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주의(도로) vs. 국수주의(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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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번지’ 주소 체계에서 ‘도로명’ 주소 체계로 개편하는 일로 말이 많다.http://slownews.kr/16400




  • 2014년 1월 1일부터 기존의 주소는 폐지되고, 도로 이름과 건물의 번호로 구성된 도로명 주소(새 주소)를 사용해야 합니다. 병행이 아닙니다. 내년부터 법적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주소는 도로명 주소가 될 것입니다.

    1997년에 도입이 결정되고 2011년 7월 29일에 고시된 도로명 주소는 일제강점기의 잔재 청산, 세계적 표준, 효율 향상 등의 이유로 시행될 예정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택배 기사, 우편배달부조차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슬로우뉴스는 새 주소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게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동 중심 주소 체계에서도 번지만 불러주면 짜장면도 택배도 제대로 온다. 그런데 이걸 왜 바꾸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도로명 중심으로 주소를 바꾼다고 하는데 왜 바꾸어야 하는가. 미국식으로 주소를 바꾸는 게 선진화인가.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고 만들어진 우리나라의 마을

    마을과 지역의 구성 방식이 다른데 같은 방식으로 구획해야 하는가. 도로명 주소로 바꾸려면 지역 구획이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어떻게 1길, 2길, 3길 식으로 바꿀 수 있는가.

    넓은 대지가 있다. 여기에 길을 낸다. 그러면 동일한 규모로 땅이 나누어진다. 그럼 1가, 2가, 3가 식으로 이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마을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고 만들어졌다. 작은 강 옆에는 작은 산이 있고, 큰 강을 둘러싼 산줄기가 있다. 큰 강을 끼고 큰 도시가 만들어졌고, 작은 강을 끼고 작은 도시가 만들어졌다. 산과 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다 보니 전통 도시의 중심부는 분지 형태를 띠게 된다. 우리나라 옛 도시는 성(城)이 있었고 성 안과 밖으로 구분되었다. 빈 땅에 새로 구획을 나누고 도로 중심으로 주소를 붙이는 구조와는 도시의 형성원리 자체가 달랐다.

    산을 기준으로 도시를 만들고 지형의 흐름을 따라 길을 내었다. 그래서 한양 도성 안의 길도 직선이 아니다. 북악산 맞은편에 남산(목멱산)이 있지 않다. 남대문과 북대문이, 동대문과 서대문이 서로 마주하지 않는다. 동대문과 서대문을 연결하는 종로는 일직선이 아니다. 종로에서 남대문 가는 길도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산을 중심으로 분지형 공간에 한양 도성을 세웠기 때문이다.

    한성부는 5부(部)로 나누어지는데 이것도 한성부를 1/5 씩 길 따라 나눈 것도 아니었다. 평지를 길을 통해 1/n 로 나눈 것과 다른 방식이다. 궁궐, 도로, 개천(청계천)이 5부를 나누는데 영향을 준 것이다. 한성부에서 5부 아래 52방을 두었고 방(坊)은 원칙적으로는 네모의 구획이 되어야 하지만 지형상의 이유로 그렇게 만들어지지 못했다.

    수선전도(首善全圖)(서울의 옛 지도, 1840년경)

    수선전도(首善全圖)(서울의 옛 지도, 1840년경)

    방(坊) 아래에 동리(洞里) 개념이 있었다. 동(洞)은 기본적으로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리(里)는 일정 규모 이상의 집이 모여 있는 것을 의미했다. 동리(洞里)가 법정동, 행정동으로 변경된 것이다.

    장소성과 역사성을 없애는 도로명 주소

    장소는 시간이 녹아있는 이야기의 지층이다.

    서울에서도 강북과 강남은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다르다. 강북은 한양 도성 안과 도성 밖으로 나뉜다. 강남은 1936년에 처음 영등포 지역이 경성부에 포함되었고 그 외 대부분은 1963년에 경기도에서 서울이 된 것이다. 경기도의 양천, 시흥, 과천, 광주 지역이 서울이 되었다. 예를 들어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는 경기도 광주의 외곽이었던 곳이다. 이곳에 새로 길을 내고 구획 정리를 해서 서울의 신 중심지가 된 것이다. 지방의 전통도시(주로 지명 뒤에 주(州)가 붙인 도시들. 강릉, 원주, 충주, 청주, 전주, 나주, 경주, 상주 등)도 성 안과 성 밖으로 나누어진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새로 크게 만들어진 도시들과는 형성 원리 자체가 달랐다.

    도시의 형성 원리가 다른데 획일적인 기준으로 주소 체계를 바꾼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삶 터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그냥 기하학적 공간이 되어버린다. 장소의 특성과 의미는 이제 서서히 잊혀지게 될 것이다. 장소에 담긴 이야기도 더 이상 발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도로명 중심으로 주소 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장소성과 역사성을 없애버리는 일이다.

    새주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사라진 동리 명칭

    내가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동리 명칭이 주소에서 빠진 점이다. 기존 주소에서는 도시 지역은 구 아래 동이 있고, 시골은 면 아래에 리가 있었다. 도로명 주소에서는 구 아래 길 이름, 면 아래 길이름이 등장한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13길 123 이렇게 쓰는 게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4동 몇 번지라고 쓰는 것보다 무슨 장점이 있는가. 봉천4동 몇 번지가 관악로13길 123으로 바뀐 것뿐이다. 번지수가 복잡하다고 하는데 도로명은 복잡하지 않은가. 도시보다 시골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많이 살지 않는 시골의 넓은 면 단위에서 리 명칭을 없애고 길 이름으로만 주소를 정한다면 어떻게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OO군 OO면 OO리 OO0번지에서 OO군 OO길 OOO으로 하는 것이 집 찾는데 더 좋을까.

    번지수가 없던 땅에 사람이 살면 새로 번지가 생기고, 하나의 번지가 또 여러 개로 쪼개져 복잡해지긴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도로명 주소를 쓴다고 이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도시재개발이나 재건축을 하면 길도 바꾸고 건물도 바뀐다. 마찬가지다. 그냥 동리 명이 없어진 것이다.

    선진화와 더불어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현재 사용하는 지명에서 일제 강점기에 많이 바뀐 것은 동리 명이 아니라 군 명칭과 면 명칭이다. 예를 들어 양근과 지평이 합해져서 양평군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 시흥군 북면 영등포리가 지금 어디겠는가. 동면, 서면, 남면, 북면이 다른 명칭으로 바뀐 것이다.

    군과 면은 많이 바뀌었어도 기초 촌락 단위인 동리 명칭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주소에서 동리 명칭을 빼 버리는 것은 일제 잔재 청산과 상관없는 것이다.

    서울대 규장각 소장, 1872년, 조선 후기 지방지도, 경기도 시흥

    서울대 규장각 소장, 1872년, 조선 후기 지방지도, 경기도 시흥
    “서울, 성 밖을 나서다.” 145쪽

    참고로 지도 한 장 첨부한다. 이 지도는 일제 시대 지도가 아니라 1872년에 제작된 조선 후기 지방지도의 경기도 시흥 지도이다. 지도에 나오는 지명들을 잘 보시라. 상도리, 봉천리, 신림리, 노량진, 신길리, 당산리, 영등포, 구로리, 독산리, 난곡리, 철산리, 광명리, 소하리, 일직리, 박달리, 안양리 등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지명인 상도리, 봉천리, 신림리, 노량진, 신길리, 당산리, 구로리, 독산리, 난곡리를 주소에서 빼는 게 일제 잔재 청산인가?

    서울에서 내가 소유한 땅도 빌딩도 없다. 지적도 볼 일도 없고 번지수 찾아가면서 내 땅을 확인할 일도 없다. 몇 번지가 OO길 OO으로 바뀌어도 상관없다. 다만 동리 명칭은 주소에서 빼지 마라.


    꼬인 실타래: 사대주의(도로) vs. 국수주의(번지)?

    특히 새 체계에서는 장소의 역사성을 가진 동리 이름을 주소에서 생략하거나 뒤로 돌려 괄호 안에 넣는데, 이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기존 번지 체계라고 해서 딱히 동리 이름이나 그 장소의 역사성을 존중한 것은 아니다. 숫자로만 표시되는 번지는 여러 다른 동에도 같은 숫자의 번지가 있을 수 있기에, 동명을 필수적으로 함께 적어야만 했다.

    이와 달리, 도로명 체계에서는 기초자치단체 내에서 같은 이름의 다른 도로가 있을 경우가 거의 없기에 동리 이름을 굳이 안 써도 주소를 특정할 수 있다. 그래서 도로명 주소 체계는 단순한 주소 찾기만을 위해서는 동 단위는 생략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추진된 모양이다. 물론 지금 방식대로 추진된다면 결과적으로 동리 이름이 사라질 위험이 크고, 이는 분명히 문제다.

    그렇다고 도로명 체계가 동리 파괴를 위한 악의적 목적을 가진 것이라거나 맹목적이고, 무분별하게 미국식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도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미국화의 병폐가 없는 것은 아니나, 도로명 체계를 그리 생각하는 것은 그러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 아닐까 싶다.

    아래 지도를 보자. 노트르담 성당, 시테 섬, 라틴 지구 등 파리 중심부 모습인데, 도로명 체계를 채택했지만, 장소의 역사성은 잘 유지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 시테 섬, 라틴 지구 등 파리 중심부
    도로명 체계를 채택했지만 장소의 역사성은 잘 유지하고 있다 
    출처: 파리 지도, L’Indispensable 지도제작사 (16, 18 Rue de l’Amiral Mouchez, 75014 Paris )

    주소 체계 논의를 ‘사대주의(도로명)’ vs ‘국수주의(번지)’의 대결이라고 보는 관점은 정작 대도시 행정 체계 개선이나 생활권 단위의 공동체성과 정체성 증진과는 무관한 방향으로 논의를 왜곡시킬 위험이 있다. 게다가 헌법소원까지 접수되었다 하니, 자칫하면 찬성이나 반대 중 어느 한 세력은 ‘헌법 불복’ 세력으로 몰릴 판이다. 차분하게 각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합리적 절충안을 찾을 수는 없을까.

    나는 이 글을 통해 우선 1) 도로명 체계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풀고 싶다. 이어 2) 도로명 체계와 번지 체계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장소의 역사성을 파괴하는 원흉으로 지탄받는 도로명 체계의 누명을 벗길 것이다. 그리고 3) 도로명 체계 개편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짚어 볼 예정이다. 더불어 4) 한국 현실에서 도로명 체계를 도입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외국 상황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볼 생각이다. 끝으로 5) 실제 장소의 역사성, 지역의 공동체성과 정체성을 위해 가장 우선 생각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제안해보고자 한다.

    물 뜨겁다고 목욕 포기할까? 

    우선 결론적으로 입장을 밝히면, 나는 도로명 체계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리 이름은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현군 박사의 글 [도로명 주소 체계가 지워버리는 것들]의 마지막 두 문장에 동의한다.

    “몇 번지가 OO길 OO으로 바뀌어도 상관없다. 다만 동리 명칭은 주소에서 빼지 마라.”

    이 박사 글의 마지막 문장은 ‘번지 체계에서 도로명 체계로의 전환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동리 이름은 없애지 마라’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굳이 도로명 체계에 ‘찬성한다’가 아니라 ‘반대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힌 건 ‘적극 찬성은 아니다’라는 의미다. 방관자적 입장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주소 체계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개편 초기의 불편함과 생경함 자체는 어느 시대 어느 개편이라도 있을 수밖에 없다. 동 이름이든 도로 이름이든 졸속으로 지어진다면 장소의 역사성이 없을 것은 마찬가지다. 졸속 추진과 개성 없는 명칭들은 그 자체가 문제다. 또한, 추구할 가치 차원에서 본다면, 주소 찾기의 편의만을 위해서 정체성을 희생할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지역의 역사성이 담겨있는 동리 이름 생략을 바라지 않는다. 한편 도로명 중심 주소 체계 개편을 사대주의의 발로나 도로명 체계 자체가 한국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리 이름 생략에 반대한다고 하여 도로명 체계마저 꼭 반대할 필요는 없다.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이까지 버려서는 안 되며, 뜨거운 물로 급히 목욕을 시키려다가 아이에게 화상을 입혀도 안 되겠다. 하지만 물이 뜨거우면 식히면 되는 것이지 아이의 목욕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삶 터전 무시하는 획일적 도로명 체계? ‘레이던’을 보라!

    우선 도로명주소체계는 개활지에 인공적인 계획도시를 성큼성큼 만들 때나 쓸모가 있고 가능하다는 오해를 풀어드려야겠다. 앞서 프랑스 파리와 아래 네덜란드 레이던의 예를 보자. 유구한 역사와 장소성을 자랑하는 도시이며 도로명를 잘 쓰고 있다.

    레이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도로는 직교 체계와 거리가 멀고, 지형의 흐름과 도시의 역사가 녹아있다. 가로는 지형에 맞추어 구불구불하기도 하고,  직선이기도 하며, 기존의 하천과 인공수로, 언덕, 유적지 등을 고려하여 나 있는 길과 블록의 도시 구조에 모두 도로명를 쓰고 있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통치의 유산 때문인지, 유교문화권에서도 도로명 주소를 쓰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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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교 체계나 개활지, 개성 없는 기하학 공간과는 거리가 먼 네덜란드 레이던(Leiden) 도심부
    (출처: 구글지도 캡처)

    ‘번지’라는 면적(정적인 배치)의 차원에서 공간을 파악하는 것은 동양 철학의 전통에 기반한 것인가? ‘도로’라는 선의 차원(동적인 구성)의 차원에서 공간을 파악하는 것은 그렇다면 서양 철학에 기반한 것인가? 나는 그 정답을 모른다. 이것은 앞으로 연구할 만한 주제이리라.

    그러나 도로명 체계는 획일적인 공간 구분이고, 지형에 따라 길을 낸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으며, 삶의 터전이 갖는 장소의 역사성은 사라져 기하학적 의미의 공간만 남을 것이라 한다면, 오랜 역사와 개성을 자랑하는 세계의 숱한 도시들은 매우 섭섭해 할 것이다.

    번지 체계의 자의적 배치 방식: 관악구 사례

    현행 번지 체계는 한 블록을 하나의 번지로 하여 숫자를 부여하고, 개별 필지를 호로 나눈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개별 필지가 세분화하거나 통합되어 개발시기별로 번호를 부여해 현재는 어쩔 수 없이 번지-호수들은 중구난방 흩져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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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 체계의 개념과 호수 부여 방식
    빨간 점선 안이 같은 주소 단위(번지)를 쓴다

    이는 동을 숫자로 세분화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인구는 50만이 넘는데 법정동은 신림동, 봉천동, 남현동의 3개 동밖에 없었던(!) 관악구의 경우를 보자. (참고 자료: 위키백과)

    신림동과 봉천동은 본동에서 13동까지 있던, 어마어마한 ‘숫자 동’의 예다. 1966년 영등포구 봉신동에서 봉천동과 신림동이 분리되었고, 1970년 영등포구 소속이었던 신림동은 인구 증가에 따라 처음에는 3개 동으로 나뉘었다. 1975년에는 신림1동, 신림2동, 신림3동에서 각각 신림 5동, 6동, 4동이 분동하는데, 이때부터 동 이름에 나오는 숫자의 순서와 지리적 인접성은 서로 무관해진다.

    1980년에는 신림1동을 나누어야 하는데 신림 0동이라 이름 붙이기 뭣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신림본동’이 탄생했으며, 대략 도림천을 경계로 신림 2동에서 9동이 갈라져 나왔다. 마지막 분동의 사례는 1992년에 신림3동에서 13동이 분리한 경우다. 현재는 이런 무의미한 숫자 명칭을 탈피하고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대학동, 서원동, 삼성동 등 새로운 이름을 각각 지어서 사용하고 있다.

    과거 명칭을 도림천변을 따라 살펴 볼 경우에는, 신림1동-2동(일부)-6동(6동 남쪽엔 10동)-9동이 도림천 남서 측으로, 그리고 신림본동-2동이 도림천 북동 측으로 자리잡고 있다. 꼭 동의 숫자가 지리적으로도 연이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런 중구난방의 숫자만 가지고는 역사성이고, 길찾기의 편의성이고, 찾을 수가, 절대, 없다. 원리? 그냥 분동 순서에 따라 아무 원리 없이 자의적으로 나눈 것이다. 이 때문에 이런 숫자 동 이름은 지역 정체성을 담은 이름으로 개편하긴 했으니, 다시, ‘번지’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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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구 지번도: 실제 번지와 호수의 부여 현황(봉천동)
    자의적 숫자의 중구난방식 나열이 어쩔 수 없는 예
    (출처: 한국토지정보시스템)

    번지 체계의 중구난방식 숫자 나열이 처음엔 문제일 수 있겠으나 일단 자리 잡고 나면 익숙해질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몇백 번지에 이르는 숫자들에 정체성이나 역사성은  전혀 없으며, 실용적이지도 않다.

    봉천동을 보면, 876번지 북쪽에 875번지가 있지만, 서쪽엔 전혀 뜬금없는 번지가 있다. 호수는 동북쪽 모서리부터 시계방향으로 부여한 듯은 한데, 어쨌든 골목을 사이에 두고 876-3과 마주 보는 이웃은? 868-16이거나 877번지 1호다. 서로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왕이면 이런 뜬금없는 숫자보다는 아래 가로명 체계 그림처럼 좀 뜬금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초행길 찾아가는 이들의 편의성 문제도 고려해서 말이다.

    4호와 6호 필지가 합병된 경우를 가정해 그려 본 '도로명 체계 개념도' 빨간 점선 내부는 하나의 상위 주소(이 경우 도로명)를 공유하는 구성원의 범위

    4호와 6호 필지가 합병된 경우를 가정해 그려 본 ‘도로명 체계 개념도’
    빨간 점선 내부는 하나의 상위 주소(이 경우 도로명)를 공유하는 구성원의 범위

    도로명 체계는 일단 그 길에 진입하면 다음부터는 집을 찾기 매우 쉽다. 장소의 역사성은 몰라도, 최소한 길 찾기는 쉽다. 즉, 실용성이나 편의성이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공동체 정체성’ 도로명 체계가 낫다

    정보화 시대에 내비게이션과 스마트폰이 보급된 마당에 길 찾기가 뭐가 어려운가, 그리고 초행길로 가는 사람들의 비중이 전체에서 얼마나 되며, 당신 인생에서 초행길로 어딜 가는 경우가 몇 번이나 되느냐는 도로명 체계 반대론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확실히 외국에 나가서 도로명 주소체계의 편리함을 맛본 이들은 대부분 길을 찾을 때 초행길 경험 중이었기에 인상이 더 강렬했을 수 있다.

    지리정보 체계(GIS)에서도 도로명체계가 훨씬 데이터 관리 및 운영에 편리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 바 아니라고 일축할 수도 있다. 지리 정보체계에서는 두 주소 체계의 차이는 과장을 좀 보태면 마치 지동설과 천동설의 천체운행도와 같은 명쾌함과 복잡함의 대비라 한다. 혹은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의 원리와도 비교할 수 있는바, 애초에 어떤 체계였느냐가 나중에 정보량이 늘 때 큰 변수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구체적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도로명 체계에서도 길에 들어선 다음이 편하다는 것이지, 처음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애초에 지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굳이 둘 중 고르라면 나는 번지 체계보다는 도로명 체계를 선택하고 싶다. 단순한 길 찾기가 편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장소의 역사성과 정체성 차원에서 볼 때도 도로명 체계가 조금은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도로명이 고유한 이름이라서가 아니다. (고유한 이름? 사실 이 글을 쓰기 위해 현재 지어진 도로명들을 찾아보고 경악했다. 이에 대해선 뒤에 상술) 실제 생활 공간은 ‘번지’보다는 ‘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그렇다. 다음 그림을 보자.

    주민 동선과 주소 체계와의 상관성 비교

    주민 동선과 주소 체계와의 상관성 비교

    빨간 점선 안의 사람들이 상위 주소(번지든 도로명이든)를 공유하는 하나의 ‘주소 공동체’라고 해보자. 서로 등지고 있으면서 왕래할 일이 거의 없는 이들과 번지를 공유하며, 정작 마주 보는 이들의 주소는 짐작하기 힘든 게 번지 체계다. 그리고 파란색 화살표에서부터 마주치는 이들과 도로명을 주소에서 공유하는 이웃의 경우가 도로명 체계다. 등지고 있는 집을 빙 돌아가서 찾아가는 것 보다는 집 앞 골목을 출입하면서 이웃과 교류하는 경우가 자연스러울 게다.

    번지가 독특하여, 예를 들어 집들 뒷마당 가운데 은행나무라도 같이 두고 있는 은행나무 번지쯤 되면 모를까, 우리는 같은 번지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 보다는 우리는 같은 길 사람들이라 생각하는 것이 같이 길목도 가꾸는 등, 공동체 활성화에 조금은 더 유리하다. 따라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오히려 번지 체계보다 도로명 체계가 더 낫다.

    물론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에는 적당한 마을의 규모가 더 중요하다(뒤에 상술). 위 설명은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해 가장 작은 단위로 나누어서 살펴본 것이다. 결론은, 단순히 지리정보시스템의 ‘기술 혹은 행정 편의성’만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도시민의 자연스러운 생활 흐름과 동선에서도 도로의 중요성과 의미는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번지 체계와 도로명 체계 둘 중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도로명 체계가 더 낫다.

    선조들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도로의 의미에 대해 선조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여 옛 지도 몇 개를 찾아보았더니, 과연 옛 지도에서 길 이름은 찾기란 힘들었다. 그 시절은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 적은 백성’을 뜻하는 노자가 그린 이상사회)의 이상을 구현하느라 왕래가 적어서 그랬는지, 인구 규모상 적당해서 그랬는지, 집과 집 사이 빈 공간이 많고, 담장도 낮았기에 뒷집과 내왕하기가 어렵지 않아서 그랬는지, 대략 지금의 ‘법정 동’에 해당하는 동리 이름만 표시되어 있다. 옛 지도를 몇 개 더 뒤져 보아도 동리 이름만 표시되어 있지, 길 이름은 없다. 물론 번지와 호수가 그려진 옛 지도는 더더욱 없다.

    세종로, 태평로, 퇴계로, 충무로 등의 길 이름이 언제 그렇게 붙어서 통용되었는지 궁금하여 찾아봤다. 길 자체는 한양 초기부터 있었지만, 세종로라는 이름은 1946년에 명명되었고, 일제시대에는 광화문통과 태평통이라 불리웠으며, 조선시대에는 ‘육조거리’라고도 했지만, ‘육조앞’, ‘황토마루’, ‘해태앞’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사용된 듯하다.

    이를 본다면, 확실히 다이나믹한 ‘동’적인 의미나 지점들의 연결을 위한 ‘선’적인 차원보다는, 조용한 정적인 느낌이나 ‘점’ 혹은 ‘면’적인 차원을 중시한 것 같은 인상이다. 선조들의 공간에 대한 철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활에 구현되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그러나 세세한 골목길 하나하나까지 정성껏 그려놓은 것을 보면, 도로의 중요성을 완전히 도외시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긴, 산세와 물길을 고려하여 한 동네의 구역을 정했을 조선시대라 한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도로 없이 하늘로 날아다녔을 법은 만무하다.

    동리 이름 삭제만 반대하고 개편 이익을 살펴야

    주소 체계에 꼭 그 이름이 드러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파리의 라틴 지구(꺄르띠에 라땅)나 마레 지구, 런던의 소호, 서울의 홍대입구가 법정(행정) 동명이거나 주소 체계에 이름이 공식 등장해서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온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소체계에 이름이 드러나 있어도 그 장소의 역사성이 없는 경우는 위에 본 신림본동-13동이 좋은 예다.

    그래도 굳이 동리 이름을 없애는 것에는, 반복하지만, 나도 반대한다. 공간을 그리 많이 차지하는 것은 아니니, 주소체계를 굳이 4단계에서 3단계로 줄일 필요가 있나 싶다. 즉 ‘구-동-번지-호수’의 4단계에서 ‘구-길이름-호수’의 3단계로 줄이기보다는, 동리 이름을 포함하도록 4단계를 유지하면서 번지만 길 이름으로 치환하자는 것이다. 도로명 체계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동리 이름 삭제’에만 반대하자는 것이다.

    한편, 행정구역의 위계를 줄이는 것은 도로명 체계냐 번지 체계냐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광역-기초자치단체의 숫자와 규모를 통째로 손보기 위해 수년째 아이디어 차원의 논의만 진행되고 있는 지방행정체계 개편 차원에서 지방자치의 내실과 의의를 다질 수 있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사실 인구 천만에 가까운 광역자치단체가 지방자치의 내실을 다지긴 힘든 문제이니, 전국을 100개에 가까운 ‘데파르트망(한국의 광역자치단체보다는 작은 규모)’로 나눈 프랑스 사례나, 경국대전에서 전국을 82개의 군으로 나눈 조선 초기 사례 등도 참고할 만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서울을 5개 정도 권역으로 분리하여, 종로구-중구-용산구 정도는 ‘역사도시 서울’로 하고, 나머지를 적정 인구 및 재정규모를 고려하여 분할하면 어떨까 싶다. ‘수도 이전’보다도 이 ‘수도 분할’이 더 낫다고 본다. 다만 이러한 개편이야말로 정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문제다.

    도로명 체계 개편의 문제점

    그럼 현 도로명 주소 체계 개편에 다른 문제는 더 없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간만에 서울을 구글지도에서 찾아보고 경악, 또 경악했다. 세상에 ‘쑥고개로28길’, ‘남부순환로 220길’이라니. 심지어 ‘관악로11길’이 있는 상황에서 ‘관악11가길’도 있다. 이래서야 너무하지 않은가.

    현재 한국의 도로명 체계 11길, 11가길, 216길, 218길. 과연 개편 도로명에 대해 반발심이 생길 만 하다

    현재 한국의 도로명 체계
    11길, 11가길, 216길, 218길. 과연 개편 도로명에 대해 반발심이 생길 만하다
    (출처: 구글지도)

    십 년 넘게 추진했다는 데 시간에 쫓긴 걸까? 아니면 그냥 위에서 쭉쭉 나눠줘야 해서 이렇게 된 걸까? 이런 식의 도로명을 위해서 동리 명칭이 희생되고 있다니, 역사성과 지역성의 파괴를 우려하며 도로명 체계 개편을 반대하고, 헌법소원까지 하는 심정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러매 드는 생각이, 길 이름을, 그 길에 사는 주민들이 모여서 같이 지으면 안 되었을까? 그렇게도 시간이 없는 문제인가 이 문제가? 모처럼 이해관계의 충돌도 별로 없는 의제 같은데, 동별로, 마을 사람들이 구의원과 같이 모여서 길 이름에 대해 의견도 내고, 주민투표도 하고, 천천히 몇 년에 걸쳐서 하면, 길 이름에 역사성도 생기고, 동별로 민주주의와 지역공동체도 발전하고 하여 좋지 않겠나? 내가 너무 한가한 놈인가?

    도로명 체계 한국 적용은 불가능한가?

    전통이나 지역성 관련해 궁금한 점은, 앞서 언급했듯, 정말 선조들은 선(도로)나 이동의 관점에서 공간을 파악하기보다는 불록(번지)이나 정적인 관점에서 공간을 파악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하여 옛 주민 공동체는 길을 기반으로 난 것이 아니라 블록을 기반으로 생성되었을까 하는 점 역시 궁금하다.

    그리고 그때 그랬다 하더라도 그럼 현대화된 도시에서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역시도 차분히 논의할 주제일 테다. 어쩌면 조선시대의 인구 밀도나 마을의 규모에서는 길이냐 번지냐 하는 구분을 하는 것이 무의미했나 싶기도 하니, 적정 마을 공동체의 규모 역시 이 문제와 맞물려 있겠다. 그리하여 장소의 역사성이나 길 찾기 등의 문제에서 본질은 ‘도로명이냐 번지냐’가 아닐 것이다.

    밀도가 높아서 길이 더 자주 났어야 했던 것인지, 잦게 분절되어있는 서울 도심의 블록 체계에서 길은 자주 끊긴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공유하는 하나의 도로명은 몇 블록에 걸쳐있는 것이 적절할까? 혹은, 다세대·다가구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 한국 동네는 외국과 비교했을 때 길 하나에 너무 많은 집이 면해 있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는 도로명을 공유하는 공동체 차원에서 볼 때 한 동을 길 하나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아니면 큰 단지 내 도로에서 갈라져 들어가는 서너 동 단위를 하나의 큰 호로 보고, 거기서 동-호수를 세부 주소로 기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번지 체계가 문제라고 분명히 생각하지만, 현재의 도로명 체제 개편안이 과연 도로명 체계의 장점을 살린 것인지 작금의 도로명 작명 방식을 보면 좀 불안하다. 그러나 졸속인 것이 문제이지 도로명 체계 자체가 전통파괴의 원흉은 아니라고 본다. 동리 이름을 괄호 안에 넣지 말고 길 이름 앞에 넣거나, 아니면 길 이름에 저렇게 많은 숫자를 붙이느니, 차라리 동명을 반영하는 것은 어떨까?

    ‘위수박동’에 있는 ‘원자로’ 혹은 ‘금은동’에 있는 ‘손난로’라면, ‘위수박 원자로’나 ‘금은 손난로’라 표기 한다든가 하면 같은 이름의 다른 길이라는 혼선도 피하고, 동 이름도 살리고, 구별한답시며 길 이름에 숫자가 200 몇 개씩 붙는 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숫자가 꼭 필요하다면, 적당히만 붙이자. 정말 작은 규모에서의 길이라면 숫자를 붙이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겠지만, 되도록 길 이름 뒤의 숫자는 4를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몇 개까지가 사람이 고유성을 인지할 수 있는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그 분야의 연구결과가 있지 싶은데, ‘아무개로28길’까지 가기보다는 웬만하면 ‘아무개로4길’ 정도에서 멈추면 어떨까.

    지역 공동체 주민의 ‘진짜 생각’이 중요

    어쩌면 과밀 도시에서 뭘 해도 안 되나 싶기는 하다. ‘남부순환로220길’은 그다음에 어디까지 있는지 모르겠으나, 과연 200개가 넘은 이 길들에 각각 고유의 명칭을 부여하는 게 가능하긴 한 것일까? 200까지도 갈 것 없이, ‘쑥고개로28길’만 해도 28개의 고유한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 아득하다.

    갑자기 궁금하다. 우리와 도로율에선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외국 도시들은 우리보다 길 숫자가 훨씬 적어서, 혹은 길 길이가 짧아서 일일이 이름 붙이는 게 가능했고, 또 의미가 있었던 걸까? 물론 프랑스 파리도 두 개의 구를 관통하고, 1호에서 407호까지를 거느리며 약 4.4km에 육박하는 보지라르 거리(Rue de Vaugirard)가 있다. 이렇게 길다 보니 특이하다는 나름의 역사성은 있지만, 길 이름을 주소에서 공유한다고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의식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해서는 주소체계에서 번지를 쓰느냐 도로명을 쓰느냐와는 무관하고, 과밀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또 부동산에 대한 관념, 노동시간 등이 더욱 본질적인 문제라는 생각이다.

    예술과 낭만으로 상징되던 홍대입구를 예로 들어보자. 인지도 상승과 상권 발달로 인한 임대료는 상승하고, 결국 예술인은 다른 곳에서 작업실을 구하며, ‘걷고 싶은 거리’는 ‘굽고 싶은 거리’로 변하는 상황에서, 혹은 ‘뉴타운 개발’등으로 파괴되는 마을에서, 법정(행정) 동리 명칭이든 도로명 체계든, 무슨 장소의 역사성과 지역 정체성 그리고  공동체성을 담보할 수 있겠는가.

    집을 가졌어도 OECD 국가 중 최대 노동 시간을 뒷받침하는 야근에 주말 특근으로, 집과 동네에서는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주민들이나, 2년 단위로 쫓겨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비정규직 전세 주민이, 그리고 월세 사는 주민도 함께, 주소에 동 이름이 나오든 말든, 번지체계로 가든 도로명체계로 가든, 역사성을 가꾸고 누릴 수 있을까? 이때 그 장소의 역사성은 누구를 위한 역사성일까?

    이런 현실이 지속한다면, 이미 유서 깊은 어떤 동리 이름이야 도로명 체계로 가더라도 인구에 회자하며 살아남을 테고, 어떤 동네는 동리 이름이 주소체계에서 유지되더라도 우편봉투에만 표시 될 뿐, 주민들은 거기 산다는 것을 밝히길 꺼릴 것이다.

    도로냐 동 이름이냐 대립은 번지수 잘못 짚은 것

    하여 도로명 체계냐 번지 체계냐는 잘못된 구도다. 도로명 체계를 (번지 체계가 아니라) 동리 이름의 적으로 삼는 것은 추진하려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이나 그야말로 번지수를 잘못 짚었거나 옆길로 샌 것이다. 도로명은 번지를 대체하고, 동명은 계속 쓰는 정도로 조정하고, 지역성과 역사성을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서 더 집중하자.

    그리고 지역성과 역사성을 포함하여, 공동체의 사무에 대해 주민들이 더욱 더 잘 모여서 논의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주소체계보다는 과밀 도시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낫다. 즉, 마을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지방행정체계 개편의 차원에서 고민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그리고 생태주의와 노동시간 단축, 그리고 균형발전 혹은 동반 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고민이 동 이름을 괄호 안에 넣을 것인지 편지봉투 인쇄할 때 잉크가 더 많이 드는 것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진정 동리 이름을 생활 속에서 살리는 길이다. 이것이 주민은 거기 산다는 것을 밝히기 꺼리는 동리 이름과 부동산 가치를 말해주는 동리 이름을 나란히 주소체계에서 살려두자는 논의보다 더 미래지향적이리라 믿는다.


    교양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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