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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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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 개요

 

 

조몬시대 → 야요이시대 → 야마토시대 → 나라시대 → 헤이안시대 → 가마쿠라시대 → 무로마치시대 → 아즤모모야마시대 → 에도시대 → 메이지시대

 

 

 

1. 조몬[繩文]시대

 

 

1 전에 시작된 일본의 신석기시대에는 조몬식토기[繩文式土器] 사용하여 시대를 조몬[繩文]시대라고 부른다. 조몬시대인은 수렵·어획 식용식물의 채집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이민족이 아니라 현대의 일본인의 조상이었다.

 

 

2. 야요이[彌生]시대

 

BC 3세기경 서남일본에 한반도에서 미작(米作)농업이 전래되어 야요이[彌生]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이 때 일본역사는 커다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야요이시대인은 금속기를 사용하여 도검(刀劍) 등 무기 외에 동탁(銅鐸) 등 제기(祭器)를 제작하였다.

야요이시대에는 조몬시대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생산력의 발전속도가 빨라지고 움집[竪穴住居] 바닥이 높은 곡물 저장창고가 있는 100 이상으로 취락이 발달하였다. 아직 공동체적인 사회구성이긴 하면서도 족장(族長) 존재하고 사유재산과 신분·계급의 제도가 싹트기 시작한 사실은 유물·유적 문헌으로써 추정할 있다.

이때는 소국가적인 사회조직이 있었으며 국가통일의 기운이 성숙되어 있었다.

 

 

3. 야마토[大和]시대

 

서기 1세기에 들어서 세력 있는 왕들과 계급적인 군부 사회가 봉기하였는데, 시대를 야마토 시대라 한다. 많은 분묘가 조영된 고분시대인 4세기 초에는 긴키내의 야마토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큐슈까지를 포괄하는 통일국가가 생겨나서 점차 전국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세습제를 확립한 오키미[大君:王] 군림하였다.

소국(小國) 수장(首長)들은 조정 내부에서 귀족계급을 형성하여 (姓:한국의 에 해당하는 위에 덧붙여서 가문의 격을 표시했던 세습적인 칭호) 수여받고, 광대한 토지와 백성을 소유하였다. 4세기 말엽에 백제에서 한자(漢字)·유교가 전래되고, 6세기 중엽에는 역시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일본의 문화수준이 급격히 높아졌으며, 불교를 정치기조로 삼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 등에 의해 각지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뒤이어 645년에 씨성(氏姓)사회를 타파하고 중앙집권적인 율령국가를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다이카개신[大化改新] 단행되었으며, 덴무[天武]왕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왕의 신성(神聖) 강화되어 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율령체제가 확립되었다.

 

 

4. 나라[奈良]시대

 

당문화(唐文化) 흡수한 조정은 710 나라[奈良] 광대한 도읍 헤이조경[平城京] 건설하였다. 교토[京都] 천도하기까지의 80 간을 나라시대라고 부른다. 시대에 조정에서는 국력을 기울여서 대불(大佛) 여러 거찰(巨刹) 조영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현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었다.

그 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 특히 백제가 본과 활발히 교류하였고, 백제 멸망 후에는 유민(遺民) 다수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그들 백제인과 고구려인 등이 한학, 유학, 불교 회화, 불상조각, 사찰건축 등의 문화예술 외에, 생활용품 제조기술, 관개시설 축조기술 등을 일본인에게 전수함으로써 문화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5.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년에 간무[桓武]왕은 교토[京都]에 헤이안경[平安京]을 조영하여 도읍을 옮기고 율령체제의 재편성을 시도하였다. 이 때부터 가마쿠라 바쿠후가 개설되기까지의 기간을 헤이안시대[平安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승려 사이초[最澄]에 의해 천태종(天台宗), 구카이[空海]에 의해 진언종(眞言宗)이 크게 보급되었고, 사찰은 광대한 사령(寺領)을 소유하면서 권세를 부렸다. 또 귀족들 사이에 국풍문화(國風文化)가 일어나서 가나 문자[假名文字]가 보급되었다.

간무[桓武]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율령제는 붕괴되고, 각지에 무사단(武士團) 지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6.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미나모토 요리토모[源賴朝]1192 가마쿠라에 바쿠후를 열고, 각국(各國:國 고대 이래의 일본의 지방행정단위) 슈고[守護:군사 반란 진압 등을 맡은 관리지토[地頭:토지관리·年貢 징수 등을 맡은 관리] 두어 세습적인 무가(武家)정권을 수립하였는데 미나모토에 의한 바쿠후가 가마쿠라에 존속한 기간을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라고 한다.

그러나 미나모토가 바쿠후를 연 후에도 종래의 귀족세력도 쇠퇴하지 않아 귀족과 사사(社寺:神社寺刹) 장원 영주적 지배와 무사 영주적 지배의 2 지배가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바쿠후의 실권은 쇼군[將軍 :막부의 세습적인 국가통치권자] 밑에서 정치를 통괄하는 싯켄[執權] 직을 맡은 호조[北條] 일족에게 넘어가고, 1221년에는 조정의 권력회복을 꾀하여 고토바[後鳥羽]왕이 난을 일으켰다.

바쿠후는 난을 진압하여 지배권을 확립했으나, 2회에 걸친 (元) 침공을 받아 쇠퇴해갔다. 바쿠후의 지배체제의 쇠퇴와 더불어 각지에서 바쿠후 반대의 기운이 고조되고, 세력을 규합한 고다이고[後醍] 의해 1333 바쿠후는 붕괴되었다.

 

 

7.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가마쿠라 바쿠후가 무너진 뒤 고다이고왕은 왕 독재에 의한 관료국가의 수립을 기도하였으나 무사계급의 반대에 부닥쳤다. 무사 출신의 아시카가다카우지[足利尊氏] 새로운 왕을 옹립하여 북조(北朝) 세우자 한동안 남북조(南北朝) 대립하는 내란이 지속되었으나, 결국 아시카가가 승리하여 1336 교토의 무로마치[室町] 바쿠후를 세웠다. 때부터 무로마치 바쿠후가 명맥을 유지한 1572년까지를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라고 한다.

그러나 무로마치 바쿠후는 처음부터 기초가 취약하여 내분이 잦더니, 마침내 중앙정부로서의 위력을 상실하고 교토를 중심으로 일개 지방정부 체제에 불과한 처지가 되었다.

바쿠후에서 임명한 슈고는 점차 독립하여 임국(任國) 영지화하고 슈고다이묘[守護大名], 슈고의 신분에서 성장한 다이묘[大名:領主] 되었으며, 다시 그들이 완전히 독립하여 상호 항쟁하는 전국(戰國) 다이묘가 됨으로써 전국시대(戰國時代) 접어들었다.

바쿠후에서 임명한 슈고는 점차 독립하여 임국(任國) 영지화하고 슈고다이묘[守護大名], 슈고의 신분에서 성장한 다이묘[大名:領主] 되었으며, 다시 그들이 완전히 독립하여 상호 항쟁하는 전국(戰國) 다이묘가 됨으로써 전국시대(戰國時代) 접어들었다. 무로마치 바쿠후가 명맥을 유지한 1572년까지를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라고 하는데, 시대에는 전국시대가 겹치기도 하여 고대에서 전해 내려온 문화재를 많이 상실하였으나, 반면 귀족화한 무사계급에 의해 기타야마문화[北山文化]·히가시야마[東山]문화로 불리는 문화가 일어나고, 화폐경제의 발전에 따라 일어난 도시의 상공업자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도(茶道), 가도[華道:꽃꽂이], 노가쿠[能樂], 수묵화(水墨畵) 새로운 문화가 일어났다.

 

 

8.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무로마치 바쿠후가 끝난 1572년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적대세력을 물리치고 1603년에 바쿠후를 열기까지의 시대를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라고 한다.

전국시대 말기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중앙으로 진출하여 아시카가의 쇼군[將軍] 축출하고,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전국을 통일하였다. 도요토미는 전국통일을 완수하기 전부터 검지(檢地), 농지측량이나 농민소유의 도검몰수(刀劍沒收:농민이 무사가 되는 것을 방지) 등을 단행하여 봉건적 토지소유제 확립과 신분제의 확립을 도모하였다. 1590년에 통일을 완수한 도요토미는 159293, 159798년의 차례에 걸쳐 조선을 침략하여 조선에 막대한 전쟁 피해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거듭하다가 전쟁에 실패한 그의 사망을 계기로 철군하고 말았다.

그 시대에는 웅장한 성관(城館) 조영과 호화로운 무사저택의 건축 등을 중심으로 모모야마문화[桃山文化] 결실을 맺었다. 시대에는 조총(鳥銃) 새로운 문물이나 그리스도교가 전래되어 이른바 남만문화(南蠻文化:포르투갈인의 내항으로 전래된 유럽 문화) 일어났다.

 

 

9. 에도시대[江戶時代]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江戶:현재의 東京] 도쿠가와 바쿠후(일명 에도 바쿠후) 개설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폐쇄하기까지의 260 동안을 에도시대[江戶時代]라고 한다.

도쿠가와 바쿠후는 봉건제도의 강화를 도모하여 쇼군[將軍] 정점으로 하는 바쿠한 체제[幕藩體制:藩大名의 영지 또는 그 관할조직] 확립하고 사농공상(士農工商) 신분질서를 엄중히 하였다. 전국을 200 이상의 다이묘령[大名領] 바쿠후 직할령으로 분할하고, 무사는 다이묘의 성관(城館) 있는 성읍(城邑) 거주시켰기 때문에 소비도시로서의 성읍이 다수 생겨났다. 그리스도교를 엄금하고 쇄국을 단행하였다.

에도시대의 바쿠한 체제를 지탱한 것은 무거운 조세를 부담한 농민이었는데, 농민은 5060호로 구성되는 마을에 편입되어 바쿠후 또는 [藩]에서 파견하는 벼슬아치의 지배를 받았다. 농민은 전답의 매매를 금지당하고, 의식주에 대해서도 엄한 구속을 받았으며, 오인조(五人組) 조직되어 납세나 범죄에 대한 연대책임을 강요당했다.

에도시대에는 초기의 분란이 수습되자 그 후에는 태평한 세월이 지속되어 도시의 신흥 상공업자, 조닌[町人] 중심으로 겐로쿠문화[元祿文化] 긴키지방에 꽃피고, 뒤이어 에도를 중심으로 유흥적인 색채가 짙은 서민문화인 에도문화가 발전하였다.

1853년과 1854년의 2차에 걸쳐 함대를 이끌고 온 미국의 M.페리 제독의 압력에 굴하여,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포기하였다. 그 결과 격렬한 내분항쟁이 지속되는 와중에서 반(反)바쿠후 세력이 급속히 형성되어 바쿠후체제는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 정권유지의 불가능을 깨달은 바쿠후는 186711월 조정(朝廷)에 대한 정권 반환, 즉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제의하고, 다음날 그것이 수락됨으로써 에도시대는 끝을 맺었다.

 

 

10. 메이지[明治]시대

 

일본은 대정봉환에 의해 조정이 왕정복고를 선언하고, 조신(朝臣) (反)바쿠후의 주동 세력인 사쓰마한[薩摩藩], 조슈한[長州藩] 서남웅한[西南雄藩] 중심으로 하는 신정부를 수립하여, 공의세론(公議世論) 존중과 개국 진취의 방침을 밝힌 5개조의 서문(五箇條御誓文) 발표하였다. 신정부는 전국을 진압한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여 수도로 삼고, 원호(元號) 메이지[明治]라고 고쳤다. 봉건적인 여러 제도를 폐지하고, 급속한 근대국가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정부는 문명개화라고 불린 구미(歐美) 기술·제도의 직수입을 추진하는 한편, 왕을 신격화하고 신도[神道] 국교적(國敎的) 성격을 부여하였다.

정부는 사족(士族) 중심으로 반정부운동을 세이난전쟁[西南戰爭]으로 진압하고,프로이센 헌법을 메이지헌법[明治憲法] 제정하였다. 정부지도 하에 산업의 근대화가 추진되어, 1·2차의 산업혁명이달성되었다. 한편 청일(淸日)·러일[露日] 전쟁을 일으켜서 타이완[臺灣]·한국·사할린을 식민지로 획득하고, 다시 대륙으로 진출하여 제국주의국가로 변신하였다.

또 영일동맹(英日同盟) 의해 (東)아시아에서 발판을 굳히고, 1 세계대전 때에는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이득을 얻어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루는 나라가 되었다. 대전 구미제국에 일어난 민주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호헌(護憲)·보통선거 등의 운동이 일어났고 평화주의·국제주의의 풍조가 활발해져서 정당내각(政黨內閣) 탄생하였다.

일본은 만주사변(滿洲事變) 일으켜서 동북 중국에 만주국을 세우고 다시 중국과 충돌하여 ·(中日)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독일·이탈리아와 3국동맹을 맺고, 이른바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명목으로 동부아시아를 지배하려 하였다. 그러나 미국·영국 등과 대립하여 결국 태평양전쟁에 돌입하였고,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와 소련의 참전을 계기로 1945815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하였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으나 전후에는 한국의 6·25전쟁에 의한 특수경기(特需景氣) 경제부흥의 발판을 마련한 1951년의 연합국의 대일(對日) 강화조약(소련 불참) 미일(美日) 안보조약에 의해 주권을 회복하여 자유진영에 가담하였으며, 장기간에 걸친 보수당정권 밑에서 급속히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다. 경제의 급격한 발전에 의해 국민의 생활수준은 크게 향상되었으나, 반면 공해문제·물가상승 등을 초래하였다.

한편 소련·중국 등과 공산국가와도 국교가 회복되어 일본의 국제적 지위는 높아졌다. 19891 쇼와왕의 사망으로 199011 아키히토[明仁] 왕에 즉위하였으며, 연호는 헤이세이[平成]이다. 1955 이후 38년간 집권한 자민당이 1993 중의원선거에서 과반수 획득에 실패하여 정권을 상실했으며, 같은해 87개의 야당연립정부인 호소카와[細川]정권이 탄생하여 전후 정치에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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