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과 수행

[동영상 + 강의안] 제4강 초기불교의 핵심: 법(法, dhamma, dhar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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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초기불교의 핵심: (, dhamma, dharma)


 


⑴ 초기경의 도처에서 부처님은 법을 강조하셨다.


① 법을 의지하여 머무르리라


“아무도 존중할 사람이 없고 의지할 사람이 없이 머문다는 것은 괴로움이다. 참으로 나는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러야 하는가?(A4:21)


앙굿따라 니까야「우루웰라 경」1(A4:21)에 나타나는 세존의 성찰이다.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아직 아무에게도 자신의 깨달음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때에(주석서에 의하면 세존께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뒤 다섯 번째 7일이라고 한다. - AA.īi.24)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 있는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에 앉아서 과연 나는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를 두고 진지하게 사유하셨다. 경에 의하면 세존께서는 자신이 의지할 자를 찾아서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사문바라문을 포함한 하늘과 인간의 모든 세상 모든 존재를 다 살펴보셨지만 세존께서 구족한 계()와 삼매[]와 통찰지[]와 해탈보다 더 잘 구족한 자를 그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세존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결론지으신다.


“참으로 나는 내가 바르게 깨달은 바로 이 법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의지하여 머물리라.(A4:21)


 


② 법의 바퀴를 굴리다


이러한 법을 전개하시는 것을 불교에서는 전법륜(轉法輪, dhamma-cakka-pavattana)이라하며 최초에 팔정도를 중심으로 중도를 천명하신 가르침을 초전법륜경(S56:11)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법을 근본으로 하셨다.


그리고 “법을 의지하여 머물리라.”는 이러한 부처님의 태도는 부처님이 전법과 교화를 하신 45년간 내내 “법을 의지처로 삼고[法歸依] 법을 섬으로 삼아라[法燈明].”는 가르침과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自歸依]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自燈明].”는 가르침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첫 번째 유훈도 바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난다 존자도 세존께서 반열반하신지 얼마 뒤에 고빠까 목갈라나 바라문과 나눈 대화에서, 비구들은 법을 의지처로 한다고(dhamma- paisaraa) 바라문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M109/īi.9)


 


③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


“왁깔리여, 그만 하여라. 그대가 이 썩어문드러질 이 몸을 봐서 무엇을 하겠는가? 왁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왁깔리여, 법을 볼 때 나를 보고 나를 볼 때 법을 보기 때문이다.(왁깔리 경(S22:87) §8)


그리고는 오온의 무상//무아를 설하시고 염오-이욕-해탈-해탈지를 설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분 세존께서는 일어나지 않은 도를 일으키신 분이고 생기지 않은 도를 생기게 하신 분이고 설해지지 않은 도를 설하신 분이고 도를 아시는 분이고 도를 발견하신 분이고 도에 정통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제자들은 그 도를 따라가면서 머물고 나중에 그것을 구족하게 됩니다.(고빠까 목갈라나 경(M108) §5)


 


④ 마지막 유훈 ―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난다여,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대반열반경」(D16) §6.1)


 


이처럼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직후에도 스스로 깨달은 법을 의지해서 머물리라고 하셨고, 45년간 제자들에게 설법하실 때에도 법을 강조하셨으며 이제 사바세계에서 자취를 감추시는 반열반의 마지막 자리에서도 법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라 유훈하셨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반열반하고 계시지 않는 지금에 사는 우리가 뼈가 시리고 가슴이 사무치게 존중하면서 배우고 궁구하고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법(dhamma)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부처님께서는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결집에 참석한 500 아라한들은 일단 법의 바구니(Dhamma-Pitaka = Sutta-Pitaka, 經藏)와 율의 바구니(Vinaya-Pitaka, 律藏)라는 두 개의 바구니를 먼저 설정하였다. 그 가운데서 율의 바구니부터 먼저 채우기로 결의하였는데 합송에 참석한 아라한들은 “마하깟사빠 존자시여, 율은 부처님 교법의 생명(āyu)입니다. 율이 확립될 때 교법도 확립됩니다. 그러므로 율을 첫 번째로 합송해야 합니다.”라고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요약]


담마(Dhamma, ): 온처계근제연 37조도품


아비담마(Abhidhamma, 對法, 勝法): 아비담마 칠론:『담마상가니(Dhammasagaī, 法集論),『위방가(Vibhaga, 分別論),『다뚜까타(Dhātukathā, 界論), 『뿍갈라빤냣띠(Puggalapaññatti, 人施設論),『까타왓투(Kathāvatthu, 論事),『야마까(Yamaka, 雙論), 『빳타나(Paṭṭhāna, 發趣論)


위나야(Vinaya, ): 두 가지 위방가(Sutta-vibhaga, 경의 분석, 비구계목과 비구니계목을 뜻함)


아비위나야(Abhivinaya, 對律): 대품, 소품, 부록(附錄): 주석서들과 복주서들에서는 이 둘을 아비위나야(Abhivinaya)라고 이름하기도 한다)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


아비담마와 아비위나야라는 술어는 이미 초기경전에 나타난다.(디가 니까야 합송경(D33) §3.3과 앙굿따라 니까야 망아지 경(A3:137), 망아지 경(A9:22) )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아비담마(abhidhamma)와 아비위나야(abhivinaya)에 대해서’란 담마()와 아비담마(對法)와 위나야()와 아비위나야(對律)의 네 가지라고 알아야 한다. 이 가운데서 담마()는 경장이요 아비담마(對法)는 칠론(七論)이요 위나야() [비구계와 비구니계의] 두 가지 분별이고 아비위나야(對律)는 칸다까(Khandhaka, 犍度)와 빠리와라(附錄, 補遺)이다. 혹은 경장과 논장이 담마()이고 도()와 과()는 아비담마(대법)이며, 모든 율장은 위나야()이고 오염원을 가라앉게 하는 것이 아비위나야(대율)이다. 이처럼 담마와 아비담마와 위나야와 아비위나야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DA.īi.1047)


아비담마는 법에 대한 것[對法]이란 뜻이고 아비위나야는 율에 대한 것[對律]이란 뜻이다. 주석서의 설명처럼 일반적으로 담마()는 경장을, 아비담마(대법)는 논장을, 위나야()는 율장의 경분별(비구계목과 비구니계목), 아비위나야(대율)는 율장의 대품과 소품과 부록을 말한다. 아비위나야는 따로 독립된 장으로 결집하지 않고 율장에 포함시켰다.


 


이처럼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신 그 때부터 마지막 반열반에 드시는 순간까지 법을 생명으로 여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법을 생명으로 삼아야한다.


 


⑵ 법이란 무엇인가?


① 교학으로서의 법: 청정도론을 위시한 주석서들은 교학으로서의 법을 온/////(蘊處界根諦緣)으로 정리하였다.


(, 무더기, khandha): 5 = 물질[, rūpa], 느낌[, vedanā], 인식[, saññā], 심리현상들[, sakhārā], 알음알이[, viññāa]의 다섯 가지 무더기이다.


(, 감각장소, āyatana): 12 = /////마음(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內處]와 형색/소리/냄세//감촉/마음(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 대상[六外處] 12가지 감각장소이다.


(, 요소, dhātu): 12처의 마음(마노)에서 여섯 가지 알음알이를 독립시켜서 모두 18가지가 된다. 즉 눈/////마음(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와 형색/소리/냄세//감촉/마음(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가지와 눈의 알음알이[眼識], 귀의 알음알이, 코의 알음알이, 혀의 알음알이, 몸의 알음알이, 마노의 알음알이[意識]의 여섯을 합하여 18가지가 된다.


(, 기능, indriya): 모두 22가지가 있다. 22가지는 아래 제13강의 자료를 참조할 것.


(, 진리, sacca): 4 =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고성제),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집성제),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멸성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도성제)의 네 가지 진리이다.


(, 조건발생, paccaya, pat(iccasamuppāda): 12연기를 말한다.


 


2수행으로서의 법: 주석서들은 37조도품(助道品, 菩提分法, bodhipakkhiya-dhammā)을 들고 있다.


4념처(마음챙김의 확립), 4정근(바른 노력), 4여의족(성취수단), 5(기능), 5(), 7각지(깨달음의 구성요소), 8정도의 일곱 가지로 분류되며 법수로는 모두 37가지가 된다. 이 법수들에 대해서는 모두 해당 강의 자료들을 참조할 것.


 


이러한 불교의 기본법수들을 불교에서는 법(dhamma/dharma)이라 한다. 불교교학에서 법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부처님 가르침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고유성질을 가진 것)를 뜻한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 전자는 Dhamma로 후자는 dhamma로 구분해서 표기하기도 한다. 위에서 나열한 온처계근제연과 37조도품은 부처님 가르침으로서의 법(Dhamma)이다. 아비담마에서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을 법(dhamma)이라고 정의한다.


 


[고유성질[自性]을 가진 것이 법이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일찍부터 존재일반을 어떤 기준으로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해서 설명하였다. 그 기준을 불교에서는 법(dhamma)이라고 한다. 불교학의 토대가 되는 아비달마에서는 법을 ‘고유성질(sabhava)을 가진 것(sabhāva dhārenti)’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면 지대(地大)는 견고성을, 탐욕()은 대상을 끌어당기는 성질을, 성냄()은 대상을 밀쳐내는 성질을 각각 고유성질로 가진다. 그래서 75법이니 100법이니 하는 말은 이 세상의 존재일반은 모두 75가지 혹은 100가지의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4 82, 5 75, 5 100]


이러한 법들은 크게 몇 가지 범주로 무리 지어져 있는데 이 범주를 위()라고 부른다. 그래서 5위라는 말은 이러한 제법은 다섯 가지 큰 범주로 분류된다는 뜻인데, 그것은 마음(, 心王), 마음과 함께 일어나는 심리현상들(心所),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 현상들(心不相應行), 물질(), 무위(無爲)의 다섯이다. 한편 가장 오래된 체계인 상좌부 아비담마에서는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 현상들(心不相應行)이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4위가 된다.


 


이렇게 하여 설일체유부에서는 마음 1가지, 심리현상들 46가지, 마음과 함께 하지 않는 현상 14가지, 물질 11가지, 무위법 3가지하여 모두 575법들을 인정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유식에서는 5100법을, 상좌부는 482법을 설한다. 그래서 5100법이니 575법이니 하는 용어가 생긴 것이다. 비록 각 학파마다 일체법(諸法)의 개수를 조금씩 다르게 설정하지만, 존재일반을 이처럼 여러 가지 법들로 분해하고 해체해서 통찰하는 것은 불교의 모든 학파에서 한결 같다.


 


⑶ 법은 해체해서 보기이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존재를 온처계근제연의 법들로 해체해서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초기불교와 아비담마의 특징은 해체해서 보기이다.


해체라는 용어는 이미 초기경전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영감이 가장 뛰어난 분으로 칭송되는 왕기사 존자는 부처님을 “부분들로 해체해서 설하시는 분”(S8:8)이라고 찬탄하고 있다. 여기서 해체는 위밧자(vibhajj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이 위밧자라는 술어는 빠알리 삼장을 2600년 동안 고스란히 전승해온 상좌부 불교를 특징짓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위밧자와딘(해체를 설하는 자들)이라 불렀다.


그러면 무엇을 해체하는가? 개념[施設, paññatti]을 해체한다. 나라는 개념, 세상이라는 개념, 이영애라는 개념, 돈이라는 개념, 권력이라는 개념, 신이라는 개념을 해체한다. 이런 것들에 속으면 그게 바로 생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칭이나 언어 즉 개념에 속게 되면 죽음의 굴레에 매이게 된다고 부처님께서는 초기경전 도처에서 강조하셨다.


 


[고정관념의 해체와 무상//무아의 통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해체해서 보는 이유이다. 그것은 첫째,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처럼 제법들로 분해하고 해체해서 보면, 자아()니 인간()이니 중생이니 영혼(壽者)이니 우주니 하는 무슨 변하지 않는 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착각이나 고정관념을 척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무아) 둘째는 이렇게 법들로 해체하면, 이러한 법들의 찰나성(無常)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찰나를 봄으로 해서 제법이 괴로움()일 수밖에 없음에 사무치게 되고, 제법은 모두가 독자적으로는 생길 수 없는 연기적 흐름(無我)이라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법무아).


자아니 인간이니 하는 개념적 존재(施設, 빤냣띠, 산냐)로 뭉뚱그려두고는 그것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그래서 아비달마는 존재일반을 철저히 법들로 분해해고 해체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아비달마에서는 법의 찰나성을 통찰한 깨달음을 무상(無相)해탈이라 하고, 괴로움과 무아를 철견한 깨달음을 각각 무원(無願)해탈과 공()해탈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화엄경 등 대승경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해체해서 보기는 초기불교의 생명]


그래서 지금까지 강의에서 살펴본 것처럼 나라는 개념적 존재는 5온으로 해체해서 보고, 일체 존재는 12처로 해체해서 보고, 세계는 18계로 해체해서 보고, 생사문제는 12연기로 해체해서 보게 되면, ///연 등으로 설해지는 조건지워진 법들의 무상//무아가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존재를 법들로 해체해서 그들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통찰하여, 염오(厭惡, 넌더리, 역겨움, 구토)하고 탐욕이 빛바래고[離慾] 그래서 해탈/열반/깨달음을 실현한다는 것이 수많은 초기경전의 일관된 흐름이다.


해체라는 관문을 넘지 못하고 불교를 논하면 안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 그는 부처님 제자가 아니요, 불교적 인생관, 불교적 세계관, 불교적 신념을 가진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유식처럼 분석을 강조하던, 반야중관처럼 직관을 강조하던, 화엄처럼 종합을 강조하던, 그것은 불교적 방법론인 해체에 토대해야하기 때문이다. 직관을 강조하는 반야부의 여러 경들조차 해체 끝에 드러나는 법의 자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놀란 적이 있다. 이런 토대위에서 그들은 무자성과 공의 직관을 다그치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뭉쳐두면 속고 해체하면 깨닫는다.” 법들로 해체해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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