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대종사 [석전 박한영 스님(1870~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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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고종 7)∼1948년. 일제강점기 승려. 자는 한영(漢永)이고, 호는 석전(石顚)이며 불명(佛名)은 정호(鼎鎬)‧영호(暎湖)이다. 전라북도 완주(完州)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위봉사 금산스님을 찾아가 출가하면서 정호(鼎鎬)라는 법명을 받았다. 26세에 순창 구암사에서 설유스님에게서 법통을 받고 법호를 영호(暎湖)라고 하였다.

27세부터 해인사(海印寺), 법주사(法主寺), 범어사(梵魚寺) 등에서 강의를 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석전은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과 함께 불교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노력을 기울였고, 해인사 주지 이회광(李晦光)이 조선불교를 일본의 조동종(曹洞宗)과 통합하려 하자 이를 저지시켰다. 1913년에는 불교잡지인 《해동불교(海東佛敎)》를 창간하여 불교의 혁신과 한일합방의 부당함을 일깨웠다.

1946년까지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8‧15 해방 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회의 제1대 교정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정읍 내장사에서 만년을 보냈다.

저서로 《석전시초(石顚詩抄)》‧《석림수필(石林隨筆)》‧《석림초(石林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