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법상

이권초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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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상이권초

    양변

     

     

    0. 서문

     

    • 우리 法相宗은 법문을 여러 각도에서 세운다. 지금은 일단, 唯識·三性·百法·사연 (四緣)·四分·種子·五性·作業·受果·五位 수행으로 나누어 주석을 붙여나가고자 한다.

     

     

    . 유식 (唯識)

    1 일체 모든 것은 을 벗어나 있지 않다.

     

    • 일체 모든 법은 내 마음을 벗어나 있지 않다.
    • 넓은 바다와 큰강, 수미산이나 철위산 (鐵圍山),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다른 세계, 정토나 보리에서부터 유일진실한 진여의 오묘한 이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마음속에 있다. 하물며 자신의 머리나 , , , 의복, 음식 등은 말할 나위가 없다.

     

    2 미혹

     

    • (넓은 바다나 큰 강 또는 의복이나 음식을) 마음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혹이다.
    • 미혹이 원인이 되어 無始이래로 생사에 윤회하는 몸이 되는 것이다.
    • 모든 법이 마음을 벗어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안다면, 생사윤회는 영원히 끊어지고 무상정각의 경지에 틀림없이 도달할 것이다. 사람들이 마음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만물 (萬物) 자체의 본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 마음에 집착하여 마음이 실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미혹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에 집착하여 (마음을) 마음밖에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이라 생각하고 바로 그) 空 집착하여 (공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또한 미혹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음밖에서 공이라는 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밖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나 마음, 혹은 ·無 관념은 모두 실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삼성 (三性)

     

    1 오중유식관 (五重唯識觀)

     

    • 이처럼 (마음 밖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바르지 못한 사물에 대한 상을 없애고 不思議한 지혜를 일으켜 자기안에서 한마음 깨닫는 것은 유식의 진실한 이라 한다. 여기에는 다섯가지가 있다.

     

     

    2 삼성

     

    • 그중 유허존실 (遺虛存實) 유식관에 대한 서술이다. 부사의한 一心속에 이 있다.
    • 본성은 바로 진여라는 뛰어난 진리이며, 이것을 원성실성이라 이름한다. 원만히 성취되어 있고 본질적으로 견고하며 부동이기 본래의연 때문이다. (本來凝然)
    • 有爲의 모든 법이다. 이를 依他起性이라 이름한다. 진여위에 다른 에 의해 가상으로 일어난 상이기 때문이다. 色聲香味觸의 다섯 가지 인식대상, 眼耳鼻舌身 다섯가지 감관, 특히 그들로부터 이루어진 신체 속에 있는 갖가지 마음, 밖의 외부세계의 도구나 자재, 집이나 전원, 숲이나 ,바다 등의 의타기성인 상이다.
    • 假相을 가상인줄 알지 못하고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마음 앞에 나타나는 즉, 실재로서 있다고 생각된 표상을 변계소집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완전히 비실재의 존재이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마음밖에 (존재한다고 생각된) 잘못된 사물의 형태이다. 계교 (誡敎)하고 미혹한 마음에 의해 집착된 것이기 때문에 변계소집성이라 이름한다.
    • 예컨데 끈을 보고 뱀이라 생각할 때 세 가지가 있다. (, , ) 중에서 끈의 본성은 짚이다. (끈은) 짚으로 (끈을 만드는 사람의) 손발 등을 연으로 하여 가상으로 생긴 형태이다. 형태가 뱀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이 뱀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뱀의 형태는 단지 잘못 마음속에 생긴 영상일 , 본체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끈의 형태도 연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가상일뿐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고, ( 끈의) 진실한 본성은 단지 짚일뿐이다. 따라서 뱀의 모습은 본질적으로는 결코 존재하지 않고, 끈의 모습은 가상으로 있고, 짚의 본체는 끈의 본성으로서 실재한다. ( 비유를 삼성에 적용시키면) 원성실성의 이는 , 의타기성의 제법은 , 변계소집성은 뱀의 형상에 각각 해당된다.
    • 이속에서 의타기성의 양상에 마음을 멈추고, 양상을 관찰·분석해야 한다.
    • 세간에 존재하는 사물의 색깔, 형상, 냄새, , 혹은 사람의 마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꿈이나 환상 혹은 이슬이나 번개처럼 덧없고 일시적인 것이다. (그들이) 일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모든 사물은 스스로 존재할 없고, 모두 (緣) 기다려 생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라는 색깔도 청과 닮은 것이지 실제로 청은 아니다. 黃 황과 닮은 것이지 실제로 황은 아니다. 일체 모든 것이 이와 마찬가지이다.
    • 이러한 (가상으로서 무상한) 사물을 범부의 어리석은 마음은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착각에서 (나쁜) 일이 일어난다. , 사물을 탐하고 화를 내고 자만심을 일으키고 의심을 갖는 등의 일이 일어난다. 도리를 분별하면 스스로 변계소집성의 (사물의) 본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알게 되고, 원성실성의 이치가 진실하다는 것도 깨달아 모든 번뇌와 악업이 없어지게 된다.
    • 이것을 遺虛存實唯識觀이라 이름한다. 나머지 가지 (유식관) 생략한다. 변계소집과 의타기, 원성실의 가지를 三性의 법문이라고 한다.

     

     

     

    . 백법 (百法)

     

    1 백법의 분류

     

    • 이 삼성 ( 해당하는 존재를) 더욱더 상세히 분석하면 백법과 二無我가 있다. 백법에는 의타기성에 모두 94가지가 있고 원성실성에 6가지 무위가 있어서 합하여 백법이라 이름한다. 이무아는 변계소집성이 공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가지가 있다. , 補特伽羅無我法無我가 그것이다.
    • 의타기성의 94가지 법에는 心王8가지가 있고, 心所6가지가 있는데, 이를 자세히 구분하면 51가지의 심소가 세워진다. 그리고 色法11가지, 不相應行24가지가 있어 합하여 94가지이다.
    • [100= 의타기성 94 (심왕8 + 심소6 (51) + 색법11 + 불상응행24) + 원성실성6]

     

     

    2 심왕

     

    • 심왕의 여덟가지란 (다음의 8식을 말한다) 첫째, 眼識 대상을 보는 마음, 둘째 耳識 소리를 듣는 마음, 셋째 鼻識 냄새를 맡는 마음, 넷째 舌識 맛을 아는 마음, 다섯째 身識 몸에 접촉하는 것을 뜨겁다 차갑다 부드럽다 거칠다 등으로 아는 마음, 여섯째 意識 보거나 듣는것 모두를 또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무변한 법계 ( 대상으로 하는) 마음이다. 일곱째, 末那識 범부의 마음 밑바닥은 항상 탁해서 앞의 여섯가지 마음이 모두 깨끗하게 작용하고 있을 때도 자시의 신체, 자신의 물건이라는 (자타) 차별하는 집착이 없어지지 않고, 마음의 밑바닥이 언제나 오염된 상태로 있는 것은 말라식 때문이다 여덟째 阿賴耶識 이것은 일체제법의 근본이다. 제법의 종자를 거둬 유지할 것인가? 유지하고 거두어들이는 바가 없으면 제법의 종자도 없어져버릴 거시다. 만약 종자가 없으면 (제법은) 어디에서 생길 것인가? 앞의 일곱가지 마음은 모두 종자를 유지할 수가 없다.) 아뢰야식이 있다는 것에 대한) 교리나 가르침은 생략한다.
    • 이들 8식에서 전육식이 일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양상은 갖가지다. 예컨대 사람이 꿈을 때는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의 5식이 모두 일어나지 않을 때다. 꿈속에서 뭔가 사물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맛을 보고 뜨겁고 차갑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제육식의 분별이지 5식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꿈꾸지 않을 정도로 깊게 잠들어버리면 의식도 없어져버린다. (그때는) 단지 말라식과 아뢰야식만이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마음은 어떠한 때에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없다.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잠들거나 깨어나거나 영원히 계속되는 단절없는 마음이다.
    • (말라식과 아뢰야식의) 마음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는 극히 어렵다. 특히 8아뢰야식은 지극히 깊고깊다. 때문에 소승의 낮은 가르침에서는 이것을 설하지 않고, 대승이라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속에서만 이것을 설했다.
    • 華嚴經, 解深密經, 楞伽經, 厚嚴經 등의 경전과 瑜伽論 顯揚聖敎論, 大乘莊嚴經論, 集量論, 成唯識論 등의 논서에 설해지고 있다.

     

     

    3 심소

     

    1. 심소의 정의

    • 이들 8식은 마음 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왕에 비유하여) 心王이라 이름한다. 여덟 (심왕) 에는 많은 권속이 있다. 이것을 心所라고 이름한다. 자세히는 心所有法이라 부르지만 줄여서 심소라고 한다. (심소나 심왕도) 같은 마음이지만 온갖 미세하게 작용하는 마음들을 (심왕) 권속으로 한다.
    • (심소에는) 여섯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遍行의 심소인데 여기에도 다섯가지가 있다. 다섯가지는 서로 다르지만, 이들 모두는 심이 일어나면 반드시 (심왕과 함께) 작용하므로 편행이라 이름한다. 둘째 別境의 심소인데 마찬가지로 다섯가지가 있다. 이들 다섯가지는 각기 별도의 경을 반연하기 때문에 별경이라고 칭한다. 경이란 마음이 인지하는 (대상적) 존재이다. 반연은 사물을 아는 것을 말한다.셋째는 善의 심소인데 열 한가지가 있다. 선은 색과 마음의 모든 법의 가치를 판단해서 三性으로 나누어진다. 즉 선성과 불선성과 無記性이다. (이들 중) 무기성은 선도 악도 아닌 것이다. (전술한) 열한 가지 심소는 반드시 선성이기 때문에 선이라 칭한다.넷째는 번뇌(의 심소)인데 여섯가지가 있다. 자세히 나누면 열가지이다. 이 열가지는 有情의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하기 때문에 번뇌라고 칭한다.다섯째는 隨煩惱의 마음인데 스무가지가 있다. 이 스무가지는 번뇌에서 유출된 것이므로 수번뇌라고 이름한다.여섯째는 不定의 심소인데 네가지가 있다. 이들 네가지는 선이나 악도 정해지지 않고, 어느 세계에 작용하는지도, 어느 심왕과 함께 작용하는지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이라고 이름한다.(심소의 수를 들면) 편행의 다섯과 별경의 다섯, 선의 열하나와 번뇌의 여섯과 수번뇌의 스물과 부정의 넷을 합쳐 51이다. 이들 이름은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서 설해지고 있다.

     

    2. 편행의 심소

    • 먼저 作意의 심소란 마음을 놀라게 하고 깨어나게 하는 마음이다.
    • 심소란 심왕과 심소가 알아야 곳에 접촉하게 하는 마음이다.
    • 심소는 이든, 마음속 근심이든 기쁨이든 또는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것이든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 심소는 특히 사물의 모습을 知覺 분별하고, 사물의 갖가지 이름을 설한다
    • 심소는 마음을 선으로도 악으로도, 無記로도 만들어내는 마음이다.
    • 편행의 다섯가지란 이것이다.

     

    3. 별경의 심소

    • 다음 의 심소란 선이나 악이나 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勝解 심소는 어떤 일이든 확실히 생각해서 결정하는 마음이다.
    • 심소는 경과한 일을 마음속에 분명히 새겨[明記] 잊지 않는 마음이다.
    • 三摩地 심소는 무슨 일이든 알고자 생각한 일에 집중하여 산란함을 누르고 조용해진 마음이다. 이것을 의 심소라고 한다.
    • 심소란 만물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물의 德失을 잘 가려내어 의심을 제거한 마음이다. 이것이 이다.
    • 변경의 오란 이것이다.

     

    이상 열 가지는 모두 선이 될 때도 있고 불선이 될 때도 있고, 無記 때도 있다. 性不定이지만 편행은 일체의 마음에 널리 상응한다. 별경은 삼계의 중생에 모두 걸쳐 있지 않다. 그러므로 부정의 심소라 한다.

     

    4. 선의 심소

    • 다음에 의 심소란 항상 믿음을 일으키는 마음이다. 귀하고 훌륭한 일을 깊게 이해하고 바라는 청정한 마음이다.
    • 精進 심소는 선을 닦고자 기운을 내는 마음이다.
    • 심소는 자신에게 부끄러워하고 법에 부끄러워해서 죄를 짓지 않는 마음디ㅏ.
    • 심소는 세간에 부끄러운 죄를 짓지 않는 마음이다.
    • 無貪 심소는 만물에 대해 탐하는 것이 없는 마음이다.
    • 無瞋 심소는 나를 거스르는 일이 있어도 화내지 않는 마음이다.
    • 無癡 심소는 모든 사물의 이치에 어리석지 않는 마음이다.
    • 輕安 심소는 몸이나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운 마음이다. 심소는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선정에 들어갈 일어난다.
    • 不放逸 심소는 악을 막고 선을 닦는 마음이다. 항상 제멋대로 죄를 짓는 것을 방일이라 한다. 이와는 다르게 모든 죄를 멀리하고 공덕을 이루고자 생각하는 마음이다.
    • 行捨 심소는 마음을 평등하고 정직하게 하는 마음이다.
    • 不害 심소는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이다. 자비란 성내지 않음 (無瞋), 해치지 않음 (不害) 말한다. 성내지 않음은 이고 해치지 않음은 이다.

     

    선의 11심소는 이렇다. 누구나 모든 선의 심소가 일어날 때에는 가지도 반드시 일어난다. 定 들어간 사람은 輕安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선의 11심소가 모두 일어난다.

     

    5. 번뇌의 심소

    • 모든 사물을 탐내는 마음이다.
    • 이란 나에게 거슬리는 일에 대해서 반드시 성내는 마음이다.
    • 자신을 믿고 타인을 깔보는 마음이다.
    • 無明 또한 치라고도 하는데, 모든 사물의 이치에 어두운 마음이다.
    • 어떤 일에도 이치를 분명히 판별치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이다.
    • 不正見 잘못된 것을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참된 도리를 알지 못하는 마음이다.
    • 번뇌의 여섯번째 마음이다. 부정견 중에 五見으로 다섯가지 상이 있다. 첫번째 薩迦耶見, 아집이다. , 나의 , 나의 , 타인의 등을 엄격히 구분하는 마음이다.
    • 둘째 邊執見, 줄여서 변견이라고도 한다. 나의 몸은 언젠가 완전히 가 된다고 생각하는 견해와 혹은 죽은 후에도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 셋째는 邪見. 죄도 없고 공덕도 없고, 지옥·아귀·축생의 과보도 없고, 인간·천상·정토보살의 과보도 없다고 생각한다. 삼보를 비방하는 마음이다.
    • 넷째는 見取見, 줄여서 見取라고도 말한다. 이같은 잘못된 견해를 범하는 마음을 의미있는 마음이라 생각하고, 또한 그러한 잘못된 견해를 지닌 사람을 훌륭하게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 다섯째 戒禁取見. 줄여서 戒取라고도 한다. 이것은 외도가 세운 계를 받아들여 금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혹은 계를 설하는 사람을 훌륭하다고 하면서 헛되이 몸을 괴롭히는 마음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외도의 고행이 이것이다. 이들을 합하여 10번뇌라고 이름한다.

     

    6. 隨煩惱의 심소

    • 忿이란 화가 나서 지팡이로 사람을 때리려고 생각할 정도로 성내는 마음이다.
    •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다. 한을 품은 사람은 혐오심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을 항상 괴롭힌다.
    • 화를 내서 사람을 원망한 결과, 비위가 틀려 마음속을 항상 괴롭힌다. 사물을 말할 말이 시끄럽고, 야단스럽고, 천하고, 난폭하고, 음험하고, 표독스러운 마음이다.
    • 이익과 명예를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범한 죄를 갖춘다. 죄를 감추는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고 슬퍼하게 된다.
    • 명리를 얻기 위해 거짓으로 계략을 꾸미거나, 자신에게 덕이 있다고 나타내는 거짓된 마음이다. 세간에 誑惑된 사람이란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 사람을 교란시키기 위해 간교한 방편을 꾸미거나 자신의 과오를 감추는 사람의 마음이다. 세간에 諂曲하는 자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이다.
    • 사람을 동정하는 마음이 없는 마음이다. 세간에 자비의 성품도 없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마음을 지닌 자이다.
    • 자신의 명리만을 구하기 때문에 남이 잘되면 깊은 질투를 일으키면서 편치 않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대상을 질투하는 사람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 재보에 집착하여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더욱 축적하고자 하는 인색하는 마음이다.
    • 無慙 자신과 교법에 비추어 부끄러워하지 않고, 선근을 쌓는 일을 가볍게 여기고 ,모든 죄를 일으키는 마음이다.
    • 無愧 세간에 부끄러운 모든 죄를 짓는 마음이다. 수치가 없는 사람이 바로 무참무괴를 지닌사람이다.
    • 不信 소중하고 훌륭한 것을 보고 들어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이 더러움으로 응결된 마음이다. 이러한 사람은 매우 게을러진다.
    • 懈怠 여러가지 선한 일을 행하는 게으르고 태만한 마음이다. 이러한 사람은 불신을 지닌다.
    • 放逸 죄를 막고 선을 닦는 마음이 없이 제멋대로 죄를 일으키는 마음이다.
    • 惛沈이란 가라앉는 마음이다.
    • 掉擧 요동하여 뒤숭숭한 마음이다.
    • 失念 사물을 잊는 마음이다.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산란이 일어난다.
    • 不正知 알아야 사물을 잘못 아는 마음이다.
    • 心亂 산란해진 마음이다. 그래서 산란의 심소라 이름한다.
    • 隨煩惱 스무 가지란 이것이다. 이중에서 무명은 혼침과 비슷하면서도 구별된다. 무명은 어둡고 미혹된 것이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혼침은 단순히 미혹된 것이 아니라 무겁게 가라앉은 상태이다. 도거는 어느 대상을 향해도 마음이 들뜨는 것이다. 산란은 일상적인 일에서도 흐트러져 있는 상태이다.
    • 이 번뇌와 수번뇌는 성품을 반드시 오염시킨다. 오염이란 不善有覆이다. 불선이란 악이고, 유복은 악은 아니지만 탁하게 하는 마음이다. 두성질은 모두 더럽히는 마음이기 때문에 染汚性의 법이 된다.

     

    7. 부정의 심소

    • 다음 睡眠의 심소란 마음을 어둡게 하고 몸 전체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마음이다. 사람이 잠잘 심소가 일어난다.
    • 惡作 모든 일을 후회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후회의 심소라고 한다.
    • 는 사물을 추측하는 마음이다. 그것을 취해 얕게 推度할 때에는 심을 이루고, 깊게 추도할 때에는 사를 이룬다.
    • 부정의 4 이것이다. 51 심소는 이와 같이 거칠다.

     

    8. 심왕과 심소의 관계

    • 51 모두 마음의 권속이고 8식의 심왕에 따른다. 따르는 양상은 眼識34심소가 있다. 소위 편행의 5, 별경의 5, 선의 11, 번뇌중의 ··, 수번뇌 중의 무참·무괴·불신·해태·방일·혼침·도거·실념·부정지·심란이다. 耳識에서 身識까지도 모두 이와 같다.
    • 意識에는 51심소가 모두 있다.
    • 말라식에는 18심소가 있다. 편행의 5, 별경속의 , 번뇌속의 ··무명·아견, 수번뇌 중의 불신·해태·혼침·도거·실념·부정지·심란이 그것이다.
    • 아뢰야식에는 편행의 5 있다.
    • 이들 중에는 번뇌·수번뇌가 일어날 상응하는 심왕이든 편행이든 별경이 있거나 不定이 있다면, 모두 염오성이다. 선의 심소가 일어날 때에는 이들 모두 善性이다.
    • 번뇌·수번뇌도 일어나지 않고, 선의 심소도 일어나지 않고, 무기가 될때에는 이들의 모두 무기가 된다. 8 안식에서 의식까지의 여섯은 선이 때도 있고 염오가 때도 있고 무기가 때도 있다. 때에 따라 성은 부정이다. 말라식은 언제나 염오성이다. 아뢰야식은 언제나 무기성이다. 각기 상응하는 심소도 이와 같다.
    • 심왕과 심소가 함께 모여진 무리를 一聚라고 이름한다. 일취란 一寸이다. 따라서 8식은 八寸의 마음을 갖게 된다. 예를 들면 여덟 사람의 주인이 각자 권속을 거느리며 여덟 마을을 통솔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일촌 중의 심왕과 심소는 반드시 같은 이다. 만약 선이면 모두 선이고, 염오이면 모두 염오이고, 무기면 모두 무기이다.
    • 오식과 제8식은 어느 쪽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아는 마음이다. 말라식은 항상 착각하는 마음이다. 의식은 있는 그대로 때도 있고, 틀리게 때도 있다. 8식과 심왕과 51심소의 존재방식에 대해서는 이상과 같다.

     

    4

     

    • 다음 색법에 11종이 있는데, 이름은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 설해져 있다.
    • 이 중 안근(眼根) 내지 身根5근이라 이름한다. 앞서 말했듯이 안식 내지 신식을 생기게 하는 所依의 근이다. 소의의 근이란 마음의 대상을 , 그것이 힘이 되어서 마음이 사물을 있도록 하는 (감각기관) 말한다. 예를 들면 광택이 나는 보석으로 사물을 비추면, 사물을 있는 것과 같다. 5근은 구슬로 비유되고, 마음이 사물을 아는 것은 (구슬에 의해 사물을) 보는 것에 비유되고, (마음에 의해) 알려진 사물은 (구슬에 의해) 보여진 사물로 비유된다. 안식, 이식 등과 안근 이근 등은 별개의 것이다.
    • 즉 심은 心法 (심적 존재) 이고, 근은 色法 (물질적 존재) 이기 때문이다. 근은 사람의 진실한 , 진실한 , 진실한 , 진실한 몸이다. 현실을 지각하는 , 등의 감각기관을 扶塵根이라고 이름한다. 그것은 색성향미촉과 같은 종류이고, 진실한 눈이나 등은 아니다. 진실한 눈이나 등은 현재 지각되는 눈이나 등의 근저에 있고, 청정하고 정묘하는 것이 마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같은 것이다. 이것을 정근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5근은 이것 (正根) 이다.
    • 다음에 색 내지 五塵이라 이름붙인다. 또는 5境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5식이 5근의 힘을 빌려 아는 대상이다. 안식은 안근을 통해 색을 본다. 이때 색은 , , , 등의 빛깔이다. 이식은 이근을 통해 소리를 듣고 (비식은 비근을 통해 냄새를 맡고, 설식은 설근을 통해 맛을 분간한다) 신식은 신근을 통해 감촉을 얻는다. 이처럼 차례로 배분하여 수가 있다.
    • 다음 法處所攝의 색이란 제6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무변법계 중에 있는 물질적 사물의 (일부) 이다.
    • 일반적으로 ·黃·赤·白 등을 색이라 말하지만, 불교에서는 ···촉도 모두 색이라 한다. 이중 청황적백은 색의 의미가 분명하기 때문에 顯色이라 이름하고, 성향미촉은 색의 의미가 분명치 않고 감추어져 있으므로 별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 이들 심왕과 심소의 색법속에 실법과 가법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의타기성이고, 환영같은 존재이며 임시적인 을 지닌 것에 불과하지만 假有의 것 속에도 二重이 있다. 따라서 스스로의 종자에서 생기는 법을 실법으로 한다. 그리고 실법위에 분립해서 생긴 별도의 본체가 없는 사물을 가법이라 한다. 그러나 假法無法은 다르다. 결코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무법이라 하는데, 실체로서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다. 결코 존재하지 않는 사물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있는 사물을 가법이라 한다. 앞서 말한 변계소집이 무법인다. 가법은 의타기를 (실법과 가법으로) 나눈 중의 가법이기 때문에 (변계소집 같은) 무법은 아니다.

     

    5 불상응행

     

    • 다음 불상응행에 스물네가지가 있다는 것은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가법이다. 스물네가지를 불상응행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이다.
    • 五蘊 대한 가르침이 있다. 오온은 ·受·想·行·識 오온을 말한다. 이중에 번째인 行蘊에는 여러가지 심소 및 , 命根, 衆同分 등을 받아들이고 있다. 중에서 심소가 심왕과 상응한다는 것은 (심소가) 심왕에 밀접하게 응한다는 의미이다.
    • 득 등의 스물넷은 심왕과 상응하지 않기 때문에 불상응행이라고 이름붙인다. 따라서 자세히는 心不相應行法이라고 한다. 스물넷은 마음도 아니고 색도 아니다. 색법과 심법 위에 세워진 이차적인 것이며 (색과 심을 떠나)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스물넷은 모두 가법이다.
    • 예를 들면 이란 사람이 어떤 물건을 얻었을 때, 얻은 , 등의 물건은 올바른 득이 아니다. ( 물건을) 얻은 사람도 올바른 득은 아니다. ( 물건을) 주는 사람도 득은 아니다. 얻은 사람과 얻어진 물건이 만났을 가운데 득이 있다. 따라서 () 가법이다.
    • 命根이라는 것은 수명이다. 수명이라는 것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생을 받고 있는 동안의 시기에 몸을 유지하는 작용이다.
    • 나머지 衆同分, 異生性 등도 모두 이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신체, 사람의 마음을 비롯해서 ··개미·매미나 식물··주택·전원···기와···일월··운무·· 뿐만아니라 모든 사물의 본체가 무엇인지 고찰하면 8식의 심왕과 51심소와 11색법에서 벗어나 있는 사물은 하나도 없다.
    • (지금 문제삼고 있는) 24불상응행도 이들 위에 (가정으로) 세워진 것이다. 사물에는 갖가지 명칭이 있고 사물에는 여러가지 숫자가 있지만, 그 어느 것이든 불상응행이다. 四方도 四角도 四季도 12시도 모두 불상응행이니 (색심을 떠나)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보다 분명히 고찰해야 한다. 의타기성의 94법의 존재방식은 이상과 같다.

     

     

    6 무위

     

    • 다음 圓成實性에 여섯가지가 있으니 여섯가지 무위이다. 여섯가지 명칭은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 설해지고 있는 그대로이다. 이들 여섯가지 무위 자체는 변화하는 없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고, 他者 위해 爲作하지 않는다. 위작이란 만들어낸다는 의미이다. 타자란 인연 등의 가지 연이다.
    • 이 연에는 네가지가 있다. 因緣等無間緣所緣緣增上緣이 그것이다.
    • 인연이란 種子現行을 말한다. 종자는 현행을 원인으로 삼고, 곧바로 (종자는) 종자를 원인으로 삼는다. 이에 대해 현행은 종자를 원인으로 삼는다고 때의 (종자와 현행이 인연이다.) 인연은 원인 중에서도 가장 일정한 (직접적) 원인이다. 왜냐하면 원인 자체가 바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존재의 양상은 나중에 종자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설명하겠다.
    • 等無間緣이란 마음의 일어나는 힘이 멸할 다음 마음을 야기하는 (이미 멸하기 한찰나의 마음을 말한다). 앞마음은 뒷마음을 연으로 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 所緣緣이란 마음이 아는 바의 (대상) 사물을 말한다. 마음은 알려지는 사물을 연하여 생기기 때문이다.
    • 增上緣 이들 (세가지 ) 이외의 갖가지 사물의 연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신체는 마음을 연으로 하고, 마음은 신체를 연으로 한다. 나는 타인을 연으로 타인은 나를 연으로 한다. 살아있는 것은 무생물을 연으로 하고, 무생물은 살아있는 것을 연으로 한다. 무생물 중에서도 舍宅·山河·草木 대지를 연하고 대지는 (風輪·水輪·金輪) 삼륜을 연으로 한다. 사택 중에서도 기둥·들보·· 갖가지 사물이 서로 연이 되고 산하·초목 중에서도 바람····뿌리·가지···열매 갖가지 사물이 서로 연이 되어 있다. 아니 인간의 신체도 ·다리 등의 사지나 머리 등의 사물이 서로 연이 되어 있는 것처럼, 양상은 수를 없다. 이와 같이 연이 되는 모두가 증상연이다. 이러한 가지 연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 바로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러한 것은 모두 無常이다.
    • 진여, 항상 존재하는 묘한 진리는 같은 가지 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無爲라고 이름 한다. 진여는 한맛으로 평등하다. (따라서 여섯가지 무위라 해도) 실제로 여섯가지 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방식이나 의미의 차이에서 여섯가지 무위로 나눈 것이다.
    • 어떤 장애도 없는 모습이 마치 허공의 존재방식과 닮았기 때문에 (진여를) 虛空武爲라고 이름한다.
    • (진여는) 簡擇의 힘에 의해 갖가지 雜染을 소멸시켜 證會되는 것이기 때문에 擇滅無爲라고 이름한다. 이 중 간택이란 지혜이고, 잡염이란 번뇌이며, 증회란 명확하게 아는 일이다.
    • 또 지혜의 간택력에 의해 (진여를 얻는) 것이 아니더라도 진여 자체는 본래부터 淸淨하다. 혹은 (현상적 존재인 유위법이 생기는) 緣 결여될 , 스스로 不生의 진리가 나타난다. 이를 (하나는 본래부터 청정한 진여와 하나는 연이 결여되어 나타나는 진여의 가지를) 非擇滅無爲라고 이름 한다. 연의 결여는 (유위법이라는) 사물을 낳는 연이 결핍되어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苦受樂受가 없어졌을 때 나타나는 무위를 不動無爲라 이름한다. 고수란 신체에까지 괴로움을 받는 마음이고, 락수란 신체에 즐거움을 받는 마음이다. 가지는 앞에서 말한 遍行의 다섯가지 심소 중 수의 심소의 일부이다.
    • 가 일어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무위를 想受滅無爲라 이름한다. 상은 앞에서 말한 편행의 心所 상이다. 수란, 수의 심소이다. (수라는) 심소는 五受라는 다섯 종류로 나누어진다. 憂受苦受喜受樂受捨受가 그것이다. 이중 우수는 마음속에 우울을 느끼긴 하지만 아직 신체의 괴로움에까지 미치지 않는 마음이다. 희수란 마음속에 기쁨을 감수한다. 그러나 아직 신체의 기쁨에 까지는 미치지 않는 마음이다. 사수란 낙이나 고나 우나 희도 없을 모든 것을 감수하고 아는 마음이다. (나머지) 고수와 낙수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지금은 (상수멸에 대해서) 수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들 다섯가지 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 (이제까지 말해온) 이들 다섯가지 무위는 진여라는 무위를 (관점을 바꾸어 다섯가지로 나누어) 가설한 것이다. 모든 존재의 본성은 진실하고 如常하기 때문에 진여라고 이름한다. (이상 허공무위에서 진여무위까지의) 이들을 6무위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실의 자리에서 본다면 진여라는 이름도 역시 가정으로 말한 이름이고 (진여 자체는 말로 표시되지 않는다) 모든 존재의 참된 본성은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진여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진여는 생각으로 측정할 수 없고, 언어로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수를 들어) 정리해보면, 心王8, 心所51, 色11, 不相應行24, 無爲6 모두 합하여 100法이 있다.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에는 百法과 二無我의 이름이 나와 있다. (다음 이무아에 대해 설명하겠다)

     

     

    7二無我

     

    • 이무아에 대해서 이미 여러 번 말해왔는데, (여기서 상세히 설명하겠다) 먼저 補特伽羅無我는 나라는 관념을 없애는 것이다. 나라는 관념[我相] 자기에 집착하는[我執] 곳에서 일어나고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나에 대한) 관념이다. 자기에 집착함은 (넓게 말하면 자기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것 모두, 예를 들면 사람이나 소나 마음을 지닌 것은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집착해서 자기와 타인의 차별을 강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단지 여러 가지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가 한데 어울려 결합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물질적 요소에 대해서 말하면) 길다, 짧다 사각이다 둥글다 등이나 가늘다·굵다 등도 모두 물질적 요소의 예이다. 물론 청황백 등의 색깔이나 소리·냄새··촉감 감각의 대상도 물론 (물질적 요소이다. 그런데 사람을 분석해보면) 정수리에서 발바닥에 이르기까지, 피부에서 뼈에 이르기 까지 단순히 (이들 물질적 요소가) 한데 모여진 것일 사람이라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목재가 한데 모인 것을 집이라고 이름하지만, 목재 외에 집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많은 정신적 요소와 많은 물질적 요소가 한데 모인 것이지,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깨닫는 것을 보특가라무아라한다.
    • 그리고 이 한데 어울린 많은 물질적 요소 () 정신적요소 (마음) 하나하나를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하는 마음을 法執이라고 한다. 이것도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모든 존재의 구성요소는[諸法] 인연으로 생기고, 증상연에서 일어난다. 혹은 등무간연에 이끌리고, 소연연에 의해 일어난다. 어느 하나도 자기 힘으로 생겨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모든 타력에 의해 존재한다. 타력은 이다. 연도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연도 다양한 존재의 구성요소이다. 또한 갖가지 존재의 구성요소도 서로 이 되면서 서로를 형성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전부 타력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한다고 말할 없다. 물질이나 마음이라는 존재의 요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다. 이렇게 깨닫는 것을 法無我라 한다.
    • 二無我를 깨치면 진여라는 이치가 나타난다. 진여에는 이 없으므로 반드시 (사람과 법의 가지) 空 관해야지 ( 결과로서 진여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진여 자체가 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이 아니라고 해서 어떤 사물로서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물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본성은 진실한 것이다. 결국 진여의 이치는 사물의 진실한 이치이다. 존재의 구성요소는 이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이치가 없으면 어떻게 그것들이 존재할 있겠는가.
    • 따라서 진여는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의 本性이다. 본성은 無爲이고 원성실성이다. (이에 대해) 의타기성은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의 (구체적으로 나타난) 상이다. 상은 유위이고 사물이다. 사물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실재한다고 생각해 본체와 작용에 (미혹해서) 집착하는 것은 아집과 법집이다. 가지를 제거하는 것이 이무아이다. 따라서 이무아란 백법에 대해 (그들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하는) 잘못된 견해를 제거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 사분

     

    1 사분

     

    • (이상 백법을 설해왔다) 백법을 있다고 관찰하면, 오직 識만이 존재한다는 이치를 믿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식이란 心王인데, 심왕 외에도 心所가 있고 色法이 있고 불상응행이 있고 무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직 마음만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이 의문에 답하면 다음과 같다. 심소는 (심왕과) 같은 마음이다. 심왕에 수반하는 同類이므로 시왕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색법은 심왕과 심소가 변화한 것이므로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불상응행은 색과 마음의 (특별한) 의미에서 가설된 것이므로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무위란 색과 마음과 불상응행의 진실한 본성이므로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것은 오직 식이다.
    • 이 중 색법이 심과 심소가 변화한 것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 앞에서 말한 8, 여덟가지 심왕과 51심소의 하나하나는 사분으로 나누어진다. 사분이란 相分·見分·自證分·證自證分이다. 眼識에도 이들 사분이 있고, 耳識에서부터 아뢰야식까지 이들 사분이 있고, 51심소에도 똑같이 사분이 있다.
    • 이 중 자증분은 마음의 본체이고, 외의 삼분은 마음의 작용이다. 작용이라는 것은 본체에 구비된 활동[功能]이다. 이른바 상분은 마음의 작용속에서 마음에 알려진 작용이다. 마음 역시 사물을 안다는 외에 별도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인식되는 사물이 없다면 어떻게 인식이 가능하겠는가. 도리에 의해 마음의 본체가 변화하여 인식되는 사물이 된다. 알려지는 작용을 상분이라 이름하며, 다양한 색법이 상분 속에 수용된다. 따라서 색은 마음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 견분은 이 상을 아는 작용이다. 알려지는 사물이 있더라도 그것을 아는 작용이 없으면 어떻게 안다는 것이 있겠는가. 따라서 마음의 본체가 변화하여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을 일으킨다.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을 견분이라고 이름한다.
    • 증자증분은 자증분을 아는 작용이다. 자증분은 마음의 본체로서 (상분·견분의) 근저에 있으면서 견분을 알고, 증자증분도 안다.
    • 마음은 밝고 깨끗한 거울처럼 明澄하며 청정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작용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안으로 돌이켜 자기의 본체도 안다. 이러한 신비한 도리는 단지 법상종만이 설한 것이다.
    • (예를 들어) 상세히 말해보자. 밝고 깨끗한 거울로 사물의 형태를 비추면 반드시 거울 속에 그 사물의 형태가 비치는데, 그 영상은 거울 밖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단지 거울의 본체가 깨끗하므로 사물을 향하면 반드시 비추기 때문에 그 비추는 작용에 의해 (거울 속에) 나타난 것이다. 그 거울 빛이 눈앞에 비치는 바가 (거울 속에 비친) 영상이고, 밖에 비추는 바는 거울에 대해 있는 사물의 본체의 형태이다. 거울의 작용은 깨끗이 빛나는 구리의 작용이고, 거울의 본체는 그 깨끗이 빛나는 구리 자체이다. 따라서 비친 영상과 그것을 비추는 빛이란 거울의 작용이므로 (그들은) 거울을 떠나 무언가의 사물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 마음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속에 떠올라 인식된 사물, 그것을 상분이라 이름하는데, 상분은 거울의 영상으로 비유된다. 상분의 본체의 형태를 본질이라고 이름한다. 본질은 아뢰야식의 상분이다. (이처럼 상분은 본체로서 본질을 갖지만) 그러나 아뢰야식의 상분에는 본질이 없다.
    • (다음에) 마음 위에 일어난 인식하는 작용을 견분이라고 이름하는데, 견분은 거울 빛으로써 비유된다. (상분을 마음속에 떠올리고, 또는 인식하는 작용 (인 견분) 을 일으키는 본체를 자증분이라 이름하는데, 그것은 거울의 본체인 바 깨끗한 구리로 비유된다.

     

     

    28식의 상분

     

    • 예를 들면 안식[眼識:視覺] 일어나 청황 등의 색깔을 볼때, 안식 앞에 색깔이 떠올라 나타나는 그것이 상분이다. 색깔의 본질은 8 아뢰야식의 상분이다. 안식의 (작용 중에서 색깔을) 보는 작용이 견분이다. 보여지는 색깔이라는 작용과 보는 견분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안식의 본체, 자증분이다. 안식을 통해서 일어나는 심소도 모두 마찬가지이다. 耳識 소리를 듣고 鼻識이 냄새를 맡고 의식이 모든것을 사유할 때의 심왕과 심소의 존재상태도 모두 이와같이 존재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 말라식과 아뢰야식이 어떻게 대상을 아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말하지 않았다. 말라식은 아뢰야식의 견분에 대하여 이것을 자기라고 생각한다. (내적인 자기집착이라는 존재방식) 외에 사물을 인식한다는 말라식에는 없다.
    • (시작이 없는 때부터) 이처럼 아뢰야식은 종자와 오근과 器界를 인식대상으로 안다. 이 중 종자란 모든 존재를 생기게 하는 종자이다. 오근이란 11종의 색법 중 眼耳鼻舌身이라는 (다섯 감각기관) 이다. 器界란 산하 대지 사택 전원 등의 (자연계) 이다.
    • 말라식도 아뢰야식도 四分에 대해서는 모두 (전육식과) 똑같고, 이들 이식에 따르는 심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상과 사실에서 색법이라고 말해도 (모두 상분으로 거둬들이기 때문에) 일심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체는 오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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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불교학부와 대한불교조계종 표준과정을 바탕으로 한 불교학 커리큘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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