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릴지브란] 예언자



 

 

 예언자 

 카릴 지브란

 


 작가 소개

1. 배가 오다 

2. 사랑에 대하여 

3. 결혼에 대하여 

4. 아이들에 대하여 

5. 베풂에 대하여 

6. 먹고 마심에 대하여

7. 일에 대하여 

8.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9. 집에 대하여 

10. 옷에 대하여

11. 사고 팖에 대하여 

12. 죄와 벌에 대하여 

13. 법에 대하여 

14. 자유에 대하여 

15. 이성과 열정에 대하여 

16. 고통에 대하여 

17. 자기 인식에 대하여 

18. 가르침에 대하여 

19. 우정에 대하여 

20. 대화에 대하여 

21. 시간에 대하여

22. 선과 악에 대하여 

23. 기도에 대하여 

24. 쾌락에 대하여 

25. 미에 대하여 

26. 종교에 대하여

27. 죽음에 대하여

28. 고별에 대하여

 


 작가 소개




 Kahlil Gibran, 1883~1931

 시인이며 화가인 칼릴 지브란은 1883년 1월 6일 레바논의 베챠리 Bsharri에서 태어났지만 경제적인 어려움과, 가정불화로 어머니와 함께 1895년 미국으로 이민을 해 보스톤의 빈민가에 정착했다. 1898년 레바논으로 돌아와 베이루트의 지혜의 학교 Madrasat Al Hikmat에 입학했으며, 1902년 보스톤에서 그림을 그리며 아랍 어 저술을 시작했다. 1908년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간 파리에서 그를 '20세기의 블레이크'라고 칭한 로댕을 만나기도 했다.  영국 작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그림은 니체의 작품과 함께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10년 미국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작업실, 즉 아랍 문인들이 '은자의 집'이라 부른 공간에서 창작에 몰두 했다. 1923년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예언자>를 완성했으며, 생애 대부분을 뉴욕에서 보내다 1931년 4월 10일,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 지브란은 오토만 투르크의 압제와 착취에 시달리는 조국을 위해 분노와 투지를 불살랐으며, 빈곤과 불의와 부패, 제도화된 폭력을 규탄하며 인간의 존엄을 강조한 열렬한 인권 옹호자였다.  또한 이미 20세기 초에 지구와 자연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보호를 강조한 선각자이기도 했다.

저서로는 <계곡의 요정 Mymphs of the Valley(1906)> <부러진 날개 The Broken Wings(1912)>, <영가 The Procession(1919)>, <모래와 물거품 Sand and Foam(1926)>, <방랑자 The Wandere(1932)>외 다수가 있다.




 1. 배가 오다 


 알무스타파. 선택받은 자인 동시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자. 

뿐만 아니라 시대를 밝혀준 그는, 십이년 동안이나 올펄레즈 시(市)에서 그를 태워 고향으로 돌아갈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십이년 째 되던 해. 수확의 달 이엘룰(Ielool) 초이렛날에 그는 성 밖에 있는 한 언덕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보았다. 안개에 싸여 그의 배가 오고 있는 것을. 

그러자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그의 기쁨은 바다 멀리 날아갔다. 

그는 두 눈을 감은 뒤 고요한 영혼이 되어 기도했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오던 중 그는 갑자기 슬퍼져서 마음 속 깊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슬픔 없는 평화로움으로 나는 왜 떠날 수 없는 것일까? 

아니, 상처 난 영혼 하나 없이 이 도시를 절대로 떠날 수 없으리라. 

이 성벽 안에서 보낸 고통의 낮은 너무 길었고, 또한 고독의 밤도 길었으니, 

누가 있어 이 고통, 이 고독과 한 점 후회 없이 작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거리에 내 이미 뿌려 버린 무수한 영혼의 조각들, 

벌거벗은 채 이 언덕들 사이로 헤매는 무수한 내 갈망의 아이들, 

내 정말 근심과 고통 없이는 이들을 떠나갈 수 없다. 


내 오늘 벗어 버리는 이것, 한갓 옷이 아니라 내 두 손으로 찢어 낸 살.

또한 내 뒤에 남기고 가는 이것, 이것은 하나의 사상이 아니라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더욱 부드러워진 하나의 심장인 것을. 


허나 내 이제 더 오래 머뭇거릴 수 없구나. 

일체(一切)를 자기에게 부르는 바다가 날 부르니, 이제 배에 올라야만 한다. 

왜? 머문다는 것은, 

비록 한밤 내내 시간이 불타오를지라도, 

굳어 버림이며 결정(結晶)되어 버림이며, 하나의 틀에 묶여 버리는 것이므로. 

내 기꺼운 마음으로 이 모두와 함께 갈 수 있다면.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목소리란 자기를 날려 보내는 혀와 입술까지 이끌고 갈 수는 없다는 것. 

다만 홀로 창공에 이르러야 하는 것. 

다만 홀로, 한 마리 독수리도 집이 없이 태양 저쪽으로 날아갈 수 있는 것. 

언덕 기슭에 이르러 그는 다시 한 번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 

그는 그의 배가 뱃머리에 고향 사람들인 선원을 싣고 항구로 다가오는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영혼이 그들을 향해 소리쳐 말했다. 

내 오랜 어머니의 아들들이여, 그대들 조수를 타고 온 자들이여. 

얼마나 자주 그대들은 내 꿈속을 항해하였는지.

그런데 이제 그대들은 내 깨어나려 할 때 찾아오는구나, 

그런데 이것은 더 깊은 꿈. 물론 떠날 채비는 되어 있다. 

내 갈망은 가득히 돛을 펴고 바람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고요한 대기 속에서 내 오직 한 번 더 숨쉬면, 오직 한 번 더 뒤로 다정한 눈길을 던지면, 

그러면 나는 그대들 가운데, 뱃사람 중의 뱃사람인, 그대들 가운데 서게 되리라. 

그리고 당신, 광막한 바다, 잠들지 않는 어머니여, 또한 홀로 강과 시냇물에 평화와 자유를 주는 이여, 

오직 한 번 더 굽이치면 이 시냇물은 이 숲속 빈터에서 한 번 더 속삭이며 흐를 것을, 

그러면 나는 당신에게로 가리라, 끝없는 대양(大洋)에 끝없는 물방울.


 걸어가면서 그는 멀리 남녀들이 들과 포도밭을 떠나 성 문을 향해 서둘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밭에서 밭으로 그들의 외침은 그의 배가 다가옴을 전하고 있었다. 

그래. 그는 중얼거렸다. 

작별의 곧 만남의 날이 되는 것인가? 나의 저녁은 실은 나의 새벽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저 밭고랑에 쟁기를 버려 둔 이에게, 포도주 짜는 기구의 바퀴를 멈춘 이에게 나는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 

내 가슴이 무거운 열매 달린 나무나 되어 그 열매를 나누어 줄 것인가? 

그러면 나의 욕망은 샘처럼 흘러 넘쳐 그들의 잔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신의 손길이 퉁기는 하프, 혹은 내 속으로 그분의 숨결을 스치는 피리인 것인가? 

나는 침묵의 탐구자, 허나 침묵 속에서 나는 무슨 보물을 찾아내어 당당하게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오늘이 내 수확의 날이라면, 어느 들에, 어느 잊어 버린 계절에 나는 씨를 뿌려야 할 것인가? 

지금이 실로 내 등잔을 켜 들 시간이라도 해도, 거기 타오르는 불꽃은 나의 불꽃이 아닌 것을. 

나는 다만 텅 빈 채 암흑으로 나의 등잔을 켜리라, 그러면 밤의 파수꾼이 기름을 채워, 또한 그가 불을 밝혀 줄 것을.


이런 말들을 그는 중얼거렸다.

허나 그의 가슴속에는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았다.

왜냐하면 보다 깊은 비밀을 그 스스로도 말할 수 없었으므로.


그리하여 그가 도시에 돌아오자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만나러 와서, 일제히 소리쳐 말했다.

도시의 원로(元老)들은 앞으로 나와서 말하기도 하였다.

아직 우리들 떠나지 마시라.

그대 황혼 속에서도 한낮의 빛이었고, 그대 젊음은 우리를 꿈에서 꿈으로 이끌었으니.

그대 우리에게 타인(他人)도, 손님도 아니노라.

우리의 아들이며, 우리 가장 사랑하는 자일 뿐.

 그러니 그대 모습 그리고 우리의 두 눈을 아직은 괴롭히지 마시라.


그러자 남녀 사제들도 말했다.

이제 바닷물결이 우리를 갈라놓게 하지 마소서.

그리하여 그대 여기 우리와 함께 보낸 날들을 기억하소서.

그대 우리 사이에선 언제나 한 정신으로서 거닐었고,

그대 그림자는 우리 얼굴에 비치는 빛이었음을.

우리 얼마나 그대를 사랑했는지. 다만 우리의 사랑은 말이 없을 뿐.

그래, 너울로 가리어 있었던 것 뿐.

허나 이제 사랑은 큰 소리로 외치며 그대 앞에 나타나 서리라.

사랑이란 언제나 이별의 시간이 오기까지는, 자기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것.


 그러자 다른 이들도 또한 간청했다.

허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숙였을 뿐, 가까이 서 있던 이들은 그때 눈물이 그의 가슴을 적시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와 사람들은 모두 사원 앞에 있는 넓은 광장을 향하여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거기 신전으로부터 알미트라 라고 부르는 한 여인이 나타났다. 예언녀였다.

그는 다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가 이 도시에 온 지 하루밖에 안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찾아와 그를 믿은 이였으므로.

그녀는 그를 환영해 맞으며, 말했다.

신의 예언자 이시여, 끝을 찾아 헤매는 분이시여, 그대 그대의 배를 찾아 먼 거리를 헤맸다.

이제 배가 왔으니 그대는 떠나야만 하리라.

그대 추억의 나라와 보다 큰 욕망의 땅을 향한 갈망은 깊으니,

사랑으로 우리 그대를 얽맬 수도, 우리의 요구로 그대를 만류할 수도 없으리라.

허나 그대 우리를 떠나기 전에 청하노니, 우리에게 그대의 진실을 말씀하여 주시기를.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자라 또 자기의 아이들에게 전하여,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

그대 고독 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 잠 속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에 결코 잠드는 법 없이 귀를 기울였으니.

그러니 이제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드러내 보이게 하시고, 죽음과 탄생 그 사이에서 그대 보았던 것을 모두 말씀해 주소서.


 그래 그는 대답했다.

 올펄레즈 사람들이여, 내 그들의 영혼 속에서 지금도 떠돌고 있는 것, 그것 외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2. 사랑에 대하여 
 


그러자 알미트라는 말했다.

사랑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머리를 들어 사람들을 보았고, 그런 그들 위로 잠시 동안 고요가 머물렀다.

마침내 그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싸 안을 땐, 몸을 내어 맡기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사랑이 그대들에게 말할 땐 그 말을 믿으라,

비록 북풍이 저 뜰을 폐허로 만들어버리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들의 꿈을 망가지게 하더라도.

 왜? 사랑이란 그대들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는 만큼 또 그대들을 괴롭히는 것이니까.

사랑이란 그대들을 성숙시키는 만큼 또 그대들을 베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니까.

 심지어 사랑은 그대들 속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들의 가장 부드러운 가지를 껴안지만,

한편 사랑은 또 그대들 속의 뿌리로 내려가 대지에 엉켜 있는 그것들을 흔들어대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마치 곡식단과 같이 그대들을 자기에게로 거두어 들이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두드려 벌거벗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채로 쳐 쓸데없는 모든 껍질들을 털어 버리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갈아 순백(純白)으로 변하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유연해질 때까지 반죽하여,

그런 뒤 신의 거룩한 향연을 위한 거룩한 빵이 되도록 성스러운 자기의 불꽃 위에 올려놓는 것.
 사랑은 이 모든 일들을 그대들에게 행하여 그대들로 하여 마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고,

그 깨달음으로 사람의 가슴의 한 파편이 되게 하리라.
그러나 그대들 오직 두려움 속에서 사랑의 평화, 사랑의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면,

차라리 그땐 그대들 알몸을 가리고 사랑의 타작 마당을 나가는 게 좋으리라.

계절도 없는 세계로,

그대들 웃는다 해도 실컷 웃을 수는 없는, 그대들 운다 해도 실컷 울 수는 없는 곳으로.
 사랑은 저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저 외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 당할 수도 없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할 뿐.
 사랑할 때 그대들 이렇게 말해서 안 되리라, '신은 나의 마음속에 계시다' 라고.

그보다 '나는 신의 마음속에 있다' 라고 말해야 하리라.

또한 결코 그대들 사랑의 길을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대들 가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랑이 그대들의 길을 지시할 것이므로.
 사랑은 스스로 충족시키는 것 외에 다른 욕망은 없는 것.

그러나 그대들 사랑하면서도 또다시 숱한 욕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면, 다음의 것들이 그대들의 욕망이 되게 하라 --

 녹아서, 밤을 향하여 노래하며 달려가는 시냇물처럼 되기를.

지나친 다정함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스스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그대들 상처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즐겁게 피 흘리게 되기를.

날개 달린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 사랑의 또 하루를 향하여 감사하게 되기를,

정오에는 쉬며 사랑의 황홀한 기쁨을 명상하기를,

황혼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기를.

그런 다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음속으로부터 기도하고 그대들의 입술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게 되기를.



 3. 결혼에 대하여 




 그러자 알미트라는 또 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해 말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그대들의 생애에 죽음의 흰 날개가 깃들어 사라지게 될 때까지 함께 있으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하지만 그대들이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하늘에서 불어온 바람이 그 사이에서 춤출 수 있는.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속박되지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에게 대가를 지불하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4. 아이들에 대하여 


 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다.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들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5. 베풂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부자 한 사람이 말했다. 베풂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래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이 가진 것을 베풀었을 때 그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다.

참된 베풂은 자신을 베푸는 것뿐.

그대들이 가진 것이란 사실 무엇인가. 혹시 내일 필요할까 두려워 간직하고 지키는 것 외에?

그래 내일,

하지만 성도(聖都)로 가는 순례자들을 좇아 제 뼈는 자취도 없는 모래 속에 묻어 버리는,

지나치게 조심성 많은 개에게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또 모자랄까 두려워함이란 무엇인가?

두려워함, 그것이 이미 모자람일 뿐.


그대들은 샘이 가득 찼을 때에도 목마름을 채울 길 없어, 목마름을 두려워하진 않는가?
가진 것은 많으나 조금밖에 베풀지 않는 이들 -

그런 이들은 알아주기를 바라며 베푸는 이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은밀한 욕망은 그들의 선물마저 불결하게 만들어 버린다.

허나 가진 것은 조금밖에 없으나 전부를 베푸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삶을 믿는 이들이며, 삶의 자비를 믿는 이들이며,

그리하여 그들의 주머니는 결코 비지 않는 것을.


세상에는 또 고통으로 베푸는 이들도 있으니,

이 고통이 바로 그들의 세례식.

허나 또 베풀되 고통도 모르며, 기쁨도 찾지 않으며 덕을 행한다는 생각도 없이 베푸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은 마치 저 계곡의 상록수가 허공에 향기를 풍기듯 그렇게 베푼다.

그리하여 이런 이의 손길 사이로 신은 말씀하시고,

이들의 눈 속에서 그분은 대지를 향해 미소짓는 것이다.


요청 받을 때 베푸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다.

허나 요청 받지 않을 때에도, 다만 이해함으로써 베푸는 것, 그것은 더욱 좋은 일.

그러므로 마음 넓은 이에겐

받을 이를 찾음이 베풂보다도 더 큰 기쁨인 것을.


그런데 지금 그대들 움켜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 가진 것이란 모두 언젠가는 주어야 하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 주라,

베풂의 때가 그대들 뒷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것이 되게 하라.
 

그대들은 가끔 말한다. '나는 베풀리라, 그러나 오직 보답 있을 것에만 베풀리라.'

하지만 그대들의 과수원의 나무들, 목장의 양떼들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살기 위하여 베푼다. 서로 나누지 않고 움켜쥠이야말로 멸망하는 길이기에.

실로 낮과 밤을 맞이하여도 좋은 이라면 그대들로부터 다른 모든 것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는 이들이다.

삶의 바다를 마셔도 좋은 이라면 그대들의 작은 시냇물로 그의 잔을 채워도 괜찮은 이인 것을.

받아주는 저 용기와 확신, 아니 사랑 속에 놓여 있는 것보다 더 큰 보답이 어디 또 있을 것인가?


그런데 그대들은 어떤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가슴을 찢게 하고, 자존심을 벌거벗게 하며 그리하여 형편없이 된 가치와 찢어진 자존심을 보는 그대들은.

무엇보다 우선 그대들은,

스스로 베풀 수 있는 자로서, 베풀 수 있는 그릇에 마당한가를 생각하라.

실로 삶을 주는 자는 삶,

그것 뿐이다

다만 그대들, 스스로 시혜자(施惠者) 라고 생각하는 그대들은 그 증인에 불과할 뿐.


그리고 그대 받는 이들이여 - 물론 그대들은 모두 받는 이들이지만 -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 에 대하여 생각하지 말라.

그것이야말로 그대들 자신에게도, 베푸는 이에게도 멍에를 씌우는 일.

그보다 그이와 함께 날개이듯 그의 선물을 타고 오르라.

지나치게 그대들의 빚을 걱정함은 그의 자비를 의심하는 것이 될 뿐,

넓은 마음의 대지(大地)를 어머니로, 신을 아버지로 한 그의 자비를.



 6. 먹고 마심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여관 주인인 한 노인이 말하기를, 저희에게 먹고 마심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 대지의 향기로만 살 수 있다면, 마치 빛으로 살아가는 기생(氣生) 식물처럼. 하지만 그대들 먹기 위하여 살해해야 하고 목마름을 달래기 위하여 어미의 젖으로부터 갓난 것들을 떼어내야 함을, 그러므로 그 행위를 하나의 예배가 되게 하라. 그대들의 식탁을 제단으로 세우고, 그 위에서 숲과 평원의 순수 무구한 것들은 인간 속의 보다 순결한 것, 또 더욱 무구한 것을 위해 희생되어지도록 하라. 그대들 짐승을 살해하여야 할 땐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이라. '그대 살해의 힘으로 나 역시 살해당하고 있음을, 나 역시 먹히는 것. 나의 손아귀 속으로 그대 인도한 법칙은 보다 힘센 손아귀 속으로 나 또한 인도할 것을. 그대 피와 또 내 파란 천공(天空)의 나무를 키우는 수액(樹液)에 불과할 뿐인 것.' 그대들 이빨로 사과를 깨물 때엔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이라. '그대 씨앗은 몸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그대 미래의 싹은 나의 심장 속에서 꽃피리. 그리하여 그대 향기는 내 숨결이 되어 우리 함께 온 계절을 누리리라.' 또한 가을이 되어 포도주를 짜기 위해 그대들 포도밭에서 포도알들을 따 모을 땐 마음속으로부터 속삭여 주라. '나 역시 포도밭과 같으니 나의 열매 또한 포도주를 짜기 위해 거두어질 것을, 그러면 나 역시 새 포도주처럼 영원의 항아리 속에 담겨질 것을.' 그리하여 겨울이 되어 그대들 포도주를 따를 때면 하나의 잔마다 하나의 노래를 그대들의 마음속에 따르게 하라. 그리하여 그 노래 속에 가을날들과 포도밭과 포도주 짜던 추억을 간직하게 하라.



 7. 일에 대하여 


 그러자 농부 한 사람이 물었다. 저희들에게 일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는 대답해 말했다. 그대들은 대지와 또한, 대지의 영혼과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게으름이야말로 계절의 이방인이며, 자랑스런 복종으로 영원을 향한 삶의 행렬을 벗어나는 것.
 그대들 일할 땐 그대들은 피리가 되어, 그 속으로 시간의 속삭임은 음악으로 변해 울려 나간다. 그대들 중 누가 모두 어울려 한 음(音)으로 노래할 때 말 못하는 벙어리 갈대가 되고자 하는가?
 그대들은 언제나 일이란 재앙이요, 노동이야말로 불운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러나 내 말하노라, 그대들 일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대지의 가장 깊은 꿈의 한 조각을 채우는 것이라고, 오직 그대들에게만 맡겨진 꿈을. 또 스스로 노동함으로써만 그대들은 진실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며, 또 노동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길만이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허나 만일 그대들 괴로워 태어남을 고통이라 부르고 육신으로 살아감을 그대들 이마에 씌어진 저주라 일컫는다면 내 감히 대답하리라, 그대들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그 저주를 씻어 줄 것이라고. 그대들은 또한 삶은 암흑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리고 피로 속에서 지친 그대들 또한 그 말을 되풀이한다. 허나 내 말하노라, 강한 충동이 없을 때야말로 삶은 진실로 암흑이라고, 그리고 또한 모든 충동이란 깨달음이 없을 때엔 쓸모 없는 것이라고. 그리고 또한 모든 깨달음은 노동이 없다면 헛된 것, 그리고 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다면 공허한 것임을. 그대들 사랑으로 일한다면 그대들은 자신을 스스로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며, 그리고 서로서로, 마지막엔 신(神)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랑으로 일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들 심장에 뽑아 낸 실로 옷을 짜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입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애정으로 집을 짓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살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또 그대들이 형상짓는 모든 것에 그대들만의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리하여 그대들 곁에는 언제나 모든 복받은 죽음들이 서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대들이 잠꼬대인 양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대리석을 쪼으며 일하는 이, 그리하여 돌 속에서 영혼의 모습을 찾아내는 이는 흙을 가는 이보다 고상한 법. 또 무지개를 잡아 헝겊 위에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이는 신발을 만드는 이보다 고상한 법' 이라고. 허나 내 잠 속에서가 아니라 활짝 깨어 있는 한낮에 말하노라, 바람은 커다란 참나무에게 라고 해서 하찮은 풀잎에게 보다 더 다정하게 속삭이지는 않는다고. 그러므로 바람 소리를 자기만의 사랑으로 보다 부드러운 노래로 변화시키는 이. 그만이 홀로 위대하다고. 노동이란 보이게 된 사랑. 그대들 만일 사랑으로 일할 수 없고 다만 혐오로써 일할 수 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대들은 일을 버리고 신전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이나 하는 게 나으리라. 왜냐하면 그대들 만약 냉담하게 빵을 굽는다면, 인간의 굶주림을 반도 채우지 못할 쓴 빵을 구울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대들 원한에 차서 포도를 짓이긴다면, 그대들의 원한은 포도주 속에 독을 뿜으리라. 또한 그대들 천사처럼 노래할지라도 노래함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낮의 소리 밤의 소리에 대하여 인간을 귀멀게 하는 것이 될 뿐.



 8.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다음에는 한 여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기쁨이란 가면을 벗으면 그대들의 슬픔. 그대들의 웃음이 떠오르는 바로 그 샘이 때로는 그대들의 눈물로 채워진다. 그러니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의 존재 내부로 슬픔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그대들의 기쁨은 더욱 커지리라. 도공(陶工)의 가마 속에서 구워진 그 잔이 바로 그대들의 포도주를 담는 잔이 아닌가? 칼로 후벼 파낸 바로 그 나무가 그대들의 영혼을 달래는 피리가 아닌가? 그대들 기쁠 때 가슴속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이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음을. 그대들 슬플 때에도 가슴속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대들,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울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대들 중의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한 것이라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것.' 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 이들은 함께 오는 것, 한편이 홀로 그대들의 식탁 곁에 앉을 때면 그러므로 기억하라, 다른 한편은 그대들의 침대 위에서 잠들고 있음을.
 진정 그대들은 기쁨과 슬픔 사이에 저울처럼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직 텅 비어 있을 때에만 그대들은 멈추어 균형을 이룬다. 보물지기가 자기의 금과 은을 달고자 멈추어 들어 올릴 때. 그러니 그들의 기쁨, 혹은 그대들의 슬픔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



 9. 집에 대하여 


 다음엔 석수(石手)가 나와 말하기를, 집에 대하여 저희에게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그대들, 성벽 안에 집을 짓기 이전에 광야에다 상상의 초당(草堂) 하나를 지으라. 그대들 황혼이면 돌아오듯이 그대들 속의 멀고 외로운 방랑자도 결국 돌아오리니. 그대들의 집이란 그대들의 보다 큰 육체. 태양 속에 자라며 밤의 정적 속에 잠든다, 또한 꿈꾼다. 그대들의 집은 꿈꾸지 않는가? 꿈꾸며, 숲이나 언덕 꼭대기를 향하여 도시를 떠나고 있지 않는가. 바라건대 내 그대들의 집들을 내 손바닥에 거두어 씨뿌리는 이와도 같이 숲과 초원에 뿌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골짜기는 그대들의 거리가 되고 초록 길들은 그대들의 오솔길이 되어 포도밭 사이로 그대들 서로서로 찾아내 옷깃에 대지의 향기를 품어 온다면. 허나 이런 일들은 일찍이 존재하지도 않은 일. 그대들의 선인(先人)은 두려움 때문에 그대들을 너무 가까이 모아 놓았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좀더 계속되리라. 좀더, 그대들의 성벽은 들로부터 그대들의 집을 떼어놓으리라.
 그러니 내게 말해 다오. 올펄레즈 시민들이여, 이 집 속에 그대들 지닌 것, 그것이 무엇인가? 또 문을 잠그고 그대들 지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에겐 평화가 있는가, 그대들 힘을 보여 줄 말없는 충동인 평화? 그대들은 회상할 수 있는가, 마음과 마음의 절정(絶頂)을 이어 주는 반짝이는 아치의 문을. 그대들에게는 미(美), 그러니까 나무 또는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부터 가슴을 거룩한 산으로 인도해 줄 미가 있는가? 말해 다오, 그대들 집 속에 그대들은 이런 것들을 지녔는가? 혹은 그대들은 다만 안락, 안락에의 열망만을 지녔는가, 손님으로 찾아와서는 이윽고 주인이 되고, 드디어는 정복자가 되는 음흉한 자인 안락?
 그래, 그리하여 그 자는 길들이는 자가 되어 갈고리와 채찍으로 그대들을 더욱 큰 욕망의 꼭둑각시가 되게 한다. 비록 그 자의 손은 비단결 같을지라도, 그 자의 가슴은 쇠로 만들어져 있다. 그 자는 그대들 침대 곁에 서서 다만 잠재우기 위하여 그대들을 토닥거린다. 그러면 육체의 존엄을 비웃는다. 그자는 또 그들의 신선함 감각을 조롱하고, 그리하여 금방이라도 깨어질 그릇이나 한 것처럼 엉겅퀴 가시 속에 누인다. 실로 안락에의 열망은 영혼의 정열을 죽이는 것, 그리고는 장례식으로 이죽이며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아이들인 그대들, 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는 그대들, 그대들은 덫에 걸리지도, 길들여지지도 말라. 그대들의 집은 닻이 아니라 돛대이게 하라. 또 상처를 덮는 번쩍이는 거미줄이 아니라 눈을 지키는 눈꺼풀이 되게 하라. 또한 문을 지나가려고 날개를 접지 말고, 또 그대들의 머리를 천정에 부딪치지 않으려고 숙이지도 말며, 벽이 부서져 내릴까 숨쉼을 두려워도 말라. 그대들은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만든 무덤 속에선 살지 말라. 그리고 아무리 장대하고 화려함에 차 있을지라도 그대들의 집이 그대들의 비밀을 간직하게 말며, 동경을 가리게도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 내부의 무한한 것은 집 속에 머물고 있으므로, 아침 안개가 문이며 밤의 노래와 고요가 창인 집 속에.



 10. 옷에 대하여 


 그러자 직공 한 사람이 말했다. 저희에게 옷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옷이란 아름다움을 많이 가리나 추함을 가리지는 못하는 것. 그대들은 옷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얻으려 하지만, 그러나 외려 그 옷이 갑옷이 되고 사슬이 됨을 알게 되리라. 바라건대 그대들 옷을 좀 덜 입음으로써 좀더 많이 그대들의 살이 태양과 바람을 만날 수 있기를, 왜냐하면 삶의 숨결은 태양 속에 있으며, 삶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으므로.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의 옷을 짠 이는 북풍이지' 라고. 내 말하노라, 그래 북풍이었다. 허나 그의 베틀은 수줍음, 그의 실은 연약해진 힘줄. 그리하여 일을 다 마쳤을 때 바람은 숲속에서 웃었다. 잊지 말라. 수줍음이란 부정한 이의 눈을 가리는 방패일 뿐. 그리하여 부정한 이가 더 이상 있지 않게 될 때, 수줍음이란 오히려 마음의 더럽힘, 또는 족쇄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그러니 잊지 말라. 대지는 그대들 맨발의 감촉을 기뻐하고, 바람은 그대들 머리카락과 장난하기를 갈망하고 있음을.



 11. 사고 팖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상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사고팖(賣買)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에게 대지는 모든 열매를 허락하고 있다. 그러니 그대들 어떻게 손에 넣을지만 안다면 결코 부족함이란 없으리라. 풍요와 만족이란 대지의 선물을 교환함으로써만 찾을 수 있는 것. 하지만 그것이 사랑과 부드러운 정의의 교환이 아니라면, 그는 다만 그대들을 탐욕으로, 혹은 굶주림으로 이끌 뿐이리라.
 장터에서 그대들, 바다와 들과 포도밭의 일꾼들인 그대들이, 직공과 도공(陶工)들, 또는 향료 모으는 이들을 만날 때면 -- 간절히 빌라. 대지를 주관하기는 절대신에게, 그대들 마음속에 왕림하여 저울과 서로의 값을 재는 계산을 성스럽게 하여 주십사고. 그리고 결코 용서하지 말라. 텅 빈 손으로 그대들의 거래에 끼이려는 자들을, 그자들은 그대들의 노고 대신에 말을 팔고자 할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그대들은 이렇게 말해야 하리라. '우리와 함께 들로 갑시다. 아니면 우리 형제와 함께 바다로 가서 그물을 던집시다. 대지와 바다는 우리에게처럼 그대들에게도 관대하리라.'
 만일 또 그곳에 노래하는 이들과 춤추는 이들과 피리 부는 이들이 온다면 - 그들의 선물 또한 사거라. 그들 역시 열매와 유향(乳香)을 거두는 자들이며, 그보다 그들이 가져오는 것이야말로 비록 꿈의 형상을 하였을지라도, 그대들 영혼의 옷이며 음식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장터를 떠나기 전에 보라, 아무도 빈손으로 가는 이는 없음을. 대지를 주관하시는 절대 신은 그대들의 최소(最小)의 요구가 채워지기 전에는 바람 위에 평화롭게 잠들지 못하는 것이다.



 12. 죄와 벌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재판관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저희에게 죄와 벌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말한다. 그대들의 영혼이 바람 속을 헤매어 다닐 때면, 홀로 지켜 주는 이도 없는 그대들은 누구에겐가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또한 그대들 자신에게도. 그리하여 이미 지은 그 죄 때문에 그대들은 천국의 문 앞에서 아무도 쳐다봐 주는 이 없이 한동안 문을 두드리고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마치 대양(大洋) 과도 같다. 그대들의 신적자아 (神的自我, Good Self) 는. 그것은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창공과도 같아 날개 있는 것만 안아 올린다. 또한 태양과도 같다. 그대들의 신적자아는, 두더지의 길도 모르며 뱀 구멍도 그것은 찾지 않는다. 허나 그대들의 신적 자아는 그대들의 존재 내부에 홀로 살고 있진 않은 것. 그대들 속의 많은 부분은 아직 인간에 불과할 뿐이며, 또한 많은 부분은 아직 인간에 이르지도 못하고 있음을. 다만 스스로 깨어남을 찾아, 잠든 채 안개 속을 헤매는 볼품없는 난장이들만이 있을 뿐. 그러나 이제 나는 그대들 속의 바로 그 인간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죄와 벌에 대해 아는 이는 안개 속의 난쟁이도, 그대들의 '신적 자아' 도 아닌, 다만 그이기 때문에. 때로 나는 그대들이 죄인에 대하여, 마치 그는 그대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전혀 이방인이며, 그대들의 세계에 뛰어든 침입자인 듯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내 말하지만, 아무리 거룩한 이와 성스러운 이일지라도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있는 지고(至高)의 것 이상을 오를 수 없는 것. 그리하여 또한 아무리 악한 자일지라도 그대들 각자 속의 제일 밑 그 이하로 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의 잎도 온 나무의 말없는 이해 없이는 갈색으로 변하지 않듯이, 죄를 범하는 자도 그대들 모두의 숨은 뜻 없이는 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신적 자아'를 향하여 마치 하나의 행렬처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대들은 길이며 또한 나그네. 그리하여 그대들 중의 누군가가 넘어진다면, 그는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하여 넘어지는 것, 장애물에 대한 경고로서. 그렇다. 그는 또 앞서가는 이들을 위하여 넘어지는 셈도 된다. 비록 빠르고 확실한 걸음으로 갈지라도 아직 장애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는 못한 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 역시 그러하리라, 비록 이 말이 그대들 가슴에 무겁게 드리울지라도 -- 살해당한 자, 자기의 살해당함에 책임 없지 않으며 도둑맞은 자, 자기의 도둑맞음에 잘못 없지 않음을, 정의로운 자, 사악한 자의 행위에 전혀 결백할 수 없으며 정직한 자, 중죄인(重罪人)의 행위 앞에서 완전 결백할 수 없음을. 그렇다, 죄인이란 때로 피해자요 희생물이다. 그리하여 아직도 때로 죄인이란 죄 없는 자의 짐을 지고 가는 자인 것을. 그대들은 결코 부정한 자와 정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선한 자를 가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태양의 얼굴 앞에 함께 서 있으므로, 마치 검은 실과 흰 실이 함께 짜여지듯이. 그래 만약 검은 실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직공은 헝겊 전부를 들여다보아야 할 뿐 아니라 베틀 역시 검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대들 중의 누군가 부정한 아내를 재판하고자 한다면, 그로 하여금 그녀 남편의 마음도 저울에 달게 한고 영혼도 자로 재어 보게 하라. 또 죄인을 채찍질하려 하는 자로 하여금 죄지은 자의 영혼도 살펴보게 하라. 그대들 중의 누군가 정의의 이름으로 벌하려 한다면, 그리하여 악의 나무에 도끼를 대려 한다면, 그로 하여금 그 나무의 뿌리를 살펴보게 하라. 그러면 그는 진실로 선과 악의 뿌리, 열매 맺는 것과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의 뿌리란 대지의 말없는 가슴속에 함께 뒤엉켜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러면 그대들, 정의롭게 재판하려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정직하나 정신적으로는 도둑인 자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또 육체적으로는 살인자이나 정신적으로는 그 자신이 살해당한 자에게 그대들은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 또 그대들은 어떻게 고발할 것인가, 겉으로는 사기꾼이며 박해자이지만, 그 역시 박해받고 폭행당한 자를? 그리고 뉘우침이 이미 저지른 죄보다 더 큰 자들을 그대들은 어떻게 벌하려 하는가? 정의란, 그대들이 기꺼이 봉사하는 그 법에 의해 집행되는 정의란 바로 뉘우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물론 그대들은 죄 없는 이에게 뉘우침을 지울 수도 없고, 또한 죄인의 가슴으로부터 뉘우침을 빼앗을 수도 없으리라. 요청하지 않아도 뉘우침이란 한밤중에 찾아와 사람들을 깨우고 스스로를 응시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그대들 정의를 깨닫고자 하는 자여, 이 모든 행위를 충만한 빛 속에서 살펴보지 않는 한 어떻게 깨달으려는가? 오직 그 때에만 깨닫게 되리라. 의로운 자와 의롭지 못한 자란 '소아(小我)'의 밤과 '신적 자아'의 낮 사이 희미한 빛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에 불과함을. 또한 사원의 주석(柱石)이 결코 바닥에 놓인 가장 낮은 돌보다 높지 않은 것을.



 13. 법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법률가가 말하기를, 그러면 법에 대하여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승이여!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법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물론 법을 깨뜨림을 더욱 좋아하면서. 마치 바닷가에서 끊임없이 모래탑을 쌓았다가는 웃으며 그것을 부숴 버리며 노는 아이들처럼. 그러나 그대들이 모래탑을 쌓는 동안 바다는 보다 많은 모래를 기슭으로 밀어 보내고, 그리고 그대들이 모래탑을 부술 때면 바다는 그대들과 함께 웃음짓는다. 실로 바다는 언제나 천진한 이와 함께 웃는다.
 허나 삶이 바다와 같지 않은 자에게, 인간이 만든 법도 모래탑과 같지 않은 자에겐 어떠한가. 삶이란 다만 바위이며, 법이란 그 바위에 그들 자신의 모습을 새기는 끌일 뿐인 자에겐? 춤추는 자들을 질투라는 절름발이에겐? 자기의 멍에를 사랑하면서 또 길 잃은 큰 사슴, 작은 사슴, 또는 떠도는 것들을 생각하는 황소에겐? 제 허물을 벗을 수 없다고, 다른 모든 뱀들을 벌거숭이이며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소리치는 늙은 뱀에겐? 또한 결혼 잔치에 일찌감치 나타나서 잔뜩 먹어 대곤 지쳐 돌아가면서, 모든 잔치란 법에 걸리는 것이며 잔치 손님들이란 법률 위반자라고 떠드는 자에겐?
 내 이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 것인지, 비록 햇빛 속에 서 있지만 태양에 등을 대고 있는 것이라는 것 외엔? 그들은 다만 자기의 그림자만을 볼 뿐, 그리고 그들의 법인 것을. 그러면 그들에게 태양이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늘을 던지는 것 외에? 그러므로 법을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이 될 것인가, 엎드려 대지 위에 그들 그림자를 쫓아가는 것 외에? 허나 그대들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자들이여, 대지에 그려진 어떤 영상이 그대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대들, 바람 따라 여행하는 자들이여, 어떤 풍향계가 그대들의 길을 인도해 줄 것인가? 그대들, 만일 인간이 만든 감옥의 문이 아니라 자기의 멍에를 부수는 것이라면 어떤 인간의 법이 그대들을 묶을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만든 쇠사슬에 결코 비틀거리지 않고 그대들 춤춘다면, 어떤 법이 그대들을 두렵게 할 것인가? 그대들, 그대들의 옷을 찢는다 해도 그것을 인간의 길에 버리지 않는다면 그대들을 판결할 자 누구이겠는가?
 올펄레즈 시민들이여, 그대들은 북 소리를 약하게 할 수도 있고, 수금(竪琴)의 줄을 늘어지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 있어 과연 저 종달새에게 노래를 하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을 것인가?



 14. 자유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웅변가가 말하기를 저희에게 자유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성문 곁에서, 또 그대들의 집 난로가에서 나는 그대들이 엎드려 저만의 자유를 비는 것을 보았다. 마치 압제자 앞에 스스로 머리 조아려 설사 자기를 죽일지라도 찬양해 마지않는 노예들처럼. 그렇다. 사원의 숲에서 성채 그늘 아래서 나는 그대들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자가 자유를 마치 멍에와 수갑처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내 마음은 내 속에서 피 흘렸다. 왜냐하면 그대들 자유의 욕망이 그대들에게 재갈을 물릴 때만이, 또 자유가 최후의 목적이며 기쁨이라고 떠들기를 그칠 때만이 그대들이 실로 자유로울 것이므로.
 그대들은 실로 자유로우리라. 욕망도 슬픔도 없는 밤이 아니라, 근심으로 가득 찬 낮에, 또한 오히려 이 모두가 그대들의 삶을 묶고, 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대들 벗어 버리고 해방되어 이들 위로 일어설 때만이. 그리하여 그대들 깨달음이 새벽에 지난 한낮의 시간을 묶었던 사슬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대들 낮과 밤 저편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실로 그대들 자유라 부르는 것은 이 사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슬인 것을, 그 고리가 비록 햇빛에 반짝거리고 눈을 어지럽게 할지라도. 그리하여 그대들 자유로워지고자 내버리려 하는 것, 그것은 자아의 파편 외에 무엇인가. 그대들 내버리려는 법이 부정한 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대들의 이마에 그대들의 손으로 씌어진 것. 그대들 아무리 법전(法典)을 불사른다 해도, 심판관의 이마를 씻고 바닷물을 퍼붓는다 해도 그것을 지울 수는 없으리라. 그리하여 그대들 만일 쫓아내고자 하는 자가 폭군이라 한다면, 우선 보라. 그대들 내부에 서 있는 그의 옥좌가 무너져 있는가를. 왜냐하면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자유 속에 일 푼의 포학함도 깃들여 있지 않고 긍지 속에 일 푼의 부끄러움도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자유인과 긍지인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그대들 벗어 던지려 하는 것이 근심이라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대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이 없애려 하는 것이 공포라면, 공포의 자리란 두려운 자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 가슴속에 있는 것. 일체는 실로 그대들 존재 내부에서 반쯤 뒤엉킨 채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열망하는 것과 두려운 것, 불쾌한 것과 그리운 것, 추구하는 것과 달아나고 싶은 것들이. 이들은 그대들 안에서 마치 한 쌍의 빛과 그림자처럼 달라 붙은 채 움직인다. 그리하여 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면, 남은 빛은 서성거리며 또 다른 빛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대들의 자유도 자기의 족쇄를 잃어 버릴 때 비로소 보다 큰 자유의 족쇄가 되는 것임을.



 15. 이성과 열정에 대하여 




 그러자 여사제가 다시 말했다. 저희에게 이성과 열정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 영혼이란 때로 이성과 판단력이 열정과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는 싸움터이다. 내 만일 모든 불화의 적대(敵對)를 하나로 만들고 노래로 변하게 하련만. 그러나 그대들 스스로 조정자가 되지 않는 한, 아니 스스로 내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자가 되지 않는 한, 내 어떻게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대들의 이성 또 열정이란 바다 위를 달리는 그대들 영혼의 키이며 돛. 돛 또는 키가 부서진다면, 그대들은 내팽개쳐진 채 표류하거나, 혹은 바다 가운데 멈추어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왜냐하면 이성이란 홀로 지배하기엔 힘이 모자라며, 버림받은 열정이란 다만 스스로를 부숴 불태워 버리는 불꽃이 될 뿐이기에. 그러므로 영혼으로 하여금 이성을 높이기에까지 이르게 하라, 그리고 노래 부르게 하라. 그리하여 이성으로써 열정을 인도하게 하라. 그대들의 열정이 매일 스스로의 부활을 통해 살아가도록, 마치 자기의 재 속에서 또다시 일어나는 불사조처럼. 바라노니, 그대들은 판단력과 욕망을 집에 초대한 소중한 두 손님처럼 생각하기를. 실로 그대들은 어느 한 손님만을 다른 손님보다 높이 대우할 수는 없으리라. 왜냐하면 어느 한편에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결국 두 사람 모두의 사랑과 신뢰를 잃을 것이기 때문에.
 그대들, 언덕 사이 흰 백양(白楊) 나무들의 시원한 그늘에 앉아 먼 들과 숲의 평화와 청명(淸明)을 맛보고 있을 때면, 가슴으로 하여금 고요히 말하게 하라. '신은 이성을 믿으신다' 라고. 그리하여 폭풍이 불고, 거대한 바람이 숲을 흔들고 천둥 번개가 하늘의 장엄한 소리칠 때면 가슴으로 하여금 두려움에 차서 말하게 하라, '신은 열정으로 움직이신다' 라고. 그러면 신의 세계 속의 한 숨결이며, 신의 숲속의 한 잎인 그대들 또한 이성을 믿고, 열정으로 움직이게 되리라.



 16. 고통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여인이 말하기를, 저희에게 고통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고통이란 그대들 오성(悟性)의 껍질이 깨어지는 것. 과일의 씨도 햇빛을 쬐려면 부서져야 하듯이, 그러므로 그대들, 고통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그대들 만일 삶의 매일의 기적들을 가슴속에 경이로서 간직할 수 있다면, 고통도 기쁨 못지 않게 경이롭게 될 것을. 그리고 들판 위로 지나가는 계절에 언제나 순응했듯이 그대들 가슴의 계절도 즐거이 받아들이게 될 것을. 그러면 그대들, 슬픔의 겨울 사이로 고요히 바라보게 되리라. 그대들 고통의 대부분은 스스로 택한 것. 그대들 내부의 의사가 병든 자아를 치료하는 쓰디쓴 한 잔의 약. 그러므로 의사를 믿으라, 그리고 말없이 침착하게 그가 내주는 약을 마시라. 왜냐하면 그의 손은 아무리 무겁고 딱딱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이의 보다 부드러운 손길에 인도되고 있으므로, 그가 내주는 잔 또한 아무리 그대들의 입술을 불타게 할지라도 도공(陶工)이 자기의 신성한 눈물로 적신 흙으로 빚은 것이므로.



 17. 자기 인식에 대하여 


 그러자 한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자기 인식(自己認識)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해 말한다. 그대들의 가슴은 말 없이도 낮과 밤의 비밀을 알고 있다. 허나 그대들의 귀는 가슴의 인식을 소리로써 듣고자 열망한다. 그대들은 그대들 꿈의 벗은 몸뚱이를 손가락으로 만지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 그렇게 함은 하긴 당연한 일. 그대들 영혼의 보이지 않는 수원(水源)은 반드시 솟아나 살랑대며 바다로 흘러가야만 하는 것, 그러면 그대들 속 무한히 깊은 곳에 있는 보물도 그대들 눈앞에 드러나게 될 것을. 그러나 그대들, 미지의 보물의 무게를 결코 저울로 달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들의 인식의 깊이를 자, 또는 측연선(測鉛線) 따위로 조사하려 하지도 말라. 왜냐하면 자아야말로 무한, 무량(無量)의 바다이기 때문에.
 결코 말하지 말라, '나 진리를 찾았지' 라고. 그보다 차라리 '내 약간의 어떤 진리를 찾았지' 라고 말하라. 결코 말하지 말라, '나 영혼의 길을 찾았지' 라고. 차라리 '내 나의 길 위를 걸어가는 한 영혼을 만났지' 라고 말하라. 왜냐하면 영혼이란 모든 길을 거니는 것. 영혼이란 하나의 길을 딸 걷지도, 갈대처럼 자라나지도 않는 것. 영혼이란 무수한 꽃잎이 달린 연꽃처럼 스스로 열리는 것.



 18. 가르침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교사가 말했다. 저희에게 가르침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어떤 자도 그대들 깨달음의 새벽에 이미 반쯤 잠들어 누워 있는 것 외엔 어떤 것도 가르쳐 줄 수 없다. 제자들에 둘러싸여 사원의 그늘 아래를 거니는 선생이란 그대들에게 신념과 사랑을 줄 순 있으나 지혜를 줄 순 없는 법. 그가 진실로 현명하다면, 그는 그대들에게 저의 지혜의 집으로 들어올 것을 명령하지는 않으리라. 그보다 그대들로 하여금 그대들 자신의 마음의 문으로 인도케 하리라. 천문학자는 그대들에게 우주에 대한 그의 지식을 말해 줄 수 있어도, 그러나 자기의 깨달음을 말해 줄 수는 없다. 음악가는 그대들에게 이 우주 어디에나 있는 리듬을 노래해 줄 수는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 리듬을 포착하는 귀마저, 또 그것을 울려 내는 목소리까지 줄 수는 없다. 또 수학자는 무게와 길이의 세계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그대들을 그리로 인도할 수는 없는 법. 왜? 인간의 상상력이란 타인으로부터 그 날개를 빌릴 수는 없기에. 그리하여 그대들 누구나 홀로 신을 깨달아야 하듯이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와 떨어져 홀로 신을 깨닫고 홀로 대지를 이해해야만 하리라.



 19. 우정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젊은이가 말하기를, 저희에게 우정(友情)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친구란 그대들의 궁핍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이다. 사랑으로 씨를 뿌려 감사로써 수확하는 그대들의 들. 또한 그대들의 식탁이며 아늑한 집이다. 그대들은 굶주린 채 그에게로 와서 평화를 찾는다.
 그대들의 친구가 속마음을 얘기할 때 그대들은 자기만의 생각으로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렇지' 라는 말을 억누르지 말라. 그가 말없을 때라도 그대들의 가슴은 그의 가슴의 소리를 듣도록 하라. 말없이, 우정 속에서는 모든 생각, 모든 욕망, 모든 기대가 갈채 받지 않아도 기쁨으로 태어나고 나누어지는 것. 그대들 친구와 헤어질 때에도 슬퍼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 친구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점, 그것은 그가 없을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날 것이기에. 마치 산을 오르는 이에게 산은 벌판에서 더욱 선명히 보이듯이. 그리고 우정에 결코 영혼의 심화(深化) 외에 어떤 목적도 두지 말라. 왜냐하면 자기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 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에. 다만 던져진 그물에 불과할 뿐, 오직 무익한 것만이 걸려드는 그물.
 그러므로 그대들 친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그가 그대들의 마음의 조수의 썰물 때를 안다면 밀물 때도 알게 하라. 다만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찾는 친구, 그런 친구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언제나 시간을 살리기 위하여 친구를 찾아라. 그대들의 요구를 만족시킴은 곧 그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 결코 그대들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하여 부드러운 우정 속에 웃음이 깃들이게 하고 기쁨을 나누라. 하찮은 이슬 방울 속에서도 마음은 아침을 찾아 내고, 다시 불타오르기에.



 20. 대화에 대하여 


 그러자 이어서 한 학자가 말했다. 대화(對話)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평화로이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말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대들 가슴이 고독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떠들기 시작하며, 그럴 때 소리란 기분전환이 되고 소일거리나 되는 것. 그리하여 그대들이 떠들고 있을 땐 생각이란 거의 사라져 버린다. 왜냐하면 생각이란 우주를 나는 새, 말의 우리 속에선 아마도 날개를 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날 수는 없기에.
 그대들 가운데는 다만 홀로 있게 될까 두려워 얘기꾼을 찾는 이들이 있다. 외로운 침묵은 벌거벗은 자신을 눈앞에 드러나게 하며, 그리하여 달아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또한 그대들 중에는 스스로도 이해치 못하는 진리를 인식도 예견(豫見)도 없이 드러내 떠드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또한 저희 속에 진리를 지녔으면서 말로 떠들지 않는 이들도 있으니, 영혼은 이 같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움직거리며 말없이 머무는 것.
 길가에서 시장에서 그대들 친구를 만나거든, 그대 안의 영혼으로 하여금 입술을 움직이게 하고, 혓바닥을 이끌게 하라. 그대 목소리 안의 목소리로써 그이 귓속의 귀에게 말하게 하라. 왜냐하면, 그의 영혼은 그대 가슴의 진실을 마치 잊을 수 없는 포도주처럼 간직할 것이기에. 비록 그 빛깔 잊혀지고, 그 잔 또한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때에도.



 21. 시간에 대하여 


 그러자 이어 천문학자가 말했다. 스승이여, 시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잴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을 재고자 한다. 그대들의 행위를 시간과 계절에 맞추고자 하며, 심지어는 그대들 영혼의 길마저 인도하고자 한다. 시간을 강물로 만들어 그 뚝 위에 그대들은 앉아 그 흘러감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 속의 영원은 시간의 영원을 깨닫고 있다. 그리하여 어제란 다만 오늘의 추억이며, 내일이란 오늘의 꿈임을 안다. 그리하여 그대들 속에서 노래하고 명상하는 것은 아직도 허공에 별이 뿌려지던 최초의 순간, 그 속에 살고 있음을. 그대들 가운데 누가 무한한 그 사랑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가? 또 누가 아직 그 사랑을, 비록 무한함에도 존재의 핵심에 둘러싸여 사랑의 생각에서 생각으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한 사랑의 행위로부터 다른 사랑이 행위로 움직이지도 않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사랑은 그렇듯 시간이 무한하며,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것.
 허나 그대들의 생각으로 계절에 맞추어 시간을 재야겠다면, 각 계절로 하여금 모든 다른 계절들을 둘러싸게 하라. 그리하여 오늘로 하여금 추억으로써 과거를, 동경으로써 미래를 껴안게 하라.



 22. 선과 악에 대하여 



 그러자 이어 그 도시의 원로(元老) 한 사람이 나와 말했다. 저희에게 선(善)과 악(惡)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하여 그는 대답했다. 내 그대 안의 선에 대하여 말할 순 있으나 악에 대하여선 말할 수 없구나. 악이란 무엇인가, 다만 선이 스스로의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것 외에? 실로 선이 굶주릴 때면 캄캄한 동굴 속에서라도 먹이를 찾고, 목마를 때면 죽은 강물이라도 마시는 법.
 그대들, 자아와 한 몸이 되어 있을 때는 선하다. 허나 그대들 비록 그대들의 자아와 한 몸이 되어 있지 않을 때라 하여도 악한 것은 아니다. 왜? 내분이 생긴 집이라고 해서 도둑의 동굴은 아닌 것이기에, 그것은 다만 내분이 일어난 집일 뿐. 그리하여 키 없는 배는 위험스런 섬 사이를 목적도 없이 떠돌지라도 아주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베풀고자 애쓸 때 그대들 선하다. 허나 그대들, 자기 이익만을 찾을 때라 하여도 악한 것은 아니다. 왜? 그대들 자기 이익만을 얻으려 알 때에도, 그대들은 다만 대지에 엉겨 그 가슴을 빠는 뿌리에 불과하므로. 실로 열매가 뿌리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으리라, '나와 같으라, 무르익고 가득 넘쳐 언제나 그대의 풍요를 주라'고. 왜? 뿌리는 언제나 받아야 하듯이, 열매는 언제나 주어야 하므로.
 그대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말할 때 선하다. 허나 그대들 혓바닥이 목적 없이 비틀거리며 잠들고 있을 때라 하여도 악한 것은 아니다. 왜? 더듬는 말일지라도 그대들 허약한 혓바닥을 튼튼하게 할지 모르는 것이므로.
 그대들 목적지를 향하여 확고한 걸음으로 걸러갈 때 진정 선하다. 허나 저쪽으로 절름거리며 갈 때라도 악한 것은 아니다. 절름거린다고 꼭 퇴행(退行)하지는 않는 법. 허나 강하고 재빠른 이들이여, 보라, 그대들은 절름발이 앞에서 결코 절름거리진 않는 것을. 그것이 친절한 행위라고 생각하면서. 그대들은 무수히 선하고, 비록 선하지 않을 때라도 악한 것은 아니다. 다만 빈둥거리며 게으른 것일 뿐. 가엾이 여기라, 숫사슴이라도 거북에게 빨리 달리는 법을 가르칠 수는 없음을.
 대아(大我)에의 갈망, 그것이 바로 선, 그 갈망은 그대들 모두의 가슴속에 있는 것.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언덕의 비밀과 숲의 노래를 이끌어 힘차게 바다로 달려가는 급류이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 그것은 평평한 강물로서, 바다에 이르기 전 강물 굽이굽이에서 스스로를 잃고 배회한다. 허나 열렬히 갈망하는 이로 하여금 갈망하는 것이 없는 이에게, '왜 그대는 그렇게 느리고 멈칫거리기만 하는가?' 하고 묻게 하지 말라. 진실로 선한 이란 벌거벗은 이를 보고, '너의 옷은 어디 있는가?' 라고 묻지 않는 법, 또 집 없는 이에게 '너의 집은 어떤가?' 라고도 묻지 않는 법이기에.



 23. 기도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여사제가 말하기를, 기도(祈禱)에 대해 말씀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해 말하기를, 그대들은 괴로운 때에만, 또 필요한 때에만 기도하고 있다. 바라건대 그대들은 기쁨이 충만할 때에도, 나날이 풍성할 때에도 기도하기를.
 왜냐하면, 기도란 진정 무엇인가. 생명의 하늘 속에 그대들 스스로를 활짝 펴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안락을 위해 허공에 그대들의 어둠을 쏟아 버림은 또한 기쁨을 위해 그대들 가슴의 새벽빛을 쏟아 내는 것. 그리하여 영혼이 그대들을 기도에로 부를 때 그대들 울지 않을 수 없다면 기도는 다시, 비록 울고 있을지라도 또다시 그대들을 격려하리라. 기어이 웃음에 이를 때까지. 기도할 때면 그대들은, 바로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 무수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허공에 일어서야 한다. 기도 속에서가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사원으로의 그대들의 방문을, 황홀과 달콤한 영교(靈交)를 위함 외엔 아무 뜻도 없이 하라. 왜냐하면 그대들 비록 구하는 것 외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들어간다 해도 그대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기에. 또한 다만 겸양하고자 들어간다 해도 그대들 결코 구원될 수 없을 것이기에. 또는 그대들 심지어 타인의 행복을 빌기 위해 들어간다 해도 그대들의 기도는 들어지지 않으리라. 보이지 않는 사원으로 들어감, 그것으로 충분할 뿐. 내 그대들에게 가르칠 순 없다, 어떤 말로써 기도해야 할지를. 신은 결코 그대들의 말을 듣지 않으시는 법, 다만 그 분 스스로 그대들의 입술을 시켜 말씀하실 뿐. 그러므로 내 그대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무수한 바다와 숲과 산의 기도를. 다만 그대들이, 산과 숲과 바다에서 태어난 그대들만이 가슴속에서 그들의 기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을. 그리하여 만약 그대들 한밤중의 고요에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대들은 침묵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리라. '저희의 신이여, 날개 달린 저희의 자아여, 명하는 것은 저희 속의 당신의 뜻이 명하는 것이옵니다. 욕망함은 저희 속의 당신의 욕망이옵니다. 당신의 것인 저희의 밤을 역시 당신의 것인 낮으로 변하게 하는 것, 그것도 저희 속의 당신의 강한 충동이옵니다. 저희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청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속에 욕구가 생기기 전에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시기에. 저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 스스로를 더욱 주심으로써 당신은 저희에게 일체(一切)를 주시옵니다.'



 24. 쾌락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일년에 한 번씩 그 도시를 방문하는 은자(隱者)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저희에게 쾌락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하여 그는 대답했다.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 허나 그것이 바로 자유는 아닌 것. 쾌락이란 그대들 욕망의 개화(開花), 허나 그것이 열매는 아니다. 쾌락은 정상(頂上)을 향하여 소리치는 심연(深淵), 허나 그것이 심연은 아니며 정상도 아니다. 그것은 날개 달린 새가 우리에 갇혀 있는 것, 허나 사방은 둘러싸여져 있지 않다. 그렇다, 실로,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이다. 그러므로 내 기꺼이 그들로 하여금 가슴 가득히 그것을 노래하게 하리라. 하지만 노래하느라 그대들 기운을 잃게 하지는 않으리.
 그대들 젊은이 중 어떤 이는 마치 쾌락만이 전부인 것처럼 얻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심판 받고 비난을 받는다. 허나 나는 결코 그들을 심판하지도 견책하지도 않으리라. 나는 그들에게 쾌락을 구하게 하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쾌락을 찾게 될 땐, 결코 쾌락 그것만을 찾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쾌락의 자매는 일곱, 그 중 가장 어린 형제도 쾌락보다 아름다움을. 그대들은 듣지 못했는가, 뿌리를 캐다 땅 속에서 보물을 찾은 이의 얘기를? 또한 그대들 노인들 중의 어떤 이는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처럼 후회로써 쾌락을 추억한다. 하지만 후회란 마음의 벌이 아니라 다만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 여름날이 수확과도 같이 그들은 감사로써 쾌락을 추억해야 하리라. 허나 만일 후회가 그들을 위로한다면 그들로 하여금 위로 받게 하라.
 또한 그대들 중엔 쾌락을 찾기에 젊지 않으나 또 회상할 만큼 늙지는 않은 이들도 있다. 그들은 탐구하는 것이, 회상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일체의 쾌락을 피한다. 혹 영혼을 돌보지 않게 되거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하지만 이 도피 속에도 쾌락은 있는 것. 그리하여, 비록 떨리는 손으로 뿌리를 캘지라도 역시 보물은 찾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게 말해 다오, 영혼을 어기려 하는 자 누구인가. 나이팅게일이 밤의 정적을 거역하는가, 혹은 개똥벌레가 감히 별을? 또 그대들의 불꽃, 혹은 그대들의 연기가 바람을 괴롭힐 것인가? 생각해 보라, 그대들 영혼이 막대기 따위로 휘저을 수 있는 고요한 연못인가?
 때로 그대들은 스스로 쾌락을 거부하면서도 그대들 존재 내부의 깊은 곳에 욕망을 감춰 둔다. 누가 아는가, 오늘은 없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내일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대들의 육체조차 자신이 물려받은 바와 당연한 요구를 알고 있으니, 결코 속지는 않으리라. 그대들의 육체는 그대들 영혼의 하프. 그로부터 달콤한 음악을 울리게 하는 것, 또는 혼란한 음악을 울리게 하는 것은 그대들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이제 그대들은 가슴속으로 이렇게 묻는구나. '어떻게 저희가 쾌락 속에서 어느 것이 선이며, 어느 것이 선이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대들의 숲, 그대들의 정원으로 가 보라, 그러면 거기 그대들은 꽃으로부터 꿀을 모으는 벌의 쾌락을 알게 될 것이다. 허나 벌에게 꿀을 바치는 것, 그것은 또한 꽃의 쾌락임도 알게 될 것이다. 왜? 벌에게 꽃은 생명의 샘, 또한 꽃에게 벌은 사랑의 사자(使者)이므로. 하여 벌과 꽃 그들에겐 쾌락의 줌과 받음이, 필요하며 또 황홀한 기쁨인 것을. 올펄레즈의 사람들이여, 부디 꽃과 벌처럼 즐거웁기를.



 25. 미에 대하여 


 그러자 한 시인이 말했다. 저희에게 미(美)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어디서 미를 찾는가, 또 어떻게 미를 찾아낼 것인가. 미 그 스스로 길이 되고 안내자가 되지 않는다면? 또한 어떻게 미에 대해 말할 것인가. 미 그것이 그대들의 말을 엮지 않는다면?
 괴로운 이와 상처받은 이는 말한다. '미란 친절하고 자비로운 것, 마치 자기만이 지닌 큰 축복이 약간은 부끄러운 젊은 어머니처럼 미는 우리들 사이를 거닐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열정적인 이는 말한다. '아니, 미란 힘차고 무서운 것, 마치 폭풍우처럼 미는 우리 발 밑의 땅을 흔들고 머리 위의 하늘을 흔든다.'
 지치고 피곤한 이는 말한다. '미란 부드러운 속삭임, 미는 우리들의 영혼 속에서만 말하지. 마치 그림자가 두려워 떠는 가느다란 빛처럼 미의 목소리는 우리들의 침묵에 따르며.' 하지만 불안한 이는 말한다. '우린 산 속에서 미의 절규를 들었네. 그리고 그와 함께 말굽소리, 날개 치는 소리, 또한 사자의 포효도.'
 밤이 오면 도시의 순라꾼은 말한다. '미는 새벽빛과 더불어 동녘에서 떠오르리라.' 그리고 대낮이 되면 노동자와 나그네들은 말한다. '우린 아름다움이 황혼의 창으로부터 대지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걸 보았네.'
 겨울이면 눈 속에 갇힌 이는 말한다. '봄이 오면 미는 언덕위로 뛰어오리라.' 또 여름볕 아래서 곡식단을 베는 이는 말한다. '우린 미가 낙엽과 함께 춤추는 걸 보았지. 그 머리카락 사이로 눈발 휘날리는 것도.' 이 모두는 그대들이 미에 대해 말하는 것, 하지만 그대들, 실은 미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다만 이루지 못한 욕구에 대해 말한 것일 뿐. 그런데 미는 욕구가 아니라 다만 황홀한 기쁨. 그것은 갈증에 타는 입술도 아니고 구걸하기 위하여 내민 빈 손도 아니다. 오히려 불타는 가슴이며 매혹된 영혼이다. 그것은 그대들이 보았던 영상도 아니고, 그대들이 들었던 노래도 아니다. 오히려 두 눈을 감을지라도 보이는 영상이며 두 귀를 닫을 지라도 들리는 노래이다. 그것은 주름짐 나무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樹液)도 아니며, 날카로운 발톱에 매달린 날개도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꽃 피어 있는 정원이며 언제나 날아다니는 천사의 무리.
 올펄레즈의 시민들이여, 미란 거룩한 제 얼굴을 덮고 있는 베일을 걷어버린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대들은 삶이면서 또한 베일. 미는 홀로 거울 속을 응시하고 있는 영원이다. 하지만 그대들은 영원이면서 또한 거울인 것을.



 26. 종교에 대하여 


 그러자 한 늙은 사제가 말하기를, 저희에게 종교에 대해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말했다. 내 오늘 외에 다른 무엇에 대해 말했던가? 일체의 행위, 일체의 명상이 종교가 아니면 무엇인가? 하지만 두 손이 돌을 쪼고 베틀을 손질하는 동안에도 영혼 속에서 언제나 샘솟는 경이와 경탄이 없다면 그것은 행위도, 명상도 아닌 것. 누가 과연 행위와 신앙을, 직업과 신념을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누가 자기의 시간을 자기 앞에 펼쳐 놓으며, '이것은 신을 위해,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해, 또 이것은 내 영혼을 위해, 이것은 내 육체를 위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그대들의 시간이란 자아에서 자아로 허공을 퍼덕이며 날아가는 날개이다. 다만 최고급의 옷으로써만 도덕을 지니려는 이, 그런 이는 차라리 벌거벗는 게 나을 것을. 바람과 햇빛도 그의 살(肉)엔 어떤 구멍도 뚫을 수 없으리라. 자기의 행위를 도덕에 의해서만 정의 내리려는 이, 그런 이는 노래하는 자기의 새를 새장 속에 가두는 것. 지극히 자유로운 노래란 막대기나 철사줄 사이로 나오지 않는다. 마치 열렸다가 곧 닫히는 창처럼 예배 드리는 이, 그런 이는 아직 제 영혼의 집엔 가 보지 못한 이다. 새벽에서 새벽으로 창이 열리는 영혼의 집에.
 그대들 나날의 삶이야말로 그대들의 사원이며 종교인 것. 그 곳으로 갈 때마다 그대들 그대들의 전부를 가지고 가라. 쟁기와 풀무, 망치와 피리. 필요해서건, 다만 기쁨을 위해서건 그대들이 만들었던 모든 물건들도 가지고 가라. 왜냐하면 그대들 환상 속에서도 그대들이 이룬 이상으로 오를 수도 없고, 그대들의 실패 이하로 떨어질 수도 없기에. 또 함께 그대들 찬미 속에서도 그들의 희망보다 높이 날 수 없으며, 그들의 절망 이하로 스스로를 낮출 수도 없을 것이기에. 그대들 만약 신을 알고자 한다면, 그러므로 수수께끼의 해답자가 되려 하지 말라.
 차라리 그대들의 주위를 둘러 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그분이 그대들의 아이들과 놀고 계심을 보리라. 또 허공을 바라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그분이 구름 속을 거니시며 번개로써 팔을 뻗치시고 비로써 내리고 계심을 보게 되리라. 그대들은 또 그분이 꽃 속에서 미소지으시다가 이윽고 일어나 나무들 사이로 손을 흔드심도 보게 되리라.



 27. 죽음에 대하여 


 그러자 알미트라가 소리쳤다. 저희는 이제 죽음에 대하여 묻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구나. 허나 그대들 삶의 중심에서 죽음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낮에는 눈멀어 밤만이 보이는 올빼미는 결코 빛의 신비를 벗길 수 없는 것을. 그대들 진실로 죽음의 혼(魂)을 보고자 한다면 그대들의 가슴을 넓게 삶의 몸을 향하여 열라. 삶과 죽음은 한몸, 강과 바다가 한몸이듯이. 희망과 욕망의 저 깊은 곳에서 그대들은 말없이 미지의 나라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눈(雪) 속에서도 꿈꾸는 씨앗들처럼 그대들의 가슴은 봄을 꿈꾼다. 꿈을 믿으라, 꿈속에서야말로 영원에의 문은 숨겨져 있으니. 그대들의 죽음에의 공포란, 왕(王)의 손길이 내려져 영광스럽게도 왕 앞에 서게 된 양치기의 전율에 불과한 것. 떨리면서도 양치기는 실은 기쁘지 않겠는가, 왕의 주목을 받게 됨이? 그러나 또, 그러므로 더욱 자기가 떠는 것에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죽는다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다만 바람 속에 벌거숭이로 서서 태양 속으로 녹아 가는 것이 아니라면? 숨이 그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다만 한 숨결이 끊이지 않는 자기의 조수(潮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높이 오르고 퍼져서, 어떤 번민도 없는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오직 침묵의 강물을 마실 때에야 진실로 노래하게 되리라. 또 그대들은 산 꼭대기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오르기 시작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대지가 그대들의 사지(四肢)를 요구하게 될 때, 그때에야 그대들은 진실로 춤추게 될 것을.

 28. 고별에 대하여
 드디어 이제 때는 저녁이 되었다. 예언녀 알미트라는 말했다. 축복 받으소서. 오늘과 이곳과 이제까지 말씀하신 당신의 영혼이여. 이에 그는 대답했다. 내가 말한 자에 불과했던가? 나는 또한 듣는 자가 아니었던가?
 이윽고 그가 사원의 계단을 내려가자 사람들은 모두 그를 뒤따랐다. 그는 배에 이르러 갑판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그는 사람들을 향해 다시 소리 높이 외쳤다. 올펄레즈의 사람들이여, 바람은 내게 그대들을 떠나라고 명하는구나. 바람보다 내 서둘지 않을지라도, 이제 나는 가야만 하리. 우리 방랑자들은, 항상 보다 외로운 길을 찾아가는 우리들은, 하루를 끝냈던 그 자리에서 다음 날을 시작하진 않는 것을. 그러므로 어떤 새벽도 황혼이 우리를 이별했던 그곳에서 우리를 찾아내지는 못함을.
 대지가 잠들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들은 길을 간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 나무의 씨앗, 그리하여 우리 무르익고 가슴 그득해지면 우리의 몸은 바람에 맡겨져 이윽고 흩어진다.
 짧기도 하였구나. 내 그대들과 함께 보낸 날들이여, 또한 내 한 말들은 더욱 짧았구나. 하지만 내 목소리 그대들의 귓가에서 사라지고, 내 사랑 그대들이 추억 속에서 지워지면 그때 나는 다시 오리라. 그리하여 보다 풍요한 가슴, 보다 풍요한 입술로 보다 영혼에 순종하면서 나는 말할 것을. 그래, 나는 조수를 따라 돌아오게 되리라. 죽음이 나를 가릴지라도, 보다 거대한 침묵이 나를 껴안을 지라도, 그럴지라도 나는 또다시 그대들의 이해를 구하리라. 그러나 결코 헛되이 구하진 않으리라. 내 말에 조금이라도 진리가 있다면, 진리는 보다 명쾌한 목소리로, 보다 그대들의 생각에 가까운 말로 스스로를 드러내게 될 것을.
 내 바람과 함께 간다, 올펄레즈 사람들이여, 허나 내 허공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만약 오늘 그대들의 욕구와 내 사랑이 충족되지 않았다면, 오늘로써 다음날을 기약하기를. 인간의 욕구는 변하지만, 허나 사랑은, 또 사랑이 충족 시켜 줄 욕망은 변하지 않는 것. 그러므로 인식하라, 보다 거대한 침묵으로부터 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들판에 이슬을 남기며 새벽을 떠도는 안개도 솟아 올라 구름을 모두어 비로 내리는 것을. 나 또한 그 안개와 다름 없었으니, 고요한 밤 나는 그대들의 거리를 거닐었고 내 영혼은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면 그대들 심장의 고동은 내 가슴 속에서 울렸고, 그대들의 숨결은 내 얼굴을 스쳤으며, 그리하여 나는 그대들 모두를 이해하였다. 그래, 나는 그대들의 기쁨, 그대들의 고통을 이해하였다. 그리고 그대들 잠 속의 꿈은 바로 나의 꿈이었다. 또한 나는 때로 마치 산 속의 한 호수처럼 그대들 가운데 있었다. 나는 그대들 속에 산꼭대기의 모습을 비추었고, 비탈진 기슭과 심지어는 그대들을 스치는 생각과 욕망의 무리까지도 비추었다. 그러면 나의 침묵을 향하여 시냇물과도 같이 그대들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밀려 왔고, 또 강물처럼 젊은이들의 갈망이 밀려 왔다. 이윽고 나의 심연(深淵)에 이르렀을 때에도 시냇물과 강물은 결코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웃음소리보다도 달콤하게, 갈망보다도 위대하게 나를 찾아오는 것이 있었음을. 그것은 그대들 속의 무한(無限). 그 속에서 그대들이란 다만 세포이며 힘줄에 불과할 뿐. 광활한 그 인간으로 하여 그대들 광활하고 그를 봄으로써 내 그대들을 보았다. 또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사랑이라고 어떻게 머나먼 광활한, 하늘에도 없는 곳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어떤 환상, 어떤 희망, 어떤 추측 따위가 사랑을 보다 높이 날아 오르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꽃으로 덮인 거대한 떡갈나무와도 같이 광활한 그 사람은 그대들 속에 있다. 그의 힘이 그대들을 대지에 묶고 그의 향기가 그대들을 허공에 오르게 하며, 그리하여 그의 영원 속에서 그대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대들은 들었으리라. 그대들의 존재란 마치 사슬과도 같아 그대들의 고리 중 가장 약한 고리만큼 허약하다는 말을. 그러나 이는 반쯤만 진실일 뿐, 그렇다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고리 중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만큼 튼튼하기도 한 것. 지극히 사소한 행위로 그대들을 재려 함은 덧없는 거품으로 대양(大洋)의 힘을 평가하려는 것과 같다. 그대들의 실패로써 그대들을 심판하려 함은 다만 쉬이 변한다고 계절을 책망하는 것과도 같은 것을.
 그래, 그대들은 대양과도 같다. 비록 크나큰 배가 그대들의 기슭에서 조수를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그럴지라도 그대들이 조수를 재촉할 수는 없다. 또한 그대들은 계절과도 같다. 그리하여 비록 그대들 겨울이 지난 뒤 봄이 오는 것을 부정할지라도, 봄은 그대들 속에 누워 나른히 미소지으며, 성내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생각지 말라, 내 이 말들이 그대들 서로서로, '그는 우리를 찬미했네, 그는 우리의 선(善)만을 보았네' 라고 말해도 좋음을 얘기한 것이라고는. 나는 다만 그대들이 스스로 생각함으로 깨닫고 있는 것을 말로써 한 것일 뿐. 그런데 말의 인식이란 무엇인가, 다만 말없는 인식의 그림자가 아니라면? 그대들의 생각과 나의 말이란 굳게 봉인된 추억으로부터 물결치는 파도, 거기 우리들의 과거가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물론 대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던 태고(太古)의 낮과 혼돈으로 어지럽던 대지의 밤이 기록되어 있음을.
 현명한 이들은 그대들에게 지혜를 주고자 온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지혜를 빼앗고자 왔다. 그런데 보라, 내 지혜보다 더위대한 것을 찾아냈으니. 그것은 그대들 속에서 언제나 스스로 모여 더욱 불타고 있는 영혼. 그러나 그대들은 타오르는 불꽃에는 관심도 없이 시들어 가는 날만 슬퍼하고 있구나. 육체 속에서만 살고자 하는 삶에게 무덤은 두려운 것. 허나 여기 무덤은 없다. 이 산, 이 들은 요람이며 디딤돌. 그대들 조상의 뼈를 묻은 들을 지날 때마다 잘 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거기 그대 자신과, 그대의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춤추는 것을 보게 되리라. 참으로 그대들은 종종 이해하지도 못한 채 즐거워한다. 다른 이들이 그대들에게 왔으나, 그대들의 신앙을 이룬 귀중한 약속을 위해 그대들은 다만 부(富)와 권력과 영광만을 주었다. 내 한 약속은 보다 보잘것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대들은 내게 더욱 관대하였다. 그대들은 내게 보다 깊은 삶에의 목마름을 주었다. 실로 인간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으니 자기의 온 목적을 타오르는 입술로, 온 삶을 샘물로 변하게 하는 것. 결국 이 속에만이 나의 영광, 나의 보상은 들어 있는 것. 나 샘물을 마시러 올 때면 언제나, 샘물 자신도 목마르고 있음을 나는 알게 된다. 그리하여 나 샘물을 마시는 동안 샘물 또한 나를 마심을.
 그대들 중 어떤 이는 내가 거만하고, 그래서 선물 받는 것을 지나치게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긴 내 정말 삯전을 받음에도 자존심이 강하나 선물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그래, 그대들 나를 그대들의 식탁에 앉히고자 할 때, 내 비록 들판에서 딸기를 뜯어 먹었을지라도. 또 그대들 기꺼이 내게 잠자리를 주고자 할 때, 내 비록 사원의 문간에서 잠들었을지라도, 내 언제나 달콤한 양식을 먹고, 꿈꾸며 잠들 수 있었음은 나의 매일을 사랑하는 그대들의 염려 덕분이 아니었던가?
 이로 하여 나는 그대들을 무엇보다 축복한다. 그대들은 무수히 베풀면서도 전혀 자기가 무엇을 베풀었는지 모름을. 실로 거울 속으로 저만을 응시하며 행하는 친절이란 무익한 것으로 변하며, 또 스스로를 찬양하기 위한 선행(善行)이란 재앙의 어머니가 될 뿐.
 그대들 중 어떤 이는 또 내가 너무 멀리 있으며 저만의 고독에 취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대들은 말한다. '그는 숲의 나무들과는 속삭여도 인간들과는 속삭이지 않지, 그는 산꼭대기에 앉아 우리의 도시를 내려다보기만 할 뿐.' 하긴 사실이다, 내가 산을 오르고 먼 곳을 돌아다녔던 것은. 내 어떻게 그렇게 높이, 또 그렇게 멀리서가 아니었더라면 그대들을 볼 수 있었겠는가? 사람이란 멀리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진실로 가까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또 그대들 중 어떤 이는 나에게 소리쳤다. 말없이, 그리고 말했다. '낯선 분이시여, 낯선 분이시여, 닿을 수 없는 곳이나 사랑하는 분이시여. 왜 그대는 독수리들이나 집을 짓는 산꼭대기에서 사시는가? 그대는 어찌하여 불가능을 추구하시는가? 어떤 폭풍을 그대 그물에 낚으려 하시는가, 그대 어떤 덧없는 새를 허공에서 잡으려 하시는가? 오시라, 그리하여 우리들과 하나가 되시라. 내려오라, 그리하여 우리의 빵으로 그대 굶주림을 달래고, 포도주로 그대 목마름을 푸시라.' 고독한 영혼으로 그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 허나 그들의 고독이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알았을 것을, 내다만 그대들의 기쁨과 그대들의 고통의 비밀을 찾고 있었을 뿐임을.
 그러나 사냥꾼이란 또 동시에 사냥 당하는 자. 그리하여 내 활이 당긴 무수한 화살을 기어이 내 가슴을 찾아왔구나. 또 날아가는 자는 동시에 기어가는 자. 그리하여 내 날개가 태양 속에 펼쳐졌을 때 땅 위에 비친 그 그림자는 거북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또 동시에 의심하는 자이니. 때로 나는 내 상처에 스스로 손가락을 찔러 대어야만 했다. 그대들에게서 보다 큰 믿음을, 그대들의 보다 큰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리하여 내 이 믿음과 깨달음으로 말하는 것은. 육체가 그대들을 감금하는 것은 아니며, 집 또는 들판이 그대들을 가두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산 위에 살며 바람 따라 헤매는 그대들. 따뜻함을 찾아 햇빛 속을 기어다니거나, 안전한 곳을 찾아 어둠 속에 구멍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유로운 것, 그것은 대지를 감사고 창공을 흐르는 하나의 영혼.
 이 말들을 비록 모호하다 해도 결코 명백하게 말하려고 애쓰지 말라. 모호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야말로 만물의 끝이 아니라 시초, 그러므로 내 바라건대 그대들 언제나 시초로서 나를 기억해 주기를. 삶, 그리고 또 살아있는 모든 존재란 결정(結晶)으로부터가 아니라 안개 속에서 잉태되어지는 것. 하지만 누가 아는가, 결정이란 것도 다만 사라지는 안개에 불과한 것을?
 그대들 나를 기억할 때면 다음 말도 기억해 주기를. 그대들 속의 가장 연약하고 갈피를 못 잡는 것이 실은 가장 튼튼하고 굳센 것임을. 그대들의 뼈대를 꼿꼿이 세우고 또 튼튼히 하는 건 그대들의 숨결이 아닌가? 그리고 그대들의 도시를 세우고 거기 일체를 이룸은 일찍이 그 누구도 기억치 못하는 꿈이 아닌가? 그대들 만약 그 숨결의 흐름만 볼 수 있다면 모든 것은 보지 않을 것을. 또한 그대들 그 꿈의 속삭임만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어떤 소리도 듣고자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대들은 보지 못한다, 듣지도 못한다. 하긴 그건 당연한 일. 그대들의 두 눈을 가린 베일은 아마도 그것을 짰던 손이 벗겨주리라. 또한 그대들의 두 귀에 가득한 진흙도 처음에 반죽해 넣었던 손가락이 파내 주리라. 그러면 그대들은 보게 되리라. 또한 듣게 되리라. 그럼에도 그대들은 자기의 맹목(盲目)을 한탄하지도 않으며, 귀먹었음을 후회하지도 않으리라. 왜냐하면 그날이 오면 그대들은 만물에 깃들인 비밀의 목적들을 깨닫게 될 것이므로, 그리하여 빛을 축복하듯 그대들은 어둠도 축복하게 되리.
 이런 말들을 하고 나서 그가 주위를 둘러 보자, 그의 배의 키잡이가 키 옆에 서서 이제 가득 부푼 돛과 또 먼 곳을 응시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말했다. 끈기 있고도 끈기 있구나, 선장이여. 바람이 분다, 이제 돛은 잠들지 못한다. 키도 명령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말없이 나의 선장은 내가 침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구나. 또 여기, 보다 위대한 바다의 합창을 들어 온 나의 선원들, 그들은 또한 끈기 있게 내 말을 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더 기다리지 못하리. 나도 물론 준비되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렀고, 그래 위대한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자기의 아들을 가슴에 안는다. 잘 있거라, 그대들, 올펄레즈 사람들이여. 날은 끝났다. 마치 내일을 향해 눈 감는 수련(睡蓮)처럼 날은 우리들 위로 눈 감는다. 우리 여기서 얻은 것, 그것을 우리는 간직하게 되리. 만약 그로써 충분치 못한다면, 그러면 우린 다시 와서 함께 시혜자(施蕙者)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하리라. 잊지 말라, 내 그대들에게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잠깐, 그러면 내 갈망은 먼지와 거품을 모두어 다른 몸을 이루게 되리라. 잠깐, 바람 위에 일순의 휴식이 오면,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안녕, 그대들이여, 또 내 함께 보낸 청춘이여. 우리 꿈길에서 만났던 것도 다만 어젯일. 내 고독할 때 그들은 내게 노래 불러 주었고, 그대들이 갈망하여 난 하늘에 하나의 탑을 세웠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잠은 사라지고 꿈도 끝났다. 새벽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한낮이 닥쳐와 우리의 희미하던 잠은 보다 완전히 깨어 버렸으니, 그러면 우리 다시 함께 이야기하고, 그대들은 내게 보다 그윽한 노래를 불러 주게 될 것을. 그리하여 만약 우리의 두 손이 또 다른 꿈속에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늘에 또 하나의 탑을 세우게 되리라.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선원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그들은 곧 닻을 걷어 올리고 부두로부터 빠져 나와 동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로부터 울음소리가, 마치 한 사람의 가슴에서 터져 나오듯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리고 울음소리는 황혼 사이로 떠올라 마치 거대한 나팔 소리처럼 바다 위로 울려 나아갔다. 다만 알미트라만이 말이 없었다. 안개 속으로 배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그리고 사람들 모두 흩어질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홀로 방파제 위에 서 있었다. 가슴 속 깊이 그의 말을 기억하면서.
 '잠깐, 바람 위에 한 순간의 휴식이 깃들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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