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6. 사냥꾼과 사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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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사냥꾼과 사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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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래빠는 제자들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수행하게 한 뒤 네팔과 티벳의 경계 지대에 있는 니샹구르따 산의 고요한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의 험준한 능선들은 울퉁불퉁한 바윗돌로 덮여 있었다. 구름과 안개가 빈번하고 폭우가 자주 쏟아져 산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구르따 산의 오른편에는 깍아지른 듯한 봉우리가 치솟아 있었다. 맹수들의 울부짖는 포효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봉우리 위로는 독수리떼가 선회하고 있었다. 왼편으로는 부드럽고 화련한 초원이 펼쳐진 구릉이 있었다. 그곳은 사슴들과 산양들이 찾아와 풀을 뜯으며 즐기는 천혜의 목초지였다. 아래로는 아름다운 삼림이 펼쳐졌다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숲속에는 원숭이들과 공작 칠면조 같은 온갖 기이한 새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원숭이들은 나뭇가지에 매달리며 재롱을 부리고, 새들은 휘휘대며 즐거이 노래하였다. 은둔처 앞으로는 눈 녹은 강물이 시원스레 흐르고 있었다. 그 곁을 지나가면 바위틈과 둥근 반석 사이로 속삭이며 흐르는 맑고 청량한 물소리를 언제나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 동굴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은 까다야였다. 그곳은 수도자에게 인상적인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으며 참으로 조용하고 즐거운 장소였다. 미라래빠는 거기서 유종삼매(流動三昧,流相三昧)에 들었다. 이때 수호신장(守護神將)들이 모두 나타나 예배드리고 봉사하였다.  
어느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온갖 소란스러운 소리가 연거푸 들려왔다.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이곳은 수도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방해거리가 생긴 모양이군.'  
 미라래빠는 동굴에서 나와 큰 바위에 이르렀다. 그는 바위에 앉아서 분별을 떠난 자비삼매(慈悲三昧)에 들었다. 얼마 후 얼룩 무늬 검은 사슴 한 마리가 겁에 질려 뛰어왔다.  
미라래빠는 한없이 자비심을 느꼈다.  
'검은 사슴이 이와 같이 불쌍한 짐승으로 태어난 것은 과거에 나쁜 까르마 때문이리라. 금생에 악업을 짓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과거의 죄업 때문이니 참으로 가엾도다 대승의 진리를 설하여 영원하 복락으로 인도해야 겠구나.'  
그는 사슴을 위해 노래를 불렀다.  
  
 
         마르빠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오니  
         모든 존재의 고뇌를 덜어주소서!  
    
         들으렴, 화려한 뿔 가진 사슴아,  
         눈에 보이는 바깥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그대는  
         바로 이러한 열망 때문에  
         내면의 어둠과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네.  
 
         미련도 슬픔도 없이  
         마음과 몸을 잊어버리렴.  
         이제 모든 어둠과 미망을  
         버릴때가 되었네.  
 
         까르마의 열매는 무섭고 두렵나니  
         덧없는 육신을 이끌고 도망간들  
         인과법을 벗어날 수 있으랴?  
 
         네 진정 도망치려거든  
         마음의 본질안에 숨으렴.  
         네 진정 달아나려거든  
         깨달음의 세계로 달아나렴.  
         다른 곳에는 안전한 피신처가 없네.  
 
         마음속의 모든 혼란 녹이고  
         나와 함께 여기 머물며 조용하게 휴식하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너는 생각하리라.  
 
         "저 능선 너머는 안전해요.  
         여기에 있으면 붙잡히고 말 거예요."  
         이런 두려움과 희망 때문에  
         사슴아, 너는 윤회 세계 방황하고 있는 것이네.  
 
         사슴아, 이제 너에게  
         나로빠의 육법을 가르쳐주리라.  
         마하무드라의 수행을 시작하게 하리라.  
  
 
미라래빠는 마치 브라흐마 신처럼 아름다운 가락에 맞추어 노래하였다. 만약 누군가가 이를 들었다면 법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사슴은 미라래빠의 자비심에 감화되어 포획의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미라래빠에게 다가왔다. 미리래빠의 옷을 핥은 뒤 그이 왼편에 기대어 누었다. 이에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이놈이 방금 짖어대던 사나운 사냥개의 사냥감이 될 운명이로구나.'  
  
미라래빠가 도대체 어떤 개일까 생각하고 있을 때, 붉은 암캐 한 마리가 후다닥 달려왔다. 꼬리는 검고 목에는 힌 테가 둘린 암케로, 무서운 맹견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은 어떤 짐승이라도 찢어버릴 듯했고, 혓바닥은 리본처럼 늘어져 헐떠거렸다. 위협하듯 으르렁대는 포효소리가 천둥을 울렸다.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이놈이 사슴을 뒤쫓던 사냥개였구나. 정말 사나운 개로다. 분노로 가득 차서 보이는 건 무엇이든지 원수로 여기는구나. 이놈을 진정시켜 증오심을 버리도록 하자.'  
그의 가슴속에는 맹견을 향한 동정심이 크게 일어났다. 이리하여 그는 대자비심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마르빠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오니  
         모든 존재들의 증오를 녹여주시길!  
 
         오, 늑대처럼 사나운 암케여,  
         가슴엔 증오와 사악한 생각이 가득찼네.  
         나쁜 카르마로 인해 암캐로 태어나  
         항상 굶주림에 고통당하고, 격정에 시달리네.  
 
         내면의 진아심(眞我心)을 얻지 못하면  
         바깥의 먹이를 잡은들 무엇하리?  
         이제 너 자신의 진아심을 포획할 때가 되었나니  
         사나운 격정을 버리고  
         여기 나의 곁에 편안히 쉬렴.  
 
         너의 마음은 탐욕과 분노로 가득 찼으니  
         '저쪽 길로 나아가면 그놈을 놓칠 테고  
         이쪽 길로 나아가야 그놈을 잡을 텐데.'  
         생각이 그치질 않는구나.  
         이런 희망과 두려움 때문에  
         윤회 세계를 방황하는 것이네.  
 
         내 이제 너에게  
         나로빠의 육법을 가르쳐주고  
         마하무드라의 수행을 시작하게 하리라.  
  
 
대 자비심으로 가득찬 미라래빠가 천상의 음성으로 부르는 진리의 노래를 듣고 암캐는 큰 감동을 받았다. 분노가 가라앉은 사냥개는 컹컹거리며 꼬리를 흔들면서 미라래빠의 옷을 핥은 뒤 주둥이를 앞발사이에 집어넣고 그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렸다. 암캐는 눈물을 글썽이며 사슴과 나란히 누웠다.  
이에 미라래빠는 생각했다.  
'짐승을 뒤쫓아오는 삿된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이 곧 여기에 도착하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내가 황급히 나타났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포악하게 생긴 사냥꾼이였다. 소맷자락이 앞뒤로 펄럭이고 짙은 눈썹 아래 두 눈알이 매섭게 번득였다. 머릿단은 말아올려 머리 위에서 매듭을 지었고, 한 손에는 활과 화살을 들고 다른 손엔 짐승을 포획하는 긴 올가미와 밧줄을 들고 있었다. 그의 숨결은 목구멍에 차서 헐떡거리고, 얼굴에선 비지땀이 쏟아져 질식할 것 같았다. 그는 사냥개와 사슴이 미라래빠의 곁에서 마치 어머니 품속에 안긴 듯이 누워있는 걸 보았다. 이 녀석들이 모조리 마법사의 마술에 걸린 모양이라고 생각한 그는 치를 떨며 미라래빠에게 외쳤다.  
"이 기름기 흐르는 래빠놈아! 당신들은 아무데나 돌아다니는구나. 산짐승을 잡으려고 설산을 헤매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호수를 뒤지고, 개를 팔아먹고 사람들과 다투려고 평지로 나돌아다니는구나! 당신들같이 쓸데없는 인간들은 한두 명쯤 죽어도 좋아. 당신은 내 사냥개와 사슴을 마법으로 홀렸으니, 내 화살도 한번 홀려보시지. 내 화살이 당신의 옷을 뚫는지 시험해보라구. 자아, 한번 막아보시지!"  
사냥꾼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긴 화을 번쩍 들어 미라래빠를 향해 쏘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화살은 위로 치솟아 빗나가 버렸다.  
미라래빠는 이에 생각했다.  
'무지한 짐승들도 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랴! 그는 그래도 인간이 아닌가?'  
"활을 쏘려고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소! 그럴 시간은 나중에서 많을 테니까요. 잠시 동안 나의 노래에 귀 기울려보시오."  
미라래빠는 브라흐마 신과 같은 운율 있는 음성으로 사냥꾼 치라와 괸뽀 도제를 향해 노래하기 시작했다.  
  
 
         모든 성자들에게 예배드리오니  
         오독(五毒)의 번뇌를 소멸시켜주소서.  
 
         그대 인간의 육신을 지닌 자여, 하지만 얼굴은 악마 같나니  
         귀담아 들으렴, 미라의 노래를!  
 
         사람들은 말하네.  
         인간의 몸은 소중하여 보석과 같다고.  
         하지만 그대에겐 전혀 소중하지 않은 듯.  
         악마의 모습 지닌 그대 죄 많은 인간이여,  
         그대는 이번 생에서 쾌락을 구하지만  
         결코 구하지 못하리니, 그것은 그대의 죄업 때문.  
         허나 내면의 욕망을 포기하면  
         위대한 완성을 성취할 수 있으리.  
 
         바깥 세상에 한눈 팔면서 자신을 극복하긴 어렵나니  
         그대는 이제 자신의 마음을 정복하렴!  
         사슴을 죽인들 영원한 기쁨 있으랴?  
         내면의 오독을 없애면  
         그대의 소원은 성취되리라.  
 
         외부 세계의 원수들을 정복하려면 할수록  
         원수들은 늘어만 가리니  
         마음을 정복하면 모든 원수가 일시에 소멸되네.  
 
         악업을 짓느라 인생을 허비말고  
         거룩한 진리를 실천하렴!  
 
         나 이제 그대에게 나로빠의 육법을 가르쳐주고  
         마하무드라의 수행을 시작하게 하리라.  
  
 
미라래빠의 노래를 듣고 사냥꾼은 생각했다.  
'쳇, 수행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담. 하긴 저토록 겁많은 사슴이 맹견과 나란히 누워 있는 걸 보니 신기한 일이긴 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설산의 겨울 사냥에서 화살을 빗쏜 적은 한 번도 없었은데 오늘은 맞히지 못했어. 저 사람은 흑마술사가 분명해. 아니면 보기 드문 훌륭한 수도자이거나.......어디 한 번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자!'  
사냥꾼은 즉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살펴 보았다. 거기에는 먹을 수 없는 약초가 조금 있을 뿐, 다른 음식은 찾을 수 없었다. 이처럼 철저한 고행 수도 생활을 확인하자 사냥꾼의 가슴속에는 불현듯 큰 신심이 생겼다. 그는 미라래빠에게 말씀드렸다.  
"존경하는 스승이시여, 선생님의 스승은 누구시며, 여기서 어떤 수행을 하십니까?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으며, 친구는 누굽니까? 또한 가지신 건 무엇입니까? 저를 시자로 받아주십시오. 이 사슴을 드리겠습니다."  
미라래빠는 사냥꾼에게 응답했다.  
"나는 그대에게 나의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얘기해주겠다. 그대가 나의 생활 방식을 따르고 싶다면 나와 함께 살아도 좋다."  
그는 사냥꾼 치라와 괸뽀 도제에게 노래하였다.  
  
 
         띨로빠, 나로빠, 마르빠  
         삼성(三聖)은 미라의 위대한 스승들이네.  
         세 분이 그대를 기쁘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스승과 수호불과 다끼니 여신들,  
         미라는 삼위(三位)에 예배드리네.  
         삼위가 그대를 기쁘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붓다[佛]과 다르마[法]와 상가[僧],  
         삼보(三寶)는 미라의 귀의처이네.  
         이들이 그대를 기쁘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정견과 수행과 정행,  
         삼행(三行)은 미라가 행하는 진리이네.  
         이것을 실행할 수 있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흰 눈과 암석과 산맥.  
         삼처(三處)는 미라가 수도하는 곳이네.  
         이곳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사슴과 산양과 영양(羚羊),  
         세 동물은 미라의 가축이네.  
         이들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뇌조(雷鳥)와 독수리, 노래하는 죄모 새,  
         이 세 가지는 미라의 가축이네.  
         이들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하늘의 태양과 달과 성운(星雲)은  
         푸른 화선지에 채색된 미라의 그림이네.  
         삼색화(三色畵)가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천신과 신장(神將)과 성인(聖人)들은  
         미라의 다정한 벗들이네.  
         삼신(三神)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꼬리 없는 원숭이, 긴꼬리 원숭이,하이에나,  
         세 짐승은 미라와 노는 친구들이네.  
         이들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지복과 깨달음과 무념(無念),  
         이 세 가지는 미라의 동반자이네.  
         이들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풀뿌리와 쐐기풀과 국물은  
         미라가 흔히 먹는 음식이네.  
         이들은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눈 녹은 청량수와 맑은 샘물, 시냇물은  
         미라가 즐겨 마시는 음료수이네.  
         이들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생명 에너지와 에너지 통로, 빈두는  
         미라가 즐겨입는 생명옷이네.  
         이들이 그대를 즐겁게 한다면  
         그대는 나에게 돌아와도 좋으리.  
  
 
사냥꾼은 노래를 듣고 크게 감명받았다.  
'이 수도자야말로 생각과 행동이 완전히 일치하는 분이구나!"  
그의 가슴속에는 한없는 신심이 일어났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미라래빠의 발 앞에 꿇어 엎드렸다. 그리고 외쳤다.  
"오, 존귀한 분이시여! 저는 선생님께 사슴과 사냥개와 활과 화살과 올가미를 모두 바칩니다. 저와 사냥개는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스승이시여, 저의 사냥개인 '붉은 번개'를 높은 세계로 인도하시고 검은 사슴은 지복의 세계로 데려가주소서! 그리고 이 사냥꾼에게는 진리의 가르침을 베푸시고 해탈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사냥꾼은 이어 노래하였다.  
  
 
         눈처럼 하얀 뿔 달린 사슴이  
         저의 오른쪽에 앉아 있습니다.  
         입 언저리에 얼룩점은 이놈의 장식품.  
         잡아서 죽이면  
         사냥꾼의 개걸스런 식욕은  
         이렛동안 충족됩니다.  
         그러나 이제 필요 없이 선생님께 받칩니다.  
         청컨데 검은 사슴을 지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붉은 번개 견(犬)'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냥꾼 괸뽀 도제를 대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소서!  
 
         쇠고리 달린 검은 올가미 줄은  
         북부 대평원의 들소를 옭아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어 선생님께 바칩니다.  
         청컨대 이 검은 사슴을 지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붉은 번개 견'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냥꾼 괸뽀 도제를 대자유의 길로 인도하소서!  
  
         얼룩 무늬 염소 가죽 외투는  
         설산 준령에도 따뜻합니다.  
         그러나 이제 필요 없어 선생님께 바칩니다.  
         청컨대 이 검은 사슴을 지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붉은 번개 견'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냥꾼 괸뽀 도제를 대자유의 길로 인도하소서!  
  
         오른손에 쥐고 있던 화살들은  
         각각 네 개의 깃털로 장식되었습니다.  
         활시위를 잡아당겨 "피용!" 날아가기만 하면  
         언제나 화살은 적중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어 선생님께 바칩니다.  
         청컨대 이 검은 사슴을 지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붉은 번개 견'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냥꾼 괸뽀 도제를 대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소서!  
 
         왼손에 제가 들고 있는 멋진 활은  
         흰 자작나무 껍질로 장식되었습니다.  
         이 활을 잡아당기면  
         하늘의 용들도 두려워 웁니다.  
         그러나 이제 필요 없어 선생님께 바칩니다.  
         청컨대 이 검은 사슴을 지복의 길로 인도하시고  
         '붉은 번개 개'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시고  
         사냥꾼 괸뽀 도제를 대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소서!  
  
 
이와 같이 사냥꾼 치라와 괸뽀 도제는 미라래빠에게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들을 바칠 것을 노래한 뒤 이렇게 말했다.  
"오, 스승이시여, 선생님의 시자로 저를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저는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자녀들의 생활을 꾸려준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선생님이 여기에 계속 머무실지, 아니면 다른 장소로 옮기실지 분명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미라래빠는 사냥군이 마음을 돌려 진리의 길로 전향한 것을 매우 흡족하게 여기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냥꾼이여, 악행을 버리고 덕행을 실천하려는 그대는 참으로 장하다. 그러나 나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힘들 것 같구나. 설령 그대가 나를 신뢰할지라도 나를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니 왜냐하면 나에게는 일정하게 머무는 장소가 없기 때문이네. 하지만 그대가 진리를 수행하고자 간절히 바란다면, 가족에 대한 모든 애착을 버리고 지금 즉시 나의 행동거지를 따라야 한다. 나에게 왜 일정하게 머무는 장소가 없는지를 들려줄 테니, 자, 나의 노래를 들어보렴!"  
  
 
         은둔하며 수도하는 나, 래빠는  
         여름철 석 달 동안은  
         설산에서 수도하니  
         몸과 마음과 영감이 새로워지네.  
         가을철 석 달 동안은  
         식량을 준비하려고 걸식하고 다니네.  
 
         겨울철 석 달은  
         숲속에서 명상하며 나쁜 기운을 몰아내네.  
         봄철 석 달은  
         초원과 언덕과 시냇가를 떠돌아다니니  
         허파와 담(膽)이 튼튼해지네.  
         하여 일년 사계절 내내  
         수도자는 흩어짐 없이 수행하네.  
 
         사대  원소로 이루워진 우리네 육신,  
         병들고 늙어가게 마련이니  
         항상 관(觀)하며 명상하렴!  
         이는 다섯 가지 번뇌[五欲]를 정복하는 길이네.  
 
         수행자는 음식을 가리지 않나니  
         이것이야말로 욕망을 없애고 자족하는 길.  
         끊임없는 진리 수행이야말로  
         수행자의 근면을 나타내는 표징.  
  
 
노래를 듣고 사냥꾼은 말씀드렸다.  
"선생님 같은 수도자가 계시다니, 참으로 놀랍고 훌륭하십니다. 저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리를 수행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아납니다. 잠깐 집에 들렀다가 가족들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식량을 준비하여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여기에 머물러 주십시오."  
미라래빠는 사냥꾼에게 응답했다.  
"그대가 진정으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가족을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 은둔처에서 수행하려는 사람은 양식을 걱정하지 않는다네. 야생과일이나 채소로도 살 수 있기 때문이지. 죽음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법, 그러니 수행보다 시급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대의 열망과 결심 또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에 머무는 것이 좋을걸세. 가족들과 얘기하기 전에 나의 노래를 먼저 귀담아 들어보렴."  
미라래빠는 이어 노래하였다.  
  
 
         들을진저, 들을진저, 사냥꾼이여!  
         천둥소리가 허공을 무너뜨려도  
         다만 텅 빈 소리일 뿐이네.  
         하늘의 무지개는 오색 영롱하여도  
         머지않아 사라져 버리네.  
         세상의 쾌락은 꿈과 환상 같은 것,  
         하지만 탐닉하면 죄악의 원천이 되네.  
         눈앞에 보이는 만상은 영원한 듯하여도  
         시간이 흘러 변하여 사라지네.  
 
         어제는 많은 것 가졌을지라도  
         오늘은 남김없이 잃어버리네.  
         작년에 살아 있던 늙은이들은  
         금년에는 남아 있지 않네.  
         진수성찬은 독으로 변하고  
         사랑하는 친구는 원수로 바뀌네.  
 
         불평과 거친 말에도 선의와 감사로 보답할지니  
         그대의 죄악은 그대 자신을 헤칠 뿐이라.  
         백 명의 머리가 있을지라도 그대 자신의 것보다 소중한 것 없고,  
         열 개의 손가락 있다지만  
         잘려나간 손가락 하나에 커다란 통증을 느끼리라.  
         그대 소중히 여기는 만물 중에서 자신보다 소중한 것 있으랴.  
         바야흐로 스스로를 도와야 할 때가 왔도다.  
 
         인생은 빨리 지나가고  
         죽음은 머지않아 그대의 문 두드리리.  
         그러니 수행을 미루는 건 어리석은 일.  
         아무리 사랑하는 친족이라도  
         생사 윤회계에 그대를 붙잡아두는 일 외엔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찾을지니  
         이제 스승에게 의지할 때가 왔도다!  
         진리를 수행할 때가 왔도다!  
  
  
이 노래를 듣고 사냥꾼은 진리의 길로 완전히 전향하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라래빠 곁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그후 그는 얼마 동안 명상 수도하여 여러 가지 체험을 증득하였다.  
그는 미라래빠에게 체험을 말씀드리고 더 심오한 가르침을 청했다.  
미라래빠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응답했다.  
"그대는 이미 내적 공덕을 얻기 시작했구나. 그럼,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도록 하라."  
  
 
          스승에게 의지할 땐  
          신실하게 자주 기도하고  
          수호불과 다끼니에게 의지할 땐  
          생기행(生起行)을 근고히 수행하고  
          죽음과 무상(無常)을 명상할 땐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음을 기억하라.  
 
          마하무드라를 수행할 땐  
          한 걸음씩 단계별로 나아가고  
          중생이 부모임을 명상할 땐  
          은혜를 되 갚아야 함을 명심하고  
          수행 법통의 깊은 가르침을 수도할 땐  
          큰 결심으로 끝까지 정진해야 하리라.  
 
          진리의 정상에 도달하려면  
          상승과 하강이 사라진 부동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네.  
          진리와 계합(計合)하려면  
          요동과 변덕이 사라지고 한결같음을 보아야 하네.  
          거룩한 진리를 체득하려면  
          세상의 탐착심을 버려야 하네.  
 
          신들이 음식을 공양할 땐  
          스스로 음식을 구할 필요 없네.  
          구두쇠처럼 재물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더 높이 나아가지 못하네.  
          이는 다끼니의 증언이니  
          그대는 세상의 유희를 버릴진저!  
  
    
이리하여 미라래빠는 사냥꾼을 완전히 입문시키고 심오한 가르침을 전수해주었다. 사냥꾼은 이를 수행하여 마침내 미라래빠의 마음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무명베 두른 사냥꾼 치라래빠'로 알려져 있다.  
사슴과 사냥개는 낮은 세계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그리고 사냥꾼이 미라래빠에게 바친 활과 화살은 아직도 그 동굴에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이 장은 미라래빠가 니상구르따 산에서 마음의 아들 치라레빠를 만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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