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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논 요승 보우 소(論妖僧普雨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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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요승 보우 소(論妖僧普雨疏)


 

이 글은 율곡이 명종 20년 8월에 요망스런 중 보우를 논박하는 상소문이다. 보우(15151565)는 금강산에 들어가 참선(參禪)과 경학(經學)을 연구하고,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신임을 얻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으며, 선교양종(禪敎兩宗)을 부활시켰다. 1565년(명종 20)에 문정왕후가 돌아가자 유림들의 잇다른 배불상소(排佛上疏)와 압력에 밀려, 마침내는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에 귀양을 갔으며, 곧 제주목사 변 협(邊協)에 의하여 참형(斬刑)되었다.

 


생각하옵건대, 벼슬을 지킴에는 각각 그의 직책이 있으나 정성으로 마음 속이 격해지면 직책을 지키는 데에만 구애될 수는 없으며, 진언(進言)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그 때가 있으나 해로움이 나라에 절박하면 때를 기다리는 데에 제한을 받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 신(臣)은 진언하는 책임을 맡고 있지 않으니 진언할 수 있는 직책도 아니요, 전하께서는 현재 복상(服喪)중1)에 계시니 진언할 만한 때도 아닙니다. 그러나 장사치와 나그네들도 길에서 의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본시 직책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정성을 다할 수가 있는 것이며, 여러 관리들이 재상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경우를 보면 일이란 본시 때를 기다리지 않고 진언을 극진히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신은 곧 만 번 죽을 것을 무릅쓰고 감히 한가지 생각한 바를 아뢰오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밝은 살피심을 내려주소서.

지금 이 보우(普雨)의 일은 온 나라가 다 같이 분노를 느끼어 그의 살을 찢어발기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균관(成均館)에서는 항의하는 소(疏)를 올리고, 양사(兩司)2)에서는 번갈아 글을 올리며, 옥당(玉堂)3)에서는 차자(箚子)4)를 올리는 일이 여러 날을 두고 끊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전하께옵서는 더욱 못들은 체하시니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놀라고 실망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모두들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온 나라의 공론은 믿지 않으시고 한 요망한 중만을 옹호하신다"고 합니다.

신은 전하의 명철하심이 보우로 말미암아 이런 누명을 받으시게 된 것을 통탄스럽게 여깁니다.

대개 "보우는 시역(弑逆)의 죄를 지었으니, 전하께서는 그 원수를 풀어 준 잘못이 있으시다"고 말하는 것은 본시 과격한 이론이어서 신은 감히 다 믿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 보우를 죄가 없는 사람이라 하신 데 있어서는 신은 적이 괴탄(怪嘆)하는 바이며 또한 감히 믿고 승복할 수 없사옵니다. 그러한 전교가 나오자 삼척동자도 모두 속으로 웃으니, "위대하신 왕의 말씀〔大哉王言〕5)은 마땅히 이러하여서는 안될 것이라고 남몰래 염려하고 있습니다. 궁궐 안의 은밀한 일은 비록 뜬소문이라고 핑계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늘이 낸 물건을 함부로 없애고 사녀(士女)들을 속이고 현혹시켜 참람되게 승여(乘輿: 임금이 타는 수레)를 만들고 지존(至尊)을 욕되게 한 것은 만백성들의 눈으로 본 일인데 모두 뜬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눈썹은 지극히 가까운데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니 궁중의 일을 나라 사람들은 다 알지만 전하께서는 아시지 못하는 경우가 어찌 없겠읍니까만 뭇 사람들의 노여움을 그치게 할 수 없고 백성들의 입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인데도 전하께서 굳이 이렇게까지 거부하시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또 전하께서는 진실로 보우에게는 털끝 만한 죄도 없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보우가 제 뜻을 마음대로 행한 지 지금 여러 해째로서, 죄와 복을 멋대로 베풀어 임금을 속였으며, 궁 안의 재정을 고갈시켜 백성들에게 환난을 끼쳤으며, 교만하고 뽐내 스스로를 성인(聖人)인 체하여 자신을 높여 사치스럽고 참람되게 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한 가지만 있다 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데, 전하께서는 그래도 무죄하다고 하심은 어째서 입니까. 전하께서는 총명하시고 강단이 있으시어 벼슬을 자르고 귀양보냄에 있어 권세 있는 자나 은총을 받는 자들이라 해도 일찍이 조금도 용서가 없으셨는데, 한 요망한 중을 처벌함에 있어서는 유달리 어렵게 여기시며 보류하고 계시니, 신은 진실로 우매한 탓인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찌 나라 사람들이 모두 죽여 마땅하다고 하는데도 죄 없는 자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신이 크게 걱정하는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옥당(玉堂)은 전하의 심복(心腹)이며, 대간(臺諫)6)은 전하의 이목(耳目)이며, 태학(太學)의 유생들은 비록 공자(孔子)를 모두 본받지는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중에 그런 뜻을 지닌 자는 또한 모두가 공자의 무리입니다. 전하께서 이미 어진 인재를 골라 심복과 이목이 되는 지위에 앉혀 놓았으니, 그들이 직책에 맞는다고 생각되면 마땅히 그들의 의견을 채용하셔야 할 것이며, 그들이 그 직책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신다면 마땅히 그들을 쫓아내셔야 할 것입니다. 임용하고서도 신임하지 않고 의심하면서도 몰아내지 않는 것은 진실로 부당한 처사입니다.

지금 옥당과 양사(兩司)와 태학의 유생들이 입을 모으고 말을 합쳐 한 중을 죄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끝내 임금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으니, 비록 "전하께서는 심복과 이목에 해당하는 관원과 공자를 본받으려는 무리들에 대한 대우를 모두 한 중보다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또한 망언이 아닐 것입니다. 어찌 이처럼 임용은 중하게 하시고 대우는 박하게 하십니까. 설사 보우가 털끝 만한 죄도 없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천하와 후세의 사람들이 장차 전하를 어떠한 임금으로 보겠습니까. 하물며 지금 보우의 죄는 죽어 마땅하여 간하는 사람들의 말이 그릇된 것이 아닌 데야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이 뒤로부터 아마 나라 사람들은 모두 말하기를 "전하께서 보우를 대우하심이 갈수록 더하여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할 것이며, 중들은 모두 말하기를 "전하께서는 우리 도(道)를 숭상하시니 간하고 비판한다고 해서 이간(離間)될 수는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단(異端)의 무리들은 뜻을 펴고 선비들의 기개는 더욱 꺾일 것입니다. 조정에 있는 신하들은 모두 말하기를 "전하의 목소리와 안색은 천리 밖에까지도 사람들을 거절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관리들은 해이해지고, 간하는 길은 더욱 막히게 될 것입니다. 선비들의 의기가 좌절되어버리고 간하는 길이 막혀버리면, 곧은 선비들은 눈치를 살피며 멀리 가 숨어살게 되고 간사한 자들만이 틈을 보아 다투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조정의 기강(紀綱)은 날로 문란해지고, 나라의 명맥(命脈)은 더욱 상하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 비록 불교를 배척하실, 뜻이 있다 한들 누가 좇아서 그 일을 돕고 따를 것이며 전하께서 비록 덕을 따르는 총명함이 있다 한들 누가 좋아서 흉금을 털어놓고 바로 아뢰겠습니까. 그렇다고 어찌 전하의 뜻〔情〕을 집집마다 다니며 일러주고 얘기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일의 실수는 경중(輕重)을 따질 게 못될 듯하고, 한 사람 중의 미미한 존재는 유무(有無)를 따질 게 없을 뜻하지만, 그 피해가 국가에 절실함이 이와 같습니다. 일찍이 전하께선 예지(叡智)를 지닌 것으로 여겼는데 이것을 살피지 못하셨습니까. 의젓하던 선비들의 의기는 또 이로 인해 좌절되고, 트였던 언로(言路)는 또 이로 인해 막히게 되며, 근근히 이어오던 나라의 명맥(命脈)은 또 이로 인해 손상되어 재앙과 해독이 함께 닥쳐 구제 받을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 뒤에는 비록 보우같은 자를 백 명을 베인다 한들 어찌 이미 지나간 과실을 보충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옥체(玉體)가 본시 약한 데다가 수척한 모습으로 상복(喪服)을 입으시고 핼쑥한 얼굴로 곡읍(哭泣)을 하고 계시는 즈음이니 번거로이 귀에 거슬리는 말씀을 드리면 전하의 마음이 편치 않으실 것 같고, 그렇다고 다시 사사로운 걱정과 지나친 생각으로 전하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 두려워서 그대로 간하지 않고 물러난다면 전하의 나라가 편치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사세(事勢)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아무런 대처(對處)도 하지 않는다면 <전하의 마음이> 편치 않게 되고 <나라도> 편안하지 못하게 되어 마침내는 둘 다 온전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밤잠을 못 이루고 천장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는 까닭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거듭 생각한 끝에 한 가지 방법을 터득하였습니다. 대체로 자성(慈聖)7)께서 나라를 걱정하시는 뜻과 복을 비시는 정성 때문에 보우의 기만(欺瞞)행위를 거절하지 못한 지가 20년이나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승하하셨다고 해서 갑자기 그를 베어버리면 자성께서 생존해 계실 적의 마음에 어긋나는 일일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는 살리기를 좋아하는 어지심으로 상중에 계시니, 어찌 극형을 사람들에게 가하려 하시겠습니까?

전하께서 주저하시며 참고 계시는 마음은 신으로서도 망령되나마 헤아릴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쾌히 공론(公論)을 좇아서 즉시 극형을 베풀지 못하실 형편이라면 어찌하여 먼 변방으로 귀양을 보냄으로 민중과 함께 버리신다는 뜻을 표하지도 않으십니까? 그렇게 하시면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의 마음을 약간이나마 위로할 수 있게 되고, 또 기만하고 미혹(迷惑)시키는 세력들을 어느 정도 감소시킬 수가 있으며, 동시에 전하의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시는 어진 마음에도 걸리는 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하께서는 지금 무죄라고 생각하고 계시는데 신은 멀리 쫓아내자는 요구를 아뢰고, 사림(士林)들은 지금 시역(弑逆)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신은 죄를 감해주자는 말씀을 올리는 셈이니, 진실로 위로는 전하의 뜻을 거슬리고 아래로는 사림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됩니다.

신의 어리석은 충성으로는 꼭 전하의 어진 마음을 보전하고 국가의 원기(元氣)도 보존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위와 아래로 죄를 짓게 되는 한이 있어도 자신에 대하여는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전하께서 단연코 죄가 없다고 하시어 끝내 (보우를) 내쫓지 않으신다면, 이것은 곧 사기가 꺾이고 언로가 막히며 서캐나 이[ 蝨] 같은 신이 반딧불 같은 미약한 능력으로 어찌 감히 일월(日月)의 광채를 돕기 바라겠습니까?

만약 신의 말에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꼴 베고 나무하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詢于芻〕8) 천근(淺近)한 말도 살피는 것〔察邇言 〕9)은 이 또한 훌륭한 덕을 쌓는 한 일입니다. 어찌 반드시 그 사람만을 보고 그의 말까지 무시해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아! 나라의 참혹한 화(禍)는 오늘날보다 더한 때가 없었고, 백성들의 여위고 쇠약함도 오늘날보다 더한 때가 없었읍니다. 참혹한 화를 겪고 있는 때에 여위고 쇠약한 백성들을 부리면서 거기다 또 선비들의 의기를 꺾고 언로를 막으며 나라의 명맥을 손상시켜 백성들을 몰아붙인다면 반드시 닥쳐올 근심과 헤아릴 수 없는 환난은 장차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마치 저물에 뜬 배가 譬彼舟流 

어디에 가 닿을 지 모르는 것 같네 不知所屆 

마음의 시름이여 心之憂矣 

눈 붙여볼 겨를도 없고나!10) 不遑假寐

 

하고 읊었는데, 신의 근심이 실로 이와 같습니다.

신은 본래 지극히 어리석고 매우 고루(固陋)한 자질이나 외람되이 관국빈왕(觀國賓王)하는 대열11)에 끼게 되고, 다행히도 전하께서 버리지 않으시어 장원〔上第〕으로 뽑아주시니 깊고 중한 성은(聖恩)에 대하여 갚을 길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병들게 하는 기틀을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감격한 정성이 간절하여 감히 침묵을 지키지 못하고 이미 분별 없는 소견을 아뢰었습니다. 직책을 뛰어넘은 죄 벌하여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 주 >


1) 1565년(명종 20) 작자가 상소를 올리던 해에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승하하였다.

2) 사간원(司諫院)과 사헌부(司憲府)의 두 기관. 사간원은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맡은 관청이며, 사헌부는 시정을 비판하고 모든 관리들을 규찰(糾察)하는 관청. 따라서 양사는 민의(民意)를 반영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대변해 주는 기관이다.

3)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으로, 홍문관 부제학(副題學)이하 교리(校理), 부교리, 수찬(修撰), 부수찬 등을 총칭한다. 홍문관은 삼사(三司)의 하나로 경적(經籍)에 관한 일을 맡아 ?은 학자들이 동경하던 기관 중의 하나였다.

4) 상소문의 일종으로 주차(奏箚), 차문(箚文) 또는 단순히 차(箚)라고도 한다.

5) 「서경(書經)」의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 편에서 인용한 표현이다.

6) 조선시대 간언을 관장하던 관청으로 사간원과 사헌부를 아울러 뜻한다.

7) 임금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를 가리킨다.

8)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시에 보이는 표현으로, 선왕의 낮은 백성들의 의견도 소홀히 하지 않는 훌륭한 정치를 뜻한 말이다.

9) 「중용(中庸)」에 보이는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한 것 「중용」에 "순(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시고 천근(淺近)한 말도 잘 살피셨다.〔舜好問而好察邇言〕"고 하였다.

10) 소아(小雅) 소반(小弁)편에 보인다.

11) 「역경(易經)」 관괘(觀卦) 괘사(卦辭)의 "나라의 빛을 보리니, 왕에게 손이 되어 이로우리라.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한 데서 나온 말로, 상제(上第)에 뽑히여 나라의 벼슬 자리에 끼게 됨을 뜻한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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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학교 불교학부와 대한불교조계종 표준과정을 바탕으로 한 불교학 커리큘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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