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조계종 종조 - 도의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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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계종제공

종조(宗祖) 도의(道義)국사에 대하여


종조(宗祖) 종단을 처음으로 일으킨 스님을 말하는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는 도의(道義)국사(國師)이다. 도의국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입당(入唐)하여 인가를 받고 조사가 되어 신라로 돌아와 이 땅에 최초로 선(禪)을 전한 스님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인 선(禪)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처음 전한 분이 초조 달마대사라면 이 달마대사의 선(禪)을 우리나라에 처음 전한 분이 바로 도의국사이다.

 
 

종조 도의국사의 생애와 사상


도의국사는 760년경 지금의 서울에 해당하는 북한군(北漢郡)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왕 씨다. 국사는 부모의 태몽 후 반달이 지나 태기가 있었고 39개월만에야 태어났다. 출가하여 법명을 명적(明寂)이라 하였다.
 
 
도의국사는 784(선덕왕 5)년에 사신을 따라 당나라로 건너갔다.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을 예참하자, 허공에서 성스러운 종소리가 나고 산을 울리는 메아리에 신기한 새[神鳥]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문수보살의 감응을 받았다. 오대산은 중국 화엄의 성지로서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곳이다. 일찍이 자장율사도 이 오대산으로 들어가 문수보살로부터 수기를 받은 불교 성지이다. 도의국사가 오대산에 들어갔던 것은 화엄종으로 출가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의국사는 당나라에서 37년 동안 수행 하면서 육조 혜능(慧能 638~713)대사의 조사선(祖師禪)을 접하게 된다. 당시 당나라에는 화엄교학과 함께 새로운 조사선이 확산되고 있었다. 혜능대사는 경전과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 단박에 깨치는 돈오선(頓悟禪)을 전파하여 크게 주목 받고 있었다.
 
 
도의국사 역시 점차 조사선(祖師禪)에 관심을 갖고 심취하여 혜능대사가 주석한 광동 조계(曹溪)를 참례하기로 한다. 도중에 스님은 혜능대사가 『단경(壇經)』을 설한 광부(廣府) 보단사(寶檀寺, 지금의 대감사)를 참배하고 그곳에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그리고 혜능대사의 진신상이 모셔진 보림사(寶林寺)로 가서 조사당에 참배하려 하자 들어가고 나올 때에 문빗장이 저절로 열리고 닫혔다고 한다.
 
 
도의국사는 선종(禪宗)의 발원지 조계산 보림사를 참배한 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먼저 강서지방에서 선법을 드날렸던 마조(馬祖, 709~788)선사가 주석했던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로 가서 서당지장(西堂智藏, 735~814)선사의 문하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도의스님은 서당선사와 문답하여 오랜 의단(疑團, 의심덩어리)을 마침내 해결하고 깨달아 마음의 체증을 풀었다. 서당선사가 “마치 돌 속에서 미옥(美玉)을 고른 듯 하고 조개껍질 속에서 진주를 주워낸 듯하다”고 기뻐하면서 “진실로 법을 전한다면 이런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 전하랴.” 라고 말하며 깨달음을 인가하고, 법호를 ‘도의(道義)’ 라 지어 주었다.
 
 
하지만 도의국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백장청규’로 유명한 백장(百丈, 749~814)선사를 찾아가 문답하니 백장선사도 깨달음을 인가하면서 도의스님의 법과 인격에 탄복하여 말하길 “강서(江西, 마조선사를 뜻함)의 선맥이 모두 동국(東國, 신라)으로 가는구나!” 라고 말했다.
 
 
821(헌강왕 13)년에 도의국사는 드디어 신라로 돌아 왔다. 도의국사가 조사가 되어 돌아와 설악산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점차 신라에 알려졌다. 법의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천하에 퍼졌다. 최치원이 비문에 기록한 바에 의하면 “도를 구하는 이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 배우고 기러기 떼처럼 무리가 되어 떠났다”고 한다. 도의국사가 처음 귀국하여 선을 전하려 할 때는 배척 받아 서울로 가지 않고 변방 설악산에 은둔하였지만 멀지 않아 발심 구도자들이 설악산으로 몰려들어 골짜기가 가득할 정도로 큰 흐름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선법을 전한 도의국사는 많은 구도자들에게 설법하였지만 오직 염거선사에게 법을 전하고 열반에 들었다.
 
해동 초조 도의국사의 선법을 이은 2조 염거(廉居, ?∼844)스님은 진전사를 떠나 설악산의 억성사(億聖寺, 지금의 선림원지)에 주석하며 조사선(祖師禪)을 전하였다.
 
 
염거스님은 다시 도의국사의 선법을 보조체징(普照體澄, 804~880)스님에게 전하였다. 보조체징스님은 염거스님에게 깨달음을 인가 받은 뒤 837년에 당나라로 건너가 여러 산중의 조사를 만나 문답한 뒤에 “나의 조사가 전한 법 이외에 더 이상 구할 것이 없구나!”하고는 3년 만에 신라로 돌아와 전남 장흥의 가지산(迦智山) 보림사(寶林寺)에서 개당하였다. 이것이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으로 조계종의 시원이 된다. 가지산문은 보조체징스님이 개산(開山)하였지만 이 산문은 도의국사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전해온 육조 혜능대사의 남종 돈오선(頓悟禪)의 본산으로 확립되었다. 특히 국왕이 사찰 이름을 보림사(寶林寺)라 지었는데 이것은 중국의 육조 혜능대사가 주석하여 선종의 본산이 된 것과 같이 가지산 보림사도 신라 조사선의 종가로 삼고자 한 뜻이었다.
 
 
이와 같이 해동 초조 도의국사의 전법 이래 우리나라에는 구산(九山)에 선문(禪門)이 우뚝 섰고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우리민족의 역사, 정신, 문화의 근간이 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 문화는 계승, 발전해 나갈 것이다.
 
 
도의국사는 해동 초조로서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전한 선법을 우리나라 스님으로는 처음으로 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여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로 모시고 있다.
 


조계종조, 도의국사의 생애와 사상


  1. 도의국사의 생애
  2. 도의국사의 사상
    1) 교학불교의 초월
    2) 무념무수설의 제창
  3. 종조로서의 위상


 1. 도의국사의 생애

 도의(道義, 783~821)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조이다. 국사는 육조 혜능의 남종선, 즉 조사선 전통의 중국 선종을 최초로 우리나라에 들여와 선법을 펼쳤다. 국사는 직접 조계종을 개창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룩한 선풍의 뿌리는 우리나라 선종의 역사에 굳게 자리 잡아 그를 해동선문(海東禪門)의 초조로 추앙하게 되었다. 도의국사는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는 조사선을 이 땅에 최초로 전파하였다.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은 이 조사선의 한 갈래이다. 조사선 계통의 간화선은 한국불교는 물론 대한불교조계종의 대표적인 수행법이다. 도의국사는 이러한 조사선을 최초로 들여와 뿌리내리게 하였으므로 종조로 불리게 된 것이다.

국사는 지금의 서울에 해당하는 북한군(北漢郡) 출신이다. 법호는 명적(明寂), 법명이 도의이다. 속성은 왕씨로 일찍이 출가하여 784년(선덕왕 5)에 사신인 한찬호(韓粲號), 김양공(金讓恭)과 함께 당나라에 들어갔다. 곧바로 오대산에 들어가 문수보살로부터 감응을 받았다. 오대산은 중국 산서성 북동부에 있는 청량산(淸凉山)이다. 청량산은 동서남북중의 다섯 봉우리가 누대(樓臺)처럼 되어 있어 오대산이라고도 부른다. 최고봉은 해발 3,058m로서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으로 알려졌고, 당(618~907) 초기에는 화엄종의 중심지가 되어 많은 고승들과 사찰이 번성하였다. 7세기 중엽에는 신라의 자장율사가 이곳에서 유학하다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도 하였다.

국사는 오대산을 순례한 이후 여러 지역을 방문한 뒤 광부(廣府) 보단사(寶壇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조계산으로 가 혜능(慧能)선사의 조사당에 참배를 드리려고 하자 갑자기 문이 열렸다. 예배를 세 번 드리고 나니 문이 저절로 닫혔다. 보단사는 혜능선사가