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 안흥사 수현스님] 필요한 게 적으면 무소유無所有,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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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게 적으면 무소유無所有, 복지

 

안양 안흥사 수현스님

 

산문의 빛.JPG

 

안양시 예술공원에 위치한 안흥사로 들어가는 길목, 봄으로 북적인다. 일주문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공원길 왼편으로 수월관세음보살님께서 반겨주시고, 대웅전 부처님께서 삼배 드리니, 청명한 기운에 마음이 녹는다. 저만치서 우리 일행을 향해 단정하게 합장인사 하시는 스님의 안내를 받아 다실에 들어서니 관세음보살님과 호법신장님의 상호가 묘하게 겹쳐지는 인자한 스님이 계신다. 불사가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도량전체가 편안하고 맑은 이유를 알 것 같다.

 

 

1. 스님, 출가하신 인연이 궁금합니다.


내가 두 살 먹어서 호랑이가 물어갔는데, 동네사람들이 모두 협심을 해서 이 동네 저 동네 가서 호랑이가 놓고 간 나를 찾아 온 거예요. 그 뒤로 우리 어머니는 호랭이가 자기 밥을 왜 뺏어갔느냐고, 도로 달라는 거 같다고 하세요. 그래서 그때부터 밤 절[栗寺]이라는 토굴 같은 절에 다니면서 산신기도를 시작했는데, 그곳에 우리 스님이 계셨어요.
그러다 정화운동 할 무렵에, 우리 스님이 법주사 수정암에 가셨는데, 내가 보따리를 좀 갖다 드린다고 거기까지 가게 된 거예요. 그때는 교통이 불편했잖아요. 겨울 동짓달인데 눈이 와서 혼자 나올 수도 없었지만, 젊은 스님들이 자꾸 나를 보고 중 되라고 해요. 마침 그 해 이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동생 둘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세상 안 난 셈 잡고 절에서 불교공부하면 괜찮겠다 싶어서 출가는 쉽게 된 편이지요.

 

 

2. 강원생활은 어떠했는지요?
우리 때는 십년동안 청춘을 강원에서 보냈는데, 여러 가지로 졸업하는 사람이 참 귀했어요.  또 많던 적던 간에 양식비를 내야 한철을 살아요. 그래서 스물한 살에는 탁발을 나갔는데, 보다시피 내가 훤하게 잘 생긴 것도 아니고, 청산유수로 남을 감화시키는 변재도 아니잖아요. 대전에서 시골로 일주일을 종일 다녀도 돌아오는 차비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무슨 글을 배우냐. 싸 짊어지고 선방에 가서 참선이나 해야지’ 하고 걸망을 지고 걷다가, 동학사가 보이니 눈물이 나는 거예요. 공부는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강원을 중간에 그만 둘 생각을 하니까 서러웠던가 봐요. 내가 밥도 안 먹고 우니까 대중 스님들도 다 와서 달래고……. 그럴 때 원주 사시던 춘희 스님은 국수를 삶아 와서 먹으라고 하면서 “내가 동냥 대신 해 줄 테니 여기서 공양주 살고 있어라.”그래요. 가슴이 찡하지요.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렇게 우는 바람에 탁발에 자신 없는 사람은 남아있되 부전, 공양주, 채공 소임을 다 하면 양식비를 안 내도 강원에 있을 수 있는 원칙이 하나 생겼어요.  그래서인지 동학사 주지 소임 맡게 되었을 때는 내가 통곡을 한 그 쌀값을 지금까지 받으니 그것 하나를 해결하고, 전기 불 켜고 밤에도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안 되는 것 없이 되는 게 대중 많은 주지더라고요. 마침 계룡산이 국립공원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조정이 잘 되고 많이 좋아져서, 학비 부담도 줄고 훌륭한 강사스님들도 많이 나왔지요.

 

 

3. 복지의 길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사실은 그 쪽으로 공부를 죽기 살기로 한 것도 아니고, 아주 착해서 내 입에 들은 거라도 빼내 먹일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 돕는 그런 자세도 아니고, 여러 가지로 저는 복지에 맞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복지 생각은 없었는데, 지금은 복지 일을 한지 30년이 넘네요.
예전에 미국에 신도 집에 간 적이 있는데, 내가 들어서니 그 집 아이가 나보고 안녕히 가시래요. ‘아, 유치원이 있으면 얘들이 한국문화를 이렇게 잊어버릴 수가 있겠나?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불교 포교를 해야겠구나!’ 생각했는데, 마침 서울에 어린이집 다섯 개가 생긴 거예요. 그 중에 하나 종로 낙산 어린이집을 맡게 된 것이 복지의 첫발이자 대한불교조계종 복지의 시작이 된거지요.  개원하고 삼년 만에 전국 모범유아원으로 선정되서 그런지, 그 후로 조계종단이 여러 복지시설들을 위탁 받게 된 계기도 되었어요.
그러다 목동 청소년 수련관 부설 어린이스포츠단 운영을 하게 됐는데, 어린이가 200명씩 와도 마음 놓고 불교를 이야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매화복지관에서도 어린이집을 하고 있지만, 국가에서 하는 사업은 어떤 종교색도 띄면 안 된다고 해서 부처님 말씀이라고 펴 놓고 얘기하지 못해요.

 

 

4. 불교 복지의 선두주자로서 크고 작은 불사를 일궈 오시면서 스님만의 원칙이 있으신지요?


 복지하는 사람은 어디에 내 놔도 회계 관리가 유리알 같이 맑아야 한다는 게 철학이라면 철학이에요. 이거는 복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마찬가지로, 동·서·남·북·상·하를 모두 감시하는 적으로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하면 사찰을 운영해도 단 돈 만원도 개인적으로 쓸 수가 없어요.
율장에 호용죄互用罪라는 게 있거든요. 대중공양으로 시주 받은 것을 집이 고장 났다고 쓰면 안 되는 게 호용죄예요. 그렇게 정확하게 움직이는 게 또 복지예요. 어르신에게 써 달라하는 건 반드시 어르신에게 써야지 절대 바꾸면 안 돼요. 서류가 태산 같은데, 기안에 따라 결재 난 게 아니면 지출이 안 돼요. 단돈 1원이 들어와도 네 사람 이상 도장을 찍어야 해요. 나는 무식하기 때문에 순리대로, 법대로 하는 거예요.  덕분에 오랫동안 관장으로 있었던 매화복지관이 최우수 복지기관으로도 선정되고, 받은 포상금으로 전 직원들이 함께 해외 연수도 다녀올 수 있었어요.
 


5. 어려운 점이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요?


스님 네들은 좋은 게 있잖아요. 어려우면 부처님한테 기도하고 절하고 앉아서 화두 딱 들고 잘 되든 안 되든 자기마음 돌리면 되잖아요. 그래서 어렵다거나 죽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다만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건 있어요.
불교계에서 전문 인력이 많이 나와야 해요. 다행히 큰 상좌는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또 상좌 하나는 오사카 사천왕사에서 운영하는 복지 시스템을 공부하고 실무도 익혀 와서 지금 복지현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지만, 타 종교에 비하면 역부족 이예요.
그리고 요즘은 복지 자격증이 없으면 복지 일을 해도 대우가 다르고 인정을 못 받아요. 그래서 우리 승가대학에도 공간을 줘서 야간반을 하나 신설하고, 가까운 직장인이나 스님들이 저녁마다 서너 시간 공부하도록 해서 자격증을 따게 하면 여러 가지로 좋겠다 싶어요.

 

 

6. 보람되고 뜻 깊은 일은 무엇인지요?


종회의원으로 16년 동안 있으면서 두 가지가 시행되었어요. 비구니 주지스님은 본사 주지스님 선거에 참여권이 없었는데, 종회, 법계위원회, 원로위원회 통과해서 선거 참정권이 생겼어요. 그리고 비구니 큰스님 일곱 분을 해인사에서 명사스님으로 모셨는데,  앞으로도 계속 훌륭한 비구니 스님이 명사 스님으로 추대되었으면 싶어요. 
무엇보다도 가사원이 처음 생기고 자리 잡을 때까지 조계종 통합가사추진위원장을 했는데, 전국의 사찰에서 동참해주시고, 가사점안식이 여법하게 진행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7. 바쁘신 와중에 수행과 기도를 어떻게 이어가시는지요?


화두 잘 잡히고, 잘 안 잡히고 그런 게 다 똑같지요. 복지를 하든 무얼 하든 우리의 목적은 어리석음을 돌려서 깨달음을 얻는 전미개오轉迷開悟 그 넉자 빼 놓고는 없잖아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45년간 설법하시고도 왜 말 한마디도 안 했다 그러셨겠어요? 한 생각 돌이키면 다 필요 없으니까. 아침 공양하지요? 수행도 밥 먹는 것처럼 양말 빨면서도, 차 한 잔 마시면서도 해야지요. 해이해 지지 말고, 예불하고, 참선 하면서 해야 할 것은 하는 것이 수행이지 어디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협심증이 있어서 새벽예불에 못 가면 아침에 법당에 들어가는데, 할 걸 안 하면 편하지 않잖아요.

 

 

8. 활동 중에 계율 수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옛날 수정암 쾌유 노스님께서는 큰 것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조그만 것부터 하라고 하셨어요. 멸치 적다고 먹으면 큰 것도 먹어진다 그러셨어요. 요즘은 많이 해이해져서 몸이 약하다고 먹고, 자꾸 먹어라 해서 먹고 그러지요? 그렇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하려면 마을에서 살아야지요. 머리 깎고 세상에 안 난 셈 치고 사는 게 중 아니에요? 계율에 약으로는 먹어도 된다고 되어있지만, 안 먹을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안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굳이 남의 살 뭐 하러 먹어요.
그리고 계를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깨지는 말아야 해요. 부처님께서는 하루에 한 번만 잡수고도 사셨는데, 왜 다 갖춰서 먹어야 해요. 반찬 안 맞으면 김치 싸가서 먹으면 되니까 계를 가볍게 할 이유는 없어요.

 

 

9. 스님께서 생각하시는 복지란 무엇인지요?


 복지를 학문으로 내 놓으라면 잘 모르지만 쉽게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밥도 혼자 먹는 것보다 배고픈 사람이랑 나눠 먹고, 내가 안 먹는 것은 먹고 싶은 사람한테 주고, 그냥 매일 사는 것을 복지 차원에서 하는 거예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말처럼, 화단에 풀이라도 뽑으면 그 절은 윤택함이 있잖아요. 마당 하나 쓰는 그것도 복지예요. 학장스님과 주지스님도 복지의 선두주자예요. 왜냐하면 피살 안 섞여 있는 대중을 다 거느리는 데 그런 것도 다 복지지요.
넓게 보면 우리가 기독교나 천주교처럼 공식화 안 해서 그렇지, 옛날 절 땅에 마을 사람들 농사지어서 도지 조금 받는 거 그게 복지였지요. 그리고 부처님 법대로 살면 복지 아닌 게 어디 있어요? 사섭법도 있고, 육바라밀의 첫 번째가 보시잖아요. 재보시만 보시가 아니고, 가르쳐 주는 법시도 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무외시도 있어요. 돈 없다고 하는 것보다 뭐든 마음으로 같이 하는 게 다 복지에요.
요즘은 내 모습을 보는 이들이 해탈까지는 못하더라도[見我形者得解脫] 누구든지 찡그리지 않고, 또 봤으면 하는 여운이 남는 그런 편안한 사람이 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나한테는 상좌고 손주라도 부모형제 다 버리고 출가한 번듯한 선객이고 훌륭한 포교사 스님인데, 마음으로 폐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나로 인해서 누구든지 불편을 느끼면 안 되겠구나 싶어요. 이런 것들도 복지로 돌리는 거지요

 

.

10.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요?


제가 복지를 하고는 있지만 정말로 헌신하는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아요. 복지를 공부하는 사람은 뭘 해야 되겠다는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러면 다른 것들은 자연히 생겨요.
무엇보다도 복지라는 게 실제로 일이 엄청나게 많고, 모든 게 문서화 되어야 되는데 폭 넓은 교양이 없으면 안 돼요. 노인복지 경우에도 어르신만 보는 게 아니라 어르신 가족들까지 봐야하고 또, 직원도 관리하면서 이끌어야 하니까 모든 면에서 마을사람보다 앞서야 되요.
우리 세대는 나이와 덕화로 끌고 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거든요.


 
11.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옛 성현께서도 시속을 따르라고 했지만, 요즘은 모든 게 풍부해져서 수행자로서 유혹이 많아요. 그래서 학교를 다닌다, 어디를 간다고 모이는 게 우리로서는 아슬아슬한 거예요. 그리고 움직이기는 싫고 그냥 좋은 커피 마시고, 좋은 음악 들으면 수도승의 자세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나는 항상 ‘우리 스님들 머리를 한번 생각해 봐라. 딴 사람들 다 있는데 왜 깎았느냐’ 해요. 이성을 깨끗이 멀리하고 중노릇 잘 하면 돼요.
세상에는 불필요한 것, 필요한 것 두 가지거든요. 세 끼 밥 먹으면 되지 뭐가 필요해요. 부처님 법에 어긋나서 필요 없는데 구하면 안 돼요. 필요한 게 많은 것보다 필요한 게 적으면 무소유고 복지예요. 조금 어렵더라도 마음먹고 안 해야겠다 하면 안 해져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주문까지 배웅해주시며 중노릇 잘하자는 당부 말씀에는 염려와 자비가 가득했다.  

문득 머리를 쓸어보았다. 며칠 새 비집고 올라온 무명초가 빼곡하다.

 365일 24시간 가운데 부처님의 참된 아들로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자문하니, 얼굴만 붉어졌다.

 

菩薩子 菩薩子 보살들이여 보살들이여
常自摩頭深有以 항상 머리 만지는 것은 깊은 까닭이 있으니
摩頭因得審思量 머리를 만지며 깊이 생각하라
出處本意圖何事 출가한 본뜻이 무슨 일 도모한 것인지를
僧其相貌俗其心 모양은 스님이나 마음이 속되면
可不慚天而愧地 가히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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