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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취정계, 대승보살의 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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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취정계, 대승보살의 계율

 

보살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을 닦아나가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이다.[上求菩提下化衆生] 보살에게 있어서 깨달음을 구하는 자체가 중생교화이며, 중생교화는 깨달음과 이어진다. 중생제도의 서원을 일으킨 보살은 반드시 대승계를 수지해야 하는데, 화엄경에서도 보살이 수도修道를 하고 계戒를 닦는 것은 모든 중생이 악을 행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며 스스로 구족계를 받아 모든 중생들이 최상승법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하며, 보살계 수지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수행자들이 대승불교도임을 자처하면서도 보살이 수지해야할 계율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계, 십계 등의 단편적인 계율들을 알고, 보살계를 정식으로 수지하였다 하더라도 실제생활에 적용하기 위한 인식은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승보살이 수지하는 계율은 무엇일까? 비구·비구니계라 수도 없고, 오계·십계라 하기에도 어딘가 부족하다. 대승보살이 수지하는 계율, 보살이 마땅히 지켜야할 규범은 바로 삼취정계三聚淨戒이다.

해심밀경에서는 착하지 못함을 버리는 계요, 착함을 생겨나게 하는 계요, 유정을 넉넉하게 하고 이익하게 하게 함을 내는 [轉捨不善戒, 轉生善戒, 轉生饒益有情戒]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보살지지경菩薩地持經』에서는 삼취정계三聚淨戒라 명시하며,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요익유정계로 나누었다. 『유가사지론』, 『해심밀경』, 범망경 등의 여러 대승경전에서도 보살은 심신의 안정을 위해 섭율의계攝律儀戒를, 불법 성숙을 위해 섭선법계攝善法戒를, 중생의 이익을 위해섭요익유정계攝饒益有情戒를 수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렇듯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요익유정계를 총칭하여 삼취정계라 하는데, 상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섭율의계는 보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을 방지하기위한 금지조항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는데 의미가 있다. 익히 알고 있는 비구250·비구니348, 식차마나니계, 사미·사미니계, 오계 십계 팔관재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율의계를 수지하여, 항상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부끄러움을 알아 허물이 없도록 유지해야 한다. 이는 교단내부의 질서유지와 수행자의 위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항목이다. 특히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는 다거나, 인색하여 베풀지 않고, 성내고 남을 원망하며, 진리를 비방하는 과오를 범하지 것을 추가했다.

이렇게 율의계에 머물러 성취하는 가지에 대해 『유가사지론』에서 아래와 같이 설한다.

과거의 모든 욕심을 돌이켜 그리워하지 아니함이요, 미래의 모든 욕심을 바라거나 구하지 아니함이요, 현재의 모든 욕심을 탐착하지 아니함이요, 기쁨과 만족을 내지 않은 것을 멀리 여의기를 좋아함이요, 바르지 않은 언론言論과 모든 나쁜 머트러운 생각을 쓸어 없앰이요, 자기를 스스로 업신여기지 아니함이요, 성품이 부드럽고 온화함이요, 견디고 참음이요, 방일하지 아니함이요, 규칙과 깨끗한 생활을 완전히 갖는 것이다.

 

둘째, 섭선법계는 선법을 증장시키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선법이란 착하고 좋은 , 바른법과 진리를 발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높은 어른을 공경하고, 병든 이에게 가엾은 마음을 내어 간호하고 돌보아 주며, 다른 사람의 착한 일을 함께 기뻐하는 것들이 포함된다.

앞에서의 섭율의계가 방비지악을 위한 소극적이고 강제적인 규범이라면, 섭선법계는 선법의 발현을 위한 적극적이며 자발적인 실천이다. 다시 말해 섭선법계는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 핵심이며, 보살이 율의계를 받은 뒤에, 몸과 말과 뜻으로 선법을 쌓아 모으는 것이다.

이는 또한 이미 생겨난 선법을 증장시키고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이 일어나도록 노력하는 사정근四正勤과도 맥을 같이한다.

 

셋째, 섭요익유정계[섭중생계] 섭율의계와 섭선법계를 바탕으로 대승의 정신을 온전히 구현하는 것이다. 섭율의계와 섭선법계가 자신의 깨달음과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섭중생계는 이러한 모든 것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다. 이는 일체중생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나와 남이 모두 함께 깨달음에 이를 있도록 하는 자리이타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무명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일체중생들을 자애와 연민으로 살피어,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을 함께한다. 그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다시는 불선법을 짓지 않도록 하며, 악처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봉사, 전법활동들이 포함된다. 대자비심을 바탕으로 중생을 섭수하는 과정에서 보살은 조건 없이 베풀고, 부드러운 말로서 격려하고, 이롭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하는 사섭법이 권장된다.

여러 경전에서 섭중생계에 대한 설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그만큼 섭중생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상 살펴본 삼취정계는 기존의 근본불교의 계율을 포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섭선법계와 섭중생계를 더한 것으로, 계의 입장에서 대승과 소승을 종합한 것이라 있다. 특히 계율을 금지조항으로 받아들이던 수동적 자세에서 나아가, 나와 남이 함께 부처가 있도록 하는 능동적인 실천을 강조하였다.

사실 불교가 창립초기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지향하고 있었음은 많은 중생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유행을 떠나라던 불교전도 선언에서도 있다. 그러나 부파불교 이래로 이러한 정신은 퇴색되어 갔고, 일체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대승의 의지가 삼취정계에 여실히 담겨진 것이다.

더욱이 삼취정계는 단순히 대승불교 내에서 국한된 행위규범이 아니라, 보편적 윤리로도 확대된다. 스스로의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업을 성찰하고 다듬으며, 동시에 선업을 모으고, 온전히 다른 이들을 위해 베풀 아는 것은 분명 오늘날에도 유효한 덕목이다.

삼취정계의 정신은 대자비심이다. 사랑과 봉사 정신이 우리 마음 깊숙이 스며들면, 우리 삶은 더욱 값지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자기완성을 위한 노력과 일체중생에 회향을 모두 강조한 삼취정계의 정신이 오늘날 불자들 마음으로 실천으로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