쯤 왔는지를 뒤 돌아보면, 영광도 오욕도, 기쁨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승리도 패배도 텅 비어 있다나라 선승 의현(禪僧 義玄) 쓴 임제록(臨濟錄- 鎭州臨濟慧照禪師語錄) 말씀이 생각 났다 

 

! 이다 !!  이 세상을 떠날 때, 돈도 명예도 사랑도 원망도 가져 갈 것 하나 없는 빈손이다.  빈손으로 오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 빈부귀천 간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현상인 것처럼 큰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생명이 있고 없고가 또한 공평한 것은 아닐런지. 스님의 사상이 "바위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 짧은 말씀 한 구절에 농축되어 있는 것이라고 나 나름대로 깨닫는다.

 

 

 

7. 인간 기중기(起重機)

 

다음 날, 8 20일 아침, 떠날 준비를 서둔다.

전날 저녁 때 남은 해를 믿고 빨래를 널었었는데 새벽 안개 때문에 오히려 흠뻑 젖어버린 옷들을 걷어 비닐 봉지에 싼다. 민박집 주인은 작년까지 이장 일을 하였다 한다. 그는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고, 우리의 다음 행선지인 백아도(白牙島) 이장 댁에 우리 일행을 맞으라고 전화를 걸어 주었다. 연락 없이 가면, 주인이 바다나 밭에 나가게 되니, 미리 알려 준 것이다.  감사한 일이다. 전 이장님의 배려로 그 분의 동료들이 크다란 고기잡이 배로 우리를 요트까지 태워다 주었다. 그들은 우리 짐이 많은 것을 보고 저 고무보트에 사람 넷과 이 많은 짐을 싣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의를 주었다.

 

헤어질 때, 뱃사람들은 백아도의 남쪽 끝을 돌아서 북상하면서 섬의 서쪽으로 상륙하는 것이 좋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백아도 남쪽을 돌아서 먼바다로 나가는데, 파도가 매우 높아졌다. 스님께서는 현 위치로부터 서쪽으로 섬 하나 없는 황해 넓은 바다여서 파도 막이가 없어 물결이 거칠 수 밖에 없다고 하셨다. 파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접안지점을 살피니 매우 어려울 것 같다.  스님께서는 원래 예정하셨던 상륙지점으로 배를 돌리시면서 이솦의 당나귀를 몰고 길 가는 어리석은 父子이야기를 상기시키셨다. 여러 상황을 검토한 끝에 내린 자신의 판단을 믿었어야 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상륙지점으로 생각하셨던 선착장에 고무보트를 타고 접근하였다. 네발 테트라포트로 자리 잡은 위에 크다란 바위 같은 자연 돌로 쌓아 올린 경사진 축대에 우선 내려야 한다. 먼저 내려서 고무보트를 잡기로 한 각운행이 첫발을 옮기면서 미끄러져서 손바닥에 큰 상처를 입었다. 물이 차 올랐다가 빠져 나간 후 미처 마르기 전이라서 바위에 낀 이끼가 미끄러웠고, 다듬어 지지 않은 돌의 날카로운 부분에 베인 것이다. 무리하게 배를 대면 고무보트에도 상처가 날 염려가 있다. 선장님은 다시 보트를 돌려서 방파제가 끝나는 지점으로 향하신다. 그 곳에는 좁기는 하지만 모래뻘이 있었다. 방파제는 너무 높고, 도로로 다가 가야 할 곳은 절벽이다. 청정심이 모래 뻘에 보트는 댈 수 있겠지만 방파제는 올라갈 수 없겠다고 몇 번 말씀 드렸으나 스님께서는 못 올라갈 것 없다 하시며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에 보트를 대고 하선을 명하셨다.

 

도저히, 길로 올라설 수 없다는 생각을 나와 보살들은 하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방파제를 떠받치고 있는 크다란 바위들을 성큼 성큼 넘어 올라서 씨멘트로 구축한 방파제 바로 밑으로 바짝 다가서신다.  스님께서 두 팔을 벌려서 방파제 위 길바닥으로 손을 얹어 보신다. 겨우 손바닥이 길 위에 놓이는 듯 보였다. 순간, 스님께서는 몸을 날려 윗몸과 오른 다리를 길 위에 올려 놓으신다. 멀리서 보니 스님 몸이 티(T) 자형이 되어 있다. 다시 왼 다리를 길바닥으로 들어 올려서 하나 일 () 자형이 되시드니 곧 일어서서 아이() 자형이 되셨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스님의 거구(巨軀)가 찰나에 행한 곡예를 보는 듯하였다. 꿈 꾸고 있는 것 같았는데, 빨리 올라오라는 스님의 호령이 떨어져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님의 지시에 따라 두 보살님들이 나의 두 발을 받쳐주는 가운데 스님께서는 나의 구명조끼 끈을 잡고 끌어 올리신다. 스님 힘에 호흡을 맞추어 나 자신도 따라 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친다. 있는 힘을 다하여 내 몸을 솟구쳐 올린다. 허벅지가 씨멘트 옹벽에 긁히는 통증을 느꼈지만 이 순간  호홉이 어긋나면 저 바위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서 바닷물 속에 곤두박질 칠 수도 있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 보살님들이 밀어 올려준 덕에 길바닥에 닿은 손가락 끝에 젖 먹은 힘까지 다하여 붙잡고, 스님의 힘에 몸을 맡긴다. 몸이 쑥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한 순간에 하늘과 땅 사이를 오르내린 것 같다. 두 보살님들을 어떻게 끌어 올리시는지 바라볼 평정심조차 없었다.  청정심은 또 명언을 남긴다. 스님의 괴력 발휘 같은 이 동작에 인간 기중기라고 이름 붙인다. 그녀의 센스에 100% 공감한다.  스님께 한없는 신뢰가 쌓인다. 위난에 대처하는 요령을 말만으로는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구명 조끼의 안전 착용 수칙을 알려 준 아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싶다.

아들은 구명조끼를 입을 때, 반드시 밑에 있는 밴드를 양다리 아래에서 각각 꿰어 입고 고정시켜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다.  보통 조끼 입듯 하면 물에 뜨기는 하겠지만, 조난을 당한 경우에 당황하여 파도 위에서 양 팔을 들고 허우적거리다 보면 구명 조끼가 몸 위로 빠져 나가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 해 주었다.  그의 설명이 매우 합리적이므로 나는 여행 내내 그 수칙을 지켰었는데, 아들의 효심이 이 "기중기"가 작동하는 순간에 빛을 발하였다. 만약에 아들의 가르침에 따르지 않았더라면 내 양 손가락을 바위 위 길바닥에 올린 상태에서 스님께서 꽉 거머쥔 조끼만 올라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찔한 생각이 든다. 제 명대로 살려면 무엇이던지 배워야 산다.

 

어느 것 하나 힘을 받쳐 줄 곳이 없는 조건을 극복하시고 스님께서 몸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시면서 한 손으로 65kg이 넘는 이 뚱뽀를 들어 올려 주신 스님의 결단력과 선장으로서의 노력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와 경의를 올린다. 나는 스님의 이 노력이 스님의 공덕으로 남기를 빌 수 있을 뿐이다.

 

딸에게도 감사한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물병을 꼭 들고 다니면서 충분히 수분을 섭취한 것이 멀미는 했을망정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게 해 주었다. 고맙다.

 

 

8. 바다의 삼존불(三尊佛)

 

우리가 요트를 세운 곳은, ㄱ 자를 옆으로 돌려 놓은 것처럼 생긴 백아도의 동쪽 작은 모래사장이 바라보이는 먼 바다였다.

굴업도를 떠나 남쪽을 향하는데, 저 멀리 기둥 같은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그 바위를 오른 편으로 보면서 가까이 지날 때 살피니 바위는 암벽을 깎아 세운 웅장한 조각 같았다.  무인도라기보다 무인탑이었다.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바로 옆을 지나갈 때 보니 세 바위가 일직선상에 놓여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돌 기둥이 하늘로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의 신비라고 혼자서 감탄하였다.

 

바다의 파도 위에 마음의 절을 짓고, 저 바위 기둥 셋을 나의 삼존불로 모시고 싶다. 금속이나 나무로 조각해서 얼굴 형상을 그려 넣고 모시는 부처님과 다를 것이 없을 것 같다. 세 기둥 앞을 합장하며 지나간다.

 

 

사진 : 절묘하게 생긴 세 바위 기둥

 

뭍에 올라 우리 도착을 알렸더니 이장 내외가 조그만 작업용 차를 갖고 마중 나왔다. 부인이 이장이라 한다. 우리가 대단하시네요 라고 하였더니 씩 웃으면서 남편은 어촌계장이라 한다. 두 내외가 실질적으로 이 마을을 다스리고 있는 셈이다. 마을 입구에는 오래 된 정자나무가 서 있고, 정자나무에 이어서 지어진 건물이 경찰 파출소 사무실이고, 나무 그늘에는 넓은 마루가 깔린 정자가 세워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었다. 오래된 허름한 집에 벽돌로 달아낸 방에 안내 받았다. 시설이 불편한 것 까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물 맛이 찝질한데는 실망이었다.  같은 지하수인데 굴업도 사람들은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으니 축복 받은 사람들이다.

 

이미 12시를 훨씬 넘기고 있었다. 나는 야속하게도 하선 준비하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또 멀미로 고생하였다. 그런 꼴을 계속 보여 드리게 되니 스님께 죄송하고 민망할 따름이다. 점심 먹은 기억도 없다. 아침밥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뱃멀미 경험이 있기에 동네 병원에 가서 처방 받아다가 준비한 약을 계속 먹었는데도 아무 효과가 없으니 의사를 원망하게 된다.

 

남을 원망하기 전에 나의 식습관에 대하여 반성할 필요가 있다. 집에서 보통 30분 내지 한 시간을 소요하는 식사를 하는데, 지난 3일 동안 매일 아침 단 5분도 않되는 사이에 후다닥 먹게 되니 소화 불량 되는 것은 당연하다. 스님과 보살님들이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주는데도 나에게는 초스피드 식사였다. 뭐니 뭐니 하여도 늙고 낡은 내 건강이 문제일 것이다. 체력 단련을 소홀히 한 죄가 이렇게 클 줄이야.

 

모두 짐을 풀고, 옷을 갈아 입고 바다로 나가신다. 나는 이장 댁 마루에 누워서 시름에 잠긴다. 즐겁고 유익해야 할 이 여행을 나로 하여 엉망으로 몰아 가고 있다는 죄책감에 완전히 풀이 죽었다. 30여분을 쉬고 나서 혼자서 일행을 찾아 나선다. 얼마 아니 가서 스님과 마주친다. 각운행과 청정심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고 하신다. 길이 어긋난 것이었으나 작은 섬이어서 금방 서로 만나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이 마을 주민들이 진정한 애국자라고 하셨다.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 섬에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를 생각해 보라 하셨다. 이 섬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정부는 교육 경제 문화 의료등 고른 혜택을 베풀기를 부탁하고 싶다. 선거 때면 입후보자들이 이 섬까지 찾아 온다고 한다. 유권자 수가 스무 명도 안되지만, 기대하던 후보자가 아니오면 다른 후보자에게로 마음을 돌려버리기 때문이란다.

                                                                   

 

9. 스님의 중신(重臣)

 

오후 2시 경에 바다로 나간다. 스님과 각운행 청정심이 함께 물에 떠서 유유히 수영한다. 많이 지쳐있는 나는 거친 파도에 겁이 나서 입수하지 못하고 물가에 앉은 체 세 분이 유영하시는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산 그늘이 진 곳을 벗어나서 멀고 깊은 곳까지 나가 물에 떠 계시는 모습은 마치 오리 가족이 나들이 가는 모습처럼 정겨워 보였다.  나는 화상 입을 것을 염려하여 팔 다리가 모두 긴 옷을 입고 있었다. 파도가 철썩 철썩 밀려 드는 모레 위에 앉아서 무심히 물결따라 들어오는 파도만 바라본다.

 

어느 결에, 바닷가 모래가 만들어 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파도가 다녀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또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였을까. 파도의 모습을 관찰한다. 밀려 오는 파도가 모래 위에 퍼져 나가다가 다시 바다 쪽으로 쓸어 내려간다. 그 내려가는 물이 완전히 퇴각하기 전에 또 다른 파도가 덮치듯 밀려 온다. 그 겹쳐지는 현상이 되풀이 되는 것이 해변의 파도다. 무한 우주의 법칙이 헝클어지지 않는 한 이 파도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전에 쓰여진 "억만 겁"이라는 개념이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생존이 찰라임을 알기에 충분하다. 이 자연 현상이야말로 영원의 상징이다.

 

3시간 넘게 유영(遊泳)하신 일행이 모래 밭으로 올라 오신다. 선장님은 두 승무원을 데리고 요트 상태를 점검하러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신다.  멀리 1km가 넘어 보이는 거리다. 파도를 타고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분들의 뒤 모습을 보면서 저 분들은 피안으로 다가 가신다는 환상 같은 것을 본다. 

백사장으로 돌아 온 직후 한숨 돌릴 겨룰도 없이 다시 고추장볶음 가지러 요트로 가신다. 문득, 스님께서는 2004년 태평양 횡단에 이어 제2의 원항을 계획하고 계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보살님들을 강 훈련시키시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성직자로서 한없이 인자하신 스님이시지만 물에 임하시는 선장으로서는 냉혹하리만큼 엄격하시다. 앗차 순간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이니 그러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6시 넘어서 저녁 식탁 앞에 앉는다. 주인은 정성을 들였는데, 왼지 입맛이 별로였는지 모두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일어섰다.

스님께서는 섬에 하루 한번씩 오는 배에 나를 태워 인천으로 보낼 궁리를 하셨다. 백아도 앞 바다에서 요트에서 내렸을 때 기진해서 노 젖기도 힘들어 하는 나의 건강을 염려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곳 섬들을 도는 그 배를 타면 덕적도에서 내려서 기다렸다가 다시 큰 배로 갈아 타야 한다는 주인의 설명에 그 계획을 거두셨다.  따라서, 내일 울도(蔚島)로 가시려던 계획까지 접으셨다. 미안하기 그지없다.

 

일찍 자리에 든다. 각운행은 감기 끼가 있고 열이 난다고 하였다. 유난히 잡 냄새를 타던 청정심이 9시 좀 넘으면서 배가 아프다고 하였다. 잘 견디기를 바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숨 쉬기도 어렵다고 호소한다. 각운행이 일어나서 침을 놓으려 한다. 침이라면 내가 해 보련다. 벌떡 일어나서 침을 받아 들고 십선(十善-열손가락 열 발가락 따기)치료를 한. 전신 지압을 하고, 탈컴 파우더를 잔뜩 뿌려서 내 손끝에 기적이 일기를 빌면서 20분 넘게 배를 쓰다듬었다. 옛 날 할머니들이 손주 배를 주무르면서 내 손이 약손이다 하시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돌덩이처럼 딱딱하고 싸늘하던 배가 부드러워 지고, 배 속에서 끄르륵 끄르륵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11시 반이 지나고 있다. 이불을 덮어 주고 불을 껐다.  

 

아직 첫 잠에 들지도 못하였는데, 전화가 온다. 시계를 보니 정각 2시다. 청정심이 전화를 받는다. 몇 마디 듣고,  , 알겠습니다고 답한다.  스님께서 물때를 맞추어서 배를 타려 하니 지금 나가야겠다고 하신단다. 어제 상륙할 때 고생한 생각을 하고 그렇게 정하신 것 같다. 청정심은 배 아파 헤매다가 겨우 통증이 잦아 들었는데, 좀 쉬어야겠다는 기색도 없이 단번에 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저렇니 스님께서 청정심을 항상 대동하시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각운행을 본다. 잠 자는 시간 말고는 어떤 내용으로던지 선장님의 지시가 계속 내린다. 우리 말에 입 속의 혀 같다는 말이 있다. 바로 각운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왕조(王朝)의 충신(忠臣)을 보는 것 같다.

 

이 들 두 분만이 아니다. 안면암이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는 것은 신심이 돈독하신 불자님들이 진정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궁궐의 중신들이 임금 섬기듯 스님을 받들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새삼 경이로운 마음으로 스님의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10.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마치 군대 훈련소의 점호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벌떡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고, 짐 챙겨서 나오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스님께서는 선착장에 두 번 가야겠다고 하셨다. 짐이 많아서다. 그럴 수는 없다. 나는 내 짐을 짊어지고 나섰다. 스님께서 짐 지고 갈 수 있겠느냐고 다짐하신다. 나는 땅 위에서마저 신세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다고 말씀 드렸다. 마음을 씩씩하게 다잡는다. 양 손에 오리발 두 개씩도 들었다.

 

밖은 1m 앞이 보이지 않는 농무(濃霧). 발을 더듬으며 걷는다. 굵은 눈보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짙은 안개라는 사실을 자동차 운전할 때의 체험으로 알고 있다. 과연 스님께서도 망설이신다. 이왕 나섰으니 방파제까지 가보기로 하고 발길을 재촉한다.  우리를 자동차로 선착장까지 태워다 주기로 한 주인이 아침에 일어나서 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놀라겠다는 등 여유 있는 잡담을 하면서 30분 가량 걸었다. 방파제에 도착하고 보니 바로 그 밑에 대 놓은 고무보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설령 고무보트가 보인다 하드라도 보트를 계단 밑으로 끌어 올 방법이 없다. 마주 보는 사람도 한발만 멀어져도 윤곽만이 보일 뿐이다.

 

감기 기운 때문에 열이 난다던 각운행이 오한이 난다고 하였다. 스님께서는 지금 도저히 떠날 수 없으니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쉬었다가 나오자고 하셨으나 모두 묵묵 부답이다. 방파제 씨멘트 바닥이 낮에 달궈진 덕으로 아직도 따뜻하다. 스님께서 그럼, 여기서 한 숨 쉬자고 제안하셨다. 각자 바람막이 점퍼 같은 것을 꺼내 입고 씨멘트 바닥의 온기에 의지하여 눕는다. 이슬비 같은 안개가 몸을 적신다. 스님께서 어디선가 넓찍한 담요 같은 것을 주워 들고 오셔서 이걸 덮으라고 하셨다. 평소 깔끔한 성품인 청정심은 오돌오돌 떨면서도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나와 각운행은 아무 말 없이 그 포대기 같은 것 밑에 들어 갔다. 어떤 물건인지 무엇에 쓰였던 것인지 알 수 없어도 감기 걸리는 것보다는 낫다. 무엇보다도 안개 속을 헤매며 그런 걸 찾아 구해 오신 스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그 성의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이다.  

 

원효대사 생각이 났다. 현재, 인도의 용수보살(Nagarjuna)과 비견(比肩)되는 원효대사가 당시 신라 봉황사 승려로 계시다가 의상대사와 함께 나라로 유학 길에 오르셨다. 가시던 길에 잠결에 맛있게 마신 물이 날이 밝아서 보니 해골에 괸 빗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어 유학 길을 버리고 혼자서 돌아오셨다는 일화가 떠오른 것이다. 잘 알려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날이 밝아서 알게 될 그 포대기의 실체가 문제가 아니고, 지금 이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리라.

 

 

11.  개척정신의 재발견

 

한기(寒氣) 가시고 시계를 보니 4시 반이 지나고 있다. 우리가 떠나온 마을 쪽에서 외등 불빛 하나가 보인다. 안개가 가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짐을 챙기려는데, 불빛이 사라진다. 짙은 안개 무리가 이동 중인 것 같다. 등대 없는 바닷가의 쓸쓸함이 몸에 스민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믿었던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스님께서 용단을 내리신다. 크다란 어선 두 척 뒤에 있는 고무보트에 기어코 올라 방파제 길 옆으로 난 계단 밑까지 몰고 오셨다. 우리는 재빨리 짐을 싣고 모두 보트에 오른다. 그러나, 요트가 있는 위치를 감으로도 알 수가 없다. 시야가 겨우 20m 정도 트였지만 노 저어 나갈 거리를 확인하기에는 무리다.

 

어쨌던 노를 저어 방파제에서 떨어져 나간다. 스님께서 모험심을 발휘하신 것이다. 스님께서 사방을 살피시는 동안에도 우리더러는 저 마을 불빛이나 방파제가 보이지 않으면 바다의 조난자가 될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고 위치 확인에 전념하라 하신다. 노를 저어나가다가 방파제가 보이지 않을 때 쯤에는 다시 보이는 위치로 돌아가기를 몇 번씩 반복한다. 전진 후퇴를 거듭하다가 방파제 윤곽이 거무스름한 환영처럼 보이는 40m 거리에 차라리 닻을 내린다. 언제나 이 안개가 걷히려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6시 가까이 되었을 때, 안개 짙은 방파제 위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가 이내 사라졌다. 영화, 세익스피어의 햄릿(Hamlet)에서 본 유령이 나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이 우리들의 구원자일 수도 있었는데, 나는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미쳐 그걸 깨닫지 못하였다. 각운행이 뒤늦게 그 사실을 말씀 드렸다. 스님께서도 역시 그 사람과 교신할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셨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방파제 위에 사람 모습이 나타났다. 기회를 놓칠세라 큰 소리로 말을 건넨다.  이장님도 나타나셨다. 짙은 안개 속에 사라진 우리가 조난 당하였을까 우리의 행방을 찾아 나서신 것 같다. 우리를 만난 그 쪽이 더 안도한다.

 

아직도 자욱한 안개 속이다. 이장님의 주선으로 고기잡이 배에 오른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건장한 어부는 그 곳 주변을 잘 알고 있었다. 스님께서 눈 여겨 보아두신 크다란 배 3척이 정박 중인 곳 옆에 우리 요트가 있다고 말씀하시니 그는 금방 알아차렸다. 날은 밝는 것 같은데 안개는 여전히 짙다. 그래도 어부는 잘 달린다. 한참 나가는데, 섬 너머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가 물안개 속 달처럼 뿌옇게 보인다. 3척이 보이는가 하였더니 그 옆에 우리 요트가 깍꿍 하듯이 얼굴을 내민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6 10분이다. 스님께서는 어부에게 감사의 뜻을 후히 표하셨다.  요트를 점검하고 기름을 넣고 7시 가까이 되어서 시동을 걸고 귀로에 오른다.

 

스님께서 무진성은 선실에 내려가 있으라고 하신다. 멀미 낼까 봐 염려하시는 것이지만 나는 멋쩍고 미안하기 그지없다. 스님의 순항 예정에서 접어버린 울도(蔚島)에는 언제 다시 가실 기회가 있을까.

백아도는 그 이름처럼 우리가 상륙할 때와 이륙할 때 "하얀 엄니"를 들어내 보인 것이다. 그래도, 절벽을 오르던 긴박(緊迫)했던 그 상황과 떠나올 때 공포의 농무 속을 헤매던 그 끔찍한 고생이 벌써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다.

 

돛을 올리지 않은 채, 배는 엔진만으로 전속력으로 달린다. 모두 말이 없다. 안도하는 것이리라. 드디어 스님께서 말 문을 여신다. 각운행이 요트에 오를 때마다 헛발질을 한다며 야단 치시는 것이다. 각운행은 내가 잘 할 수 있는데, 스님이 괜히  어쩌고 저쩌고…” 항변하며 눈물을 쏟아 낸다. 모든 것이 모범적이고 정확하고 뚝심도 있어 보이는 각운행이 스님 앞에 저런 응석을 부리다니!!  가슴 찌잉하게 부러웠다.

 

오후 1시가 되었다. 아직도 2시간은 더 가야 목적지에 닿을 것이라 하신다. 나는 염치없지만 선실에 내려 간다. 잠시 누웠다가 일어나 앉아서 잊기 전에 이 항해 기록을 마무리 한다.  청정심은 체기 여파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 각운행은 오한을 이기려고 검은 점퍼를 뒤집어 쓰고 햇볕이 내려쪼이는 덱크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두 분이 아직 젊다 하여도 역시 체력의 한계일 것이라 생각하였다. 스님께서는 연세도 있으신데 혼자만 씽씽하시니 어디서 에너지가 샘 솟는지 불가사의하다.

 

 "안면암이 바닷가에 있지 않는가!" 라시며

스님께서 조용히 말씀을 시작하신다. 여름철에 안면암을 찾아오는 가족 중의 청소년들에게 바다에서 심신을 단련하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임해사찰을 지으신 뜻이 담겨 있다.  배를 마련하시고, 각운행 청정심 등 보살님들을 하드-트레이닝 시키시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스님께서 제2의 원항(遠航) 계획하시는가 하는 나의 상상은 빗나갔지만,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들에게 바다에의 도전 정신을 길러 주시려는 그 원대하신 계획에 머리를 조아리며 탄복한다. 역시 고승(高僧)으로서 존경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박식 다재한 당대 초일류 칼럼니스트 이규태(李圭泰)선생이 2004 5 20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이 떠 오른다. 이규태선생은 지명(之鳴)스님의 태평양 횡단 항해를 신라 프런티어싶의 현대적 구현이며, 진지한 구법(求法) 정신이라며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명스님께서 태평양 횡단 항해에 성공, 귀국할 당시 일간지에 넘쳐나는 관련 기사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글이었다. 그 글을 간추려 소개하려 한다.

 

<신라시대, 청년 대세(大世) 존경하는 담수(淡水)스님을 찾아가서 연못 속의 물고기나 조롱 속의 새와 같이 사는 것은 무의미하며, 낚싯배를 타고라도 吳越 땅에 이르러 온 천하를 호령하고 싶다 말하고 떠나갔다. 신라 젊은이들의 프런티어 정신을 뒤 바침한 것이 신라 불교였다. 신라 혜초는 사발 같은 통배에 돗자리를 펴 달고 신라를 떠나 동지나해, 남지나해, 뱅골만을 가로질러 갠지스강 삼각주에 상륙하고, 맨발의 걸승 차림으로 수 십년을 걸어 부다가야의 성도성지(成道聖地) 이르러 “본원(本願) 이루어 환희가 비상하다고 했다. 신라 프런티어십을 구현한 모험스님은 혜초만이 아니라 함께 돌아온 현태(玄太)스님 외에도 나란다 불교대학에 유학했던 많은 스님이 계시다.

 

풍토학에서 반도인(半島人) 진취성이 왕성하였으나, 중국 사대주의가 그 정신을 억누르고, 고려시대 불교가 수직사고(垂直思考)로 흘러 프런티어 정신을 조장하는 수평사고(水平思考)를 저해하였으며, 조선조의 불교 탄압으로 우리 불교의 모험주의는 고사(枯死) 왔다. 

 

이 와중에 일엽편주인 바라밀다호를 타고 미국 샌디애고를 떠나 64일 동안 태평양을 횡단하고 부산항에 도착한 모험 스님이 있다. 법주사 주지를 지낸 56세의 之鳴스님으로 求法 정신과 접목한 신라 프런티어 십의 현대적 구현으로 불교 인식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쾌거(快擧) 아닐 수 없다.>

큰 감동을 받으며 읽었었다. 지금 그 원문은 다시 읽어도 감동적이다.

 

현대에는 발전한 과학 덕으로 편리하고 안전한 배는 얼마던지 있고, 신장된 국력을 배경으로 세계 어느 곳에던지 원하면 못 가는 곳이 없다. 현대에도 중요한 가치는 모험을 마다 않는 개척정신이다. 지명스님께서 청소년들에게 바다에의 도전 정신을 길러주고 싶어하시는 뜻을 들으며 나는 지명스님의 프런티어 정신을 재발견한다.

 

 

                               2010. 09. 24.    無盡聲  吳宣 합장

출처 : http://www.anmyeonam.org/maha/community/community_01_view.html?id=1805&table=ML_BBS&idx=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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