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훈-중국의 불교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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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불교음악

1) 인도로부터의 전래

중국의 불교음악에 관한 기록은 한역경전을 비롯하여 중국의 음악문헌에 단편적으로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기록을 중심으로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음악이 어떻게 정착되고 발전되는지 살펴보겠다. 인도의 불교음악이 중국에 전래된 시기는 기원후 3세기부터라고 보는데, 중국에 유입된 인도의 불교음악을 논하기 전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과정을 먼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교음악은 불교와 함께 전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인도로부터 캐시미르(kasimire) 우전( ) 구자(龜玆)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중국에 전래되었다. 불교가 중국에 처음 전해진 시기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명확하지는 않다. 그 중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영평(永平) 10(A.D. 67) 후한(後漢)의 명제(明帝)가 꿈에서 금인(金人)을 보고 사자를 대월지국(大月氏國)에 보내 불상과 경전, 그리고 두 사람의 인도승을 모시고 와서 낙양에 백마사(百馬寺)를 창건하고, {사십이장경}(四十二藏經)을 번역하게 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같은 시기에 명제의 이모제(異母弟)가 불교를 신봉했다는 설인데, 학자들간에 통용되는 것은 전자이기 때문에 중국불교의 초전(初傳)시기는 서력 67년으로 보는 게 무난하다. 이 시기에는 이미 한족 상층계급 사이에 불교신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시각으로 중국불교의 초전시기를 중앙아시아 횡단의 동서 교통로가 열린 기원전 2세기 말로 보는 설이 있다. 이 설에 의하면 불교는 서북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친 육로와 수마트라 섬과 말레이반도를 우회하여 남쪽 해로를 따라 베트남을 경유해서 중국 남부에 전해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불법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승려와 서역의 승려들이 중국에 들어오기도 하였고, 반대로 중국승려(法顯 義淨)들이 인도로 가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불법을 들여오기도 하였다. 불교는 이러한 상호교류를 통하여 중국에 들어와 점차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불교가 중국에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불교경전의 한역을 들 수 있다. 불교가 중국에 초전되어 당대(唐代)에 이르기까지 한역사업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후한(後漢) 이후 송대(宋代)에 이르기까지 1천여 년에 걸쳐 번역사업이 지속적으로 펼쳐졌다. 중국에서의 경전 번역사업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중국 한자의 우월성과 자신감 그리고 중국인의 중화의식이 만들어 낸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한역사업에 의해 한찬(漢讚)으로 된 중국의 새로운 범패가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가마타(鎌田武雄)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삼국시대(220265)가 시작되면서 역경자가 증가하고 불교는 강남지역에 확산되었다. 당시 남방의 오()나라에는 황태자의 스승이었던 지겸(支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승려의 신분은 아니었으나 30여 년에 걸쳐 {법구경} {유마경} {대아미타경} 36부를 역출(譯出)하였고, 인도의 불교찬가를 중국식의 찬가로 만들어 불교포교에 공헌하였다.

위의 기록을 보면, 인도와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래된 인도의 범패[梵讚]는 삼국시대에 이미 중국식 범패인 '한찬'으로 바뀌어 포교에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불교는 한역된 {대장경}(大藏經)과 더불어 동아시아를 비롯하여 세계에 전파됐는데, 이때 중국의 불교음악[漢讚]도 함께 동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음악학자들은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 불교음악은 이미 한나라 조정에 들어와 있었다고 주장한다. 서역을 통해 들어온 불교음악이 처음에는 궁중음악가들에 의해 군악(軍樂)으로 만들어져 연주됐다는 것이다. {진서}(晋書) 악지(樂志)에 의하면, "장박망(張博望)이 서역에 들어가 그 법을 서경(西京)에 전했으며, '마하두륵'(摩訶兜勒)이라는 호곡(胡曲) 한 곡을 입수했는데, 이연년(李延年)이 다시 이 호곡으로부터 새로운 음악[新聲] 28()를 만들어 수레를 타고 연주하는 무악(武樂)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장건(張騫)이 서역으로 두 차례 출정했는데, 첫 번째는 B.C. 138년에서 126년 사이고, 두 번째는 B.C. 119년이었다. 이때는 불교가 아직 중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기였다. 당시 장건이 서역에서 가지고 온 '마하두륵'이라는 곡은 불교음악[佛曲]에 해당하는 곡으로 추정된다. '마하두륵'에서 '두륵'은 사람 이름이다.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의 두륵범지경(兜勒梵志經)이라는 품에 보면 두륵이 석가모니의 교화로 불교에 입문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바라문이었던 두륵이 불법을 받아들여 마침내 '위대한 두륵'[摩訶兜勒]이 되었으니, 노래로 찬탄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 곡이 한나라 궁중에 들어온 후에 당시 음악을 관장하던 벼슬인 협률도위(協律都尉)를 지낸 위대한 음악가 이연년이 이 곡을 마상횡취(馬上橫吹)의 군악으로 개편하여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서 연주하게 하였다. 이렇게 초기의 불교음악은 실제로는 불교의 본질과는 어긋나게 쓰였다. 그러나 이 곡으로 인하여 군악곡 28곡이 새로 창작되어 음악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광(呂光)이 구자국(龜玆國)을 멸한 이후, 중국 조정에 대량의 불교음악이 들어온 것으로 전한다. 이 사실은 {수서}(隋書) 음악지(音樂志)에 실려 있는 여광과 저거몽손(沮渠蒙遜) 등이 구자의 소리로 만든 진한기(秦漢伎)에 해당하는 "영세악"(永世樂)"우전불곡"( 佛曲) 등으로 알 수 있다. 이 기록에서 "구자는 여광이 구자국을 멸했기 때문에 구자의 소리를 얻게 되었다"고 한 것을 보면, 불교음악이 구자로부터 중국에 전래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더욱 확인시켜 주는 것은 여광이 A.D. 382년에 구자국을 멸한 이유가 불교를 받아들이고 구마라집을 모셔 오기 위한 목적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진서} 95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광이 군사 7만 명을 거느리고 구자국을 치러 갔을 때, "구마라집을 빼앗으면 명마를 보내 모셔 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다. 이러한 내용은 {고승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원(建元) 189, 부견이 효기장군 여광을 보냈다. (중략)병사 7만 명을 거느리고 구자국과 오기(烏耆)와 같은 나라들을 치게 했다. 여광이 떠날 때, 부견이 여광을 건장궁(建章宮)으로 불러 "(중략)짐이 듣자 하니 천축국에 구마라집이라는 사람이 있다는데, 법상(法相)에 해박하고 만물의 진리를 잘 알아 후학들의 근본이 될 만하다고 한다. 짐이 깊이 생각해 보니 성현은 일국의 보배라. 만약 구자를 물리치거든 구마라집에게 명마를 보내 모셔 오라"고 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한나라에 온 구마라집은 역경사업에 주도적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음악 10곡을 직접 창작하여 전파했는데, 이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구자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서역의 교통요지에 위치해 있어서 인도의 불교문화는 대부분 이곳을 통해 중국에 유입되었다. 구자국은 오랜 기간 동안 중서문화(中西文化)가 융합되는 중간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구자국에는 매우 발전된 음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음악들이 불교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구자음악으로 승화되었고, 그 음악이 다시 중국에 전래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굴지국(屈支國) (중략)문자는 인도 것을 취하였는데, 조악함이 다소 개선되어 있다. 관현악과 기악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특히 잘하였다. (중략)그 나라에는 가람이 100여 곳이 있는데, 스님 5천여 명이 소승의 교학과 설일체유부의 학설을 배우고 있었으며, 경전의 가르침과 율의(律儀)는 인도 것을 따랐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 구자국에는 불교음악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음악사 속에서 구자국 음악의 발전된 모습을 접할 수가 있다. 구자국의 음악은 '서국구자'(西國龜玆)'제조구자'(齊朝龜玆)'토구자'(土龜玆) 세 가지로 나누어지고, 당나라 때에 와서는 연악(燕樂)의 주제가 되었다.

당나라 사람들은 구자악과 불교음악을 같은 것으로 보았다. {고승전} 독송편(讀誦篇)에는 유공(惟恭)과 영귀(靈歸), 두 스님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그 중에 젊은 사람들이 깨끗한 옷을 입고 각자 악기를 들고 구자부 같은 것을 연주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 음악을 듣는 사람마다 너무 아름다워 하늘의 음악인 줄 알았다고 한다. 독송편 끝부분에서는 천악불곡(天樂佛曲)'악상구자'(樂像龜玆) 혹은 '개구함담'(開口  )이라고도 하였다. 구자국의 악기로는 '수공후''비파''오현''''''필률''모원고'(毛員鼓)'답석고'( )'요고''갈고'( )'계루고'(鷄樓鼓)'동발''' 등이 있다. 악공은 20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비단 두건을 쓰고 비단 장삼에 면 소매 옷과 비단 바지를 입었다고 한다. 돈황벽화에 있는 불교의 악곡과 비교해 보면, 당시에 연주됐던 악기는 기본적으로 구자국의 것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돈황권자(敦煌卷子)에서도 증명할 만한 기록이 보인다. 돈황곡(敦煌曲3065) "태자입산수도찬"(太子入山修道讚)이라는 시에 "공주천선악, 구자운궁상"(共奏天仙樂, 龜玆韻宮商)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는 즉 하늘의 선악(仙樂)을 함께 연주하는데 그 음률은 구자의 운율(韻律)이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기록에 근거하여 구자악과 불곡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수나라에 이르러서는 민간에까지 크게 유행하였고, 당나라 때는 연악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와 같은 구자악은 기본적으로는 모두 불교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불교음악이 서역을 거쳐 동점하면서 구자악과 혼합되어 새로운 불교음악을 탄생시켜 중국으로 전래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음악들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중국에서는 인도와는 다른 중국의 불교음악을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모체 역할을 하였다.

이혜구는 그의 논문 "고구려악과 서역악"에서 고구려기(高句麗伎)는 수나라 대업(大業) 때에 증보된 구부기(九部伎)와 당 태종(太宗) 때 확대된 십부기(十部伎)에 귀속된다고 논하면서 구부기에 관한 내용을 밝혔는데, 그 중에서 천축기(天竺伎)안국기(安國伎)구자기(龜玆伎)강국기(康國伎)소륵기(疎勒伎)는 모두 서역악, 즉 중국이 아닌 서역의 음악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서역으로부터 전래된 음악들이 중국에 정착하면서 수나라 때에 와서 칠부기와 구부기, 그리고 당나라에 이르러 십부기로 그 장르가 확대되었다. 우리의 고구려음악이 십부기 속에 속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중국은 많은 외래음악을 수용하고 있었으며, 특히 인도로부터 서역을 거쳐 중국에 유입된 불교음악이 자국의 음악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으리라고 추정된다. 다음에는 이러한 불교음악이 중국에 어떻게 전래되고 수용됐는가에 대해 살펴보겠다.

 

2) 중국불교음악으로의 변천

인도를 시발점으로 한 불교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서역지방을 두루 거치면서 범아시아적 종교사상을 확립하였다. 그러므로 인도와는 다른 풍부한 중국의 불교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더구나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정치와 윤리사상이 발달되어 있던 중국은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넓고 깊은 새로운 종교사상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불교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불교교리에 있어서 대승불교라는 새로운 불교로 발전하여 독자적인 중국의 선종이나 정토교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인도로부터 전래된 불교음악은 자연히 많은 변천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중국으로 전래되는 과정 속에서 서역 각국의 민족음악과 상호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특히 서역지방에 산재해 있던 다양한 음악들과 자연적 교류가 이루어져 더욱 풍부한 불교음악으로 자리하게 되는데, 그 예로 앞에서 언급한 돈황벽화를 비롯하여 많은 불화와 도상(圖像)에 보이는 대표적 악기들(琵琶橫笛)이 중국으로 전래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음악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음악을 살펴보면, 서역지방에 근거를 두고 중국을 거쳐 전래된 음악과 악기 등을 볼 수 있다. 송방송(宋芳松){한국음악사논고}(韓國音樂史論攷)에서 "중국범패의 뿌리가 인도불교에서 모색되어야 한다면, 결국 한국범패는 서역의 음악문화와 역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6세기경에 고구려에서 연주된 것으로 보이는 '횡적'(橫笛)은 그 유래를 서역에서 찾아야 하고, '오현비파'(五絃琵琶)는 그 뿌리를 중앙아시아에서 찾아야 한다고 논한다.

중국에 정착된 불교음악은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전 지역의 민족음악과 충분한 교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힘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중국의 불교음악을 창출해 낸 것이다.

중국의 불교음악이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보다 더욱 화려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중국에는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역사 깊은 음악문화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인도로부터 중국으로 전래된 불교음악이 곧바로 중국식의 불교음악으로 수용될 수 있었다. 그런 중국음악이 인도의 불교음악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중국의 불교음악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창출된 중국불교음악 중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범패'이다.

이상 범패의 전래와 변천에 관한 내용에서 인도의 불교음악과 중국의 불교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인도로부터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래된 불교음악이 서역지방에 머무르는 동안 다양한 음악문화를 이루었고, 그 음악이 다시 중국에 전래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국에 전래된 인도의 불교음악이 ''''이 맞지 않음으로써 ''이 중국식으로 바뀌게 됐다는 사실이다. 즉 인도와 다른 새로운 중국의 불교음악[梵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불교음악이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된 뒤에 새로운 중국의 불교음악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확인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음악은 전래된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변천한다는 것이다.

 

[박범훈 불교음악 역사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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